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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reng Oct 15. 2022

난 너랑 있는 게 제일 좋아

2. 참회




글에는 저마다의 이유가 있다. 하지만 이 글에는 목적이 없다. 연민이나 용서 혹은 자기 합리화를 바라지 않는 것을 명확히 한다. 이 글은 그저 처절한 참회 혹은 자기혐오의 종착역이다. 내겐 당신에게 닿을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아마 평생 닿지 못할 것이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무인도에서 언젠가 닿을 수 있을 거라는 희망으로 병에 편지를 써서 흘려보내는 일 밖에 없다. 사실 무얼 쓰고 있는지, 무얼 써야 할지 조차 모르겠다.




항상 두려워했던 것이다. 혹시나 악하게 태어난 존재는 아닐지, 그렇다면 언젠가 의지에 반하는 일어나게 되는 건 아닐지. 그럴 때면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지 두려워하고 또 두려워했던 것이다. 그런 생각일랑 해본 적 없다는 것은 이유가 되지 못한다. 도저히 이런 종류의 슬픔을 견뎌낼 자신이 없다. 소중한 사람들을 잃었고 그중엔 나 자신도 포함되어 있었다.




상황을 파악할 수가 없었다. 현실을 똑바로 바라볼 수가 없었다는 말이다. 머릿속의 피가 마르는 느낌이어서 제대로 된 사고를 할 수 없었다. 눈물 때문에 하루 종일 코를 훌쩍였다. 이럴 때는 많이 아파서 별다른 해명을 하지 않아도 됨에 다행이었다. 극심한 스트레스는 몸을 아프게 할 수 있다는 것이 증명되는 순간이었다. 불덩이 같은 몸이 나를 지구 아래편으로 데려가는 것만 같았다. 마치 나 자신에게 벌을 주는 것처럼. 꼴에 살아보겠다고 빈 속에 있는 대로 약을 털어 넣었다. 사실 삼 일간 약을 얼마나 먹은 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몽롱한 상태로 집에 남아 있는 수면제를 먹어도 되냐고 물었고, 된다는 답변을 듣자마자 네 알을 삼켰다. 어렴풋이 아침에 안 일어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사실 나는 약에도, 수면제에도 아무런 내성이 없다. 그렇다, 한 알도 내겐 많은 양이었다. 그 후론 아무런 기억이 없다. 몸의 상처를 보아하니 쓰러졌던 것 같다. 일어나니 오후 네 시였다. 이십 시간 정도 기절했던 것 같다. 입 안이 바싹 말라있어 물을 마셨는데 바로 구역질이 올라와 토를 했다. 시큼한 노란색 액체가 나왔다. 눈물이 나와 앞을 흐렸다. 속이 아프다 못해 찢어진 느낌이었다. 하지만 그보다 아팠던 건 갈기갈기 찢겨진 마음이었다.




거울을 보니 도저히 인간의 몰골이 아니었다. 체중을 재보니 삼 일 동안 오 킬로그램이 빠져 있었다. 인간은 사십 일 넘게 먹지 않아도 살 수 있는 존재다. 고작 삼 일이었다. 삼 일 만에 망가진 내가 싫었다. 아니, 어쩌면 먼 예전부터 망가져 있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배가 고픈 것도, 무언가를 입에 넣고 싶다는 생각조차 없었지만 더 이상 망가지는 꼴은 못 보겠다며 슬퍼하는 얼굴이 보였다. 나는 누군가에게 슬픔만 주는 존재구나. 마지못해 먹겠노라 했다. 팔십여 시간 만에 음식물을 삼켰다. 흰 죽이 목구멍으로 넘어감을 몸이 반기지 않는 듯했다. 먹고 게워내기를 반복하며 끝끝내 한 그릇을 비웠다. 실제로 먹은 양은 어림 잡아 두 숟가락 정도 되는 듯했지만 이내 포만감이 느껴졌다. 나는 그 포만감이 역겨웠다.





슬플 때마다 비가 오곤 했다. 한국을 떠날 때도 비가 왔고, 마음이 많이 아팠을 때도 비가 왔다. 한 달 동안 비가 온 적 없었는데 하늘에선 하루 종일 비가 쏟아졌다. 비를 맞고 싶었다. 어차피 여기서 더 아플 수도 없을 것 같았다. 먹은 게 없어서 그런 지 반 바퀴도 채 돌지 못하고 쓰러졌다. 잔디가 축축했다. 문득 너무 서글퍼져서 마구 울부짖었다. 더 이상 속에 남은 게 없을 때까지. 열이 많이 났고, 또 많이 추웠던 것 같은데 잘 기억나지는 않는다. 분명 눈물은 따뜻해서 그런 와중에도 얼굴만큼은 따뜻했다고 기억하고 있다. 나는 비겁한 놈이라서 바닥을 내리치며 하늘을 원망했다. 제 바램을 이런 식으로 이뤄달라는 것은 아니었는데요. 이런 식으로는.



그렇다. 당신의 말처럼 유튜브 뮤직은 같은 노래만 듣게 해서 문제다. 일부러 듣지 않으려 했는데 블루투스 스피커가 켜져 있었나 보다. 익숙한 노래가 흘러나왔다. 전주를 듣자마자 다리에 힘이 풀렸다. 노래도 눈물도 하염없이 흘렀다.  “난… 좋아“ 목이 메어 소리가 잘 나오지 않았다.



혜야,

새벽에 밟으면 네 시간 반



난 너랑 있는 게 제일 좋아

난 너랑 있는 게 제일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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