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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reng Oct 14. 2022

돌아보는 일

1. 합격과 불합격




브런치 작가는 누구든지 신청할 수 있다고 예전부터 알고 있었다. 주위에서 많이들 신청하기도 했다. 한 번에 되기는 어려워도 신청 횟수에 제한이 없어서 열 번을 넘게 떨어지더라도 열정을 가지고 신청서를 계속해서 고치다 보면 언젠가는 붙을 수 있는 방식이었다. 뜬금없는 말이지만 나는 항상 결과를 마주하기 두려워했다. 결과 앞에서 나의 모든 과정들을 부정받는 것 같았다. 돌아보면 성과 자체가 그리 나쁘지는 않았지만 결과를 확인할 때에는 심장이 터질 것만 같아서 아직도 잘 확인하지 못한다. 성적에 연연하는 편은 아니었지만 성적을 확인할 때마다 몇 번이고 마음을 다잡아야 했고, 합격 혹은 불합격을 통보하는 학교 입학이나 군 지원을 확인할 때는 더더욱 그랬다. 경쟁사회에서 합격을 했다는 것은 누군가는 떨어졌다는 것이다. 비약을 조금 섞자면, 모든 행복은 누군가의 슬픔으로부터 온다. 당신이 합격했기에 그 사람은 떨어졌을지도 모른다. 누군가의 슬픔으로 인한 합격의 행복과 합격하지 못한 이들을 생각조차 하지 않을 사람들을 위한 불합격의 슬픔은 피할 수만 있다면 피하고 싶었다.




내가 글을 못 쓰는 것쯤이야 잘 알고 있다. 마지막으로 배웠던 국어는 초등학교 때였고 이름 있는 작가 한 명의 문체라도 연습해서 모방했더라면 조금 더 나았겠지만 또 그러고 싶지는 않았다. 나는 무지한 인간이라 문학과 비문학의 차이조차 모른다. 그렇지만 스스로 글을 못 쓴다는 것을 아는 것과 별개로 글을 좀 안다고 하는 누군가가 내 글을 보고 “작가가 되기에는 자격 미달이네요. 작가가 되고 싶으시죠?" "자기소개서와 글을 더 다듬어서 다음에 도전하세요"라는 말을 듣는 것은 의미가 달랐다. 그런 말을 듣고 좌절하기보다 “니까짓 게 뭘 알아” 라며 넘기는 게 내게는 심적으로 더 편하다는 말이다. 그런 정신승리라도 하지 않으면 나는 더 이상 글을 쓸 수가 없다. 그래서 신청할 생각조차 없었다. 하지만 며칠 전 별안간 신청해보고 싶었다. 아무 글이라도 쓰지 않으면 너무 힘들 것 같아서. 솔직히 나는 살면서 지금보다 슬픈 적이 없었다.




작가 신청하기를 누르니 600자 정도 되는 자기소개서를 작성하라고 하기에 나는 아무 말이나 썼다. 나는 한국어로 자기소개서를 써 본 적이 없다. 미리 써둔 글들을 제출하라기에 써뒀던 글들에 그럴싸한 제목을 붙여 세 편정도 냈다. 합격 발표는 오 일 이내로 올 것이라며 기다리라 했는데, 사실 오 일은 더럽게 긴 시간이라고 생각했다. 신청서를 작성하는 데에는 총 십 분도 걸리지 않았던 것 같다. 신청하고 나니 괜한 짓을 한 것 같았지만 더 이상 나빠질 것도 없다는 생각이 얼마나 강했는지 이내 되든 말든 상관없다고 했다. 요즘 새벽에 자주 깬다. 신청서를 내고 이틀 정도 지났을까 별안간 새벽에 메일 하나가 날아왔다. “브런치 작가가 되신 것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소중한 글 기대하겠습니다.”







차라리 떨어지기를 바랐던 걸지도 모른다. 이번 기회에 되지 않았다면 나는 맹세코 다시 신청할 계획이 없었다. 사실 고백할 것이 있다. 심사용으로 제출했던 글은 앞으로 브런치에 쓸 글과는 결이 다르다. 글을 쓰고 싶게 하는 책들은 매우 한정적이며, 한 번 쓰기 시작하면 꽤나 많은 에너지를 소모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헛소리 하나만큼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영양가 없는 생각들이나 적기로 했다. 내겐 이렇게라도 나 자신을 돌아봐야만 하는 의무가 있었다. 그 전에는 인간과의 만남을 단절하기로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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