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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이로사 Jul 12. 2024

무더위 속의 장미-02

장마가 한창인 요즘 서울날씨는 변덕스럽기도 해요.

비 오는 날씨가 지루하다가도,

날이 개어서 햇빛이 비치면 기분은 잠시 밝아지지만

무더위 속으로 다시 걸어 들어가는 현실이

반복되다가 긴 여름을 지나가야 하는 것 같습니다.


길을 걷다가 무심코 길가의 장미를 봤어요.

5월에 보던 장미와는 분위기,

어딘가 장미도 피곤함이 느껴집니다.


갖가지 생태계의 먹이사슬의 천적에게 노출된 장미.

잠시 멈춰서 장미를 바라봅니다.

코랄 핑크의 화사한 장미를 둘러싼

만만치 않은 주변 환경과 피할 수 없는 더위에

의지할 그늘 하나 없이 제자리를 지키고 있네요.


반짝거리던 잎사귀들은 시달림의 현장이 되었고,

신이 난 진딧물은 멈출 생각이 없어 보이네요.

그래도 꽃 피우기를 멈출 생각이 없어 보이죠?

보란 듯이 우아하게 제 할 일을 해내는 장미의 본능,

그저 때 되면 피어나고 지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며 무관심한 이들도 많겠지만,

어떤 생명의 활동도 아무 의지가 없이

일어나는 일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더군다나 식물에 관한 연구들을 보면,

저들은 우리와 다른 의사 표현을 할 뿐,

분명히 주어진 현실에 나름의 반응을 하며,

자신의 의사를 표현한다고 합니다.


그렇게 피고 지고를 반복하면서,

이 여름을 제자리에서 견디는 생명들에게

때때로 경외감을 느낍니다.

약간의 그늘이라도, 바람이라도 쉬이 지나가질 않는

그런 8월의 무더위를 향해가는 이 장마철의 장미.

아마 지난봄에 일찍 피고 어느덧 45일이 지났나 봐요.

그래서 일찍 일어나는 새도 피곤하듯이,

일찍 피었던 장미도 고단하겠다 싶네요.

어쩌면 가장 혹독한 여름철 장미 서식지는

에어컨 실외기 앞이라고 단언해 보겠습니다.

키워낸 꽃 봉오리를 제대로 피우지도 못하고,

말라버리는 불상사조차 대자연의 계획은  아니었을 텐데

여러모로 우리 동족들로 인해 고통받는

이 여름날의 생명들에게 미안함을 전합니다.




아래 동영상을 음악과 함께 감상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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