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곳에서 한 달 살기'가 유행인가 보다. SNS나 유투브 채널에 제주도에서 한 달 살기를 하는 사진과 영상들이 심심치 않게 보인다. 이국적인 자연을 배경으로 한 선명한 사진들과 들뜬 표정의 사람들을 보니 떠나고 싶은 마음이 뭉실뭉실 피어오른다. 낯선 곳에서 한 달 살기를 한다면 어떤 곳이 좋을까. 그러고 보니 내게도 낯선 지역에서 얼마 동안 살아 본 경험이 있다는 사실이 불현듯 떠올랐다.
소록도였다. 전라도 끝의 작고 외진 섬이다. 이름이 작은 사슴이라니 아름답기도 쓸쓸하기도 하다. 과거에 한센병 환자들을 강제로 격리시켰던 가슴 아픈 역사를 지니고 있어 사람들이 쉽게 발걸음 하지 않는 섬이기도 했다. 결혼 후 남편이 그곳에서 일 년 동안 근무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왜 하필 그 먼 곳인가를 생각했다. 서울 고속 터미널에서 버스를 타면 다섯 시간을 넘게 쉬지 않고 달려야 전라도 끝 지점에 도착했고 거기서 다시 배를 타고 들어가는 수고로움 끝에 도착할 수 있었다.
배는 낮에만 운행되었기에 밤이 되면 인적이 끊겼다. 흔한 민박집도 식당도 찾아볼 수 없었다. 소록도는 중앙공원이라는 작은 공원을 사이에 두고 한센병 환자와 가족들이 지내는 환자촌과 공무원들이나 병원 관계자들이 거주하는 주민촌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낮에는 주민들이 낚시도 하고 밭일도 하며 여느 농촌과 다름없는 활동을 하다가도 저녁이 되면 모두들 집으로 돌아가 섬의 안락한 날개 죽지 아래서 고요한 시간을 보내는 것 같았다. 섬의 밤은 길었고 적막했고 신비로웠다.
우리가 묵었던 관사는 방 한 칸 그리고 작은 부엌이 딸린, 아파트로 치면 열 평도 되지 않는 작은 주택이었다. 문을 열면 넓은 벌판이 보였고 이 백 미터 정도 좁은 길을 걸어나가면 인적이 드문 해수욕장이 펼쳐져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도시인들이 마음속으로 꿈꿔보는 바로 한 달 살기에 최적화된 집이 아니었나 싶다. 멀리 숲속에서는 고라니인지 사슴인지 알 수 없는 야생동물의 울음소리가 드문드문 들려왔고, 가까이에선 집에서 먹다 남긴 멸치꽁다리라도 얻기 위해 고양이들이 울어대곤 했다. 낯선 풍경이었지만 자연스러운 일상이었고 뭐 하나 급할 게 없던 평화로운 시간이었다. 그곳에서 우리가 한 일이라곤 낚시를 하고, 물때에 맞춰 바지락조개를 캐고, 산책을 하며 이웃들을 구경한 일이 다였으니 지금의 한 달 살기와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처음엔 시골의 밤이 얼마나 아름답고 신비로운지를 알지 못했다. 불빛 가득한 집에서 대문을 열고 칠흑 같은 어둠 속으로 나아가는 일이 두려웠다. 도시에서만 생활했던 나는 어둠 속에서 내 눈앞에 나타날 존재가 무엇일지 상상하지 못했다. 적막한 가운데 들려오는 바람 소리와 정체 모를 생명체의 바스락대는 소리, 표현할 수 없는 울음소리가 간간이 어둠 속으로 파고들었다. 소록도의 밤에 조금씩 익숙해지고 나서야 남편 손을 잡고 겨우 집 밖으로 나갈 수 있었다. 처음 바라본 어둠 속의 그 별빛을 잊을 수 없다. 별빛들이 축제를 열듯 우리를 향해 와락 다가오고 있었다. 별빛 하나하나에 생명체가 있어 움직이는 것 같았고 별빛들은 우주 너머를 상상하게 만들었다. 가만히 하늘을 바라보고 있으면 내 존재가 작은 점으로 변해 하늘로 스며들 것 같았다. 하늘은 깊었고 나는 별 보다 작은 티끌이었다.
추운 겨울밤이었다. 외벽이 부실했던 관사는 보일러를 올려도 집안에 찬 기운이 가시지 않았다. 초저녁부터 내린 싸락눈이 조금씩 쌓여 가고 있었다. 눈을 보기 힘든 곳에서 자란 나는 일찌감치 저녁을 먹은 후 눈길을 걸어보자 마음먹었다. 옷을 단단히 껴입고 장갑을 끼고 남편과 함께 대문을 나섰다. 휑했던 집 앞의 벌판이 소복한 눈으로 덮여 있었다. 까만 밤과 흰 눈이 함께 펼쳐진 광경이 외계의 어느 행성에 도달한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와!'하고 탄성을 지르려고 하는데 남편이 갑자기 내 팔을 잡았다. 멀지 않은 벌판에 뭔가 반짝이는 게 있었다. 두려움보다는 까만 반짝임의 정체에 대한 호기심이 차올랐다. 우리를 바라보는 빛은 어둠 속에서도 빛을 발하고 있었다. 사슴이었다.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차분하고 아름다운 눈빛이었다.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았다. 짧고도 긴 순간 내가 사슴인 듯 그들이 사람인 듯 서로의 시선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다섯 아니 여섯 마리쯤이었을까. 한참 우리를 바라보다가 안심한 듯 풀밭의 냄새를 맡기 시작했다. 어둠 속에 익숙해지면서 사슴의 머리에 뿔도 보이기 시작했다. 얼마나 아름다운 자태로 흰 눈밭에 서 있는지 그리고 그들 중에 털빛이 하얀 사슴이 있다는 것도 똑똑히 볼 수 있었다. 차가운 공기의 느낌이 없었다면 나는 아름다운 그림책 속 배경 같았던 그 순간을 꿈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날 밤에 대해선 남겨진 어떤 증거도 없다. 사진 한 장으로라도 남길 수 없었던 그때의 순간을 나와 남편은 불완전한 기억 속에 존재하는 그러나 선명한 그림으로 간직하고 있다. 추운 겨울날 먹을 것을 찾기 위해 사슴은 사람들이 살던 집 앞까지 내려왔고 그들의 눈빛은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우리가 서로를 해치지 않을 거라는 믿음의 눈빛을 주고받는 그 기분은 별빛 아래 내 존재가 무해하다는 인정을 받은 것 같아 벅차올랐다. 그저 바라보는 일 만으로도 그들과 하나가 되는 기분이었다.
이듬해 봄이 되어 우린 소록도를 떠났다. 아쉬웠지만 더 오래 머물 수 없는 상황이었다. 부산에 돌아와서도 섬을 잊지 못해 두어 번 정도 섬을 방문했지만 사슴을 다시 만나는 행운은 없었다. 소록도를 찾는 관광객들이 늘어났고, 섬이 점차 개방되어 다리가 놓일 거라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더 이상 배를 타지 않아도 쉽게 섬과 육지를 왕래할 수 있을 거라고 했다. 그런 편리가 강제 격리의 아픈 기억을 가진 소록도 주민들에게 어떤 마음이 들게 하였는지 잘 모르겠다. 잠깐 머물렀던 나는 숨겨둔 보물이 강제로 파헤쳐 지는 기분이었다.
소록도를 다시 찾고 싶은 마음이 불쑥 올라올 때가 있다. 사람들이 다 떠난 후의 해수욕장과 몇 안 되는 아이들이 다니던 작은 분교, 울창한 나무들이 잘 가꾸어진 공원, 깨끗한 바다 갯벌에서 건져올린 바지락조개의 신선하고 비릿한 냄새가 기억 속에 저장되어 있다. 소록도의 장면들이 무척이나 그립지만 쉽게 발걸음이 향해지진 않는다. 다시 마주하게 될 소록도가 전과는 다른 모습으로 다가올까 두려운 까닭이다. 마음속에 간직해 온 별빛과 아름다운 눈빛의 사슴을 잃어버리고 싶지 않다. 내 존재가 소록도라는 자연의 일부분이었던 그 순간을 오랫동안 간직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