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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reng Oct 22. 2022

쉬어가는 하루

8. 악몽




현실과 꿈의 혼동이 왔다. 개중에는 내가 정말로 했다고 믿었던 것들도 있었는데, 꿈이었다는 것을 자각했을 때는 정말이지 충격이라고 느꼈었다. 나는 욕구가 결여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평소에도 식욕과 성욕이 적은 편이었지만 최소한의 욕구조차 더더욱이 사라졌다. 그래서인지 잠을 엄청 오래 잤다. 계속 잤다. 자고 일어나 보면 시간은 어느샌가 훌쩍 지나가버리고 말았다. 평균적으로 하루에 열두 시간은 잔 것 같다. 잠을 딱히 자고 싶은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약을 먹으면 어찌나 눈꺼풀이 무거워지는지 버티려고 해 봐도 30분도 채 버티지 못하고 잠에 들고는 했다. 요즘은 매일같이 두 시에 잠에서 깬다. 어두컴컴한 방 안에서 눈을 떴을 때 더듬더듬 핸드폰을 찾지 않아도 몇 시인지 알 수 있다. 악몽을 꿨다. 심장이 너무 뛰어서 진정이 되지 않았다. 상상할 수 없는 두려움을 느꼈다. 나는 항상 행복한 꿈만 꾸고는 했는데 참 이상했다. 꿈을 꾸려고 잠에 들고는 했는데 이제는 잠에 들기가 무섭다.




약이 다 떨어져서 사러 갔는데 특정 성분이 청소년에게는 판매가 되지 않는다고 하였다. 아이디를 들고 오지 않아서 낭패였다. 다시 돌아갈 생각을 하니 머리가 지끈지끈거렸다. 젊어 보이는 점원이 내 몰골을 보더니 그냥 확인을 안 하기로 했나 보다. 마약류로 쓰려는 건 아니냐는 형식적인 질문에 나는 기침으로 답했다. 스트레스를 받아서 아픈 건지, 아파서 스트레스를 받는 건지 헷갈린다. 아마 전자인 것 같다. 병의 근원인 스트레스를 없애야 하는데 그럴 방도가 없다. 그러면 약을 아무리 먹어도 나아질 수 없는 걸까. 약을 먹는 의미조차 모르겠지만 생각할수록 머리가 아파와서 그만두기로 했다.




새로이 카펫을 샀다. 적당한 사이즈를 이백 불 정도 주고 구매했다. 혼자 낑낑거리며 깔고 나니 한결 마음이 편해졌다. 카펫을 바꾼다는 행위는 내가 저지른 과오를 돌아보지 않겠다는 것이 아니었다. 내게는 저지른 일들을 뒤처리해야 하는 의무가 있었다. 그러려면 해야 할 일을 찾아야만 했다. 나는 슬퍼할 겨를이 없었다. 하루 종일 방 안에 틀어박혀서 슬퍼하는 것은 너무 편하디 편한 형벌이었다. 기분을 돌아보는 시간은 사치라는 것을 인정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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