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빛의 말

아빠에 대하여

by 소록소록

내게는 나와 닮은꼴인 아빠가 있다. 일제 강점기 시절 태어나 국민학교 시절에 한국 전쟁을 겪으셨다. 산골짜기 깊었던 시골 뒷산엔 전쟁에서 죽은 시체들이 곳곳에 널브러져 있었다고 했다. 산 너머 학교를 가기 위해 책 보따리를 가슴에 단단히 동여매고 숨 죽인 채 앞만 보고 뛰었다고 아빠는 그 시절을 회상했다. 함께 맥주라도 한잔 마시며 기분이 좋아질 때엔 그 시절의 이야기가 하나씩 튀어 나오곤 했다. 나는 그 때마다 마음속에 또아리를 틀고 있던 힘든 기억들을 아빠는 어떻게 다 안고 사셨나 싶어 코끝이 찡해진다.


집을 떠나 서울에서 대학생활을 시작했던 신입생 시절, 친구들과 기숙사에서 노닥거리고 있는데 인터폰이 울렸다. 누군가 면회를 신청했다고 내려오라는 사감의 목소리였다. 낯선 서울에서 나를 찾아올 이는 아무리 생각해 봐도 떠오르지 않아 뭔가 착각이 있는 게 아닐까 갸우뚱거리며 입구로 나갔다. 거기엔 멀찌감치에서 학교 기숙사를 이리저리 살피고 있는 양복 차림의 아빠가 서 있었다. 나는 놀란 목소리로 아빠를 부르며 뛰어갔다. 아빠는 딸을 찾았다는 기쁨과 안도감으로 환하게 웃고 있었다.


서울 출장을 왔다가 부산으로 돌아가기 전 나를 만나러 이곳까지 온 것이었다. 핸드폰도 없던 시절이라 헛걸음할 가능성이 만날 가능성보다 훨씬 컸는데, 아빠는 낯선 길에서 땀을 흘려가며 지하철을 타고 긴 학교 캠퍼스를 가로질러 여기까지 온 것이었다. 잘 지내고 있냐고 아빠는 내 눈을 바라보며 물으셨다. 잠깐의 그 눈빛을 나는 기억한다. 뭐라고 대답을 하더라도 내 눈빛만 보면 다 알 수 있다는 아빠의 마음이 느껴졌다. 반갑고도 갑작스러운 만남에 뭐라 허둥대며 대답했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아빠의 얼굴을 자꾸자꾸 바라보며 비시시 웃었던 것 같다. 잠깐 차 한 잔 마실 시간도 없이 내 얼굴에 아빠 특유의 눈도장을 찍은 다음 서둘러 기차역으로 가야 한다고 하셨다. 전쟁 통에 딸 생사를 확인하듯이 얼굴만 확인한 채 서둘러 떠나셨다. 꽃이 활짝 핀 생기발랄한 캠퍼스와는 어울리지 않던 아빠의 양복 입은 뒷모습을 사라질 때까지 바라보았다.


내 아이들이 다섯, 여섯살 즈음 나는 경계성 종양이라는 병명으로 수술을 받은 적이 있다. 전신마취를 한 채 네 시간 정도 진행되는 수술이었다. 아이들을 맡기고 수술을 하러 들어가던 날, 수술에 대한 두려움보다는 당장 집안에 내 손이 가야 할 곳을 단도리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입원 다음날 수술방에 들어갈때에서야 비로소 수술이 실감이 났다. 새벽 첫 수술이라 고요한 병원에 인턴, 간호사들만 분주한 시간이었다. 간호사가 밀어주는 대로 침대에 누워 병원 복도를 지나가는데 저기 멀리서 낯익은 모습이 보였다. 새벽부터 수술실로 들어가는 딸을 보겠다고 달려오신 아빠가 두리번 거리고 계셨다. 하룻밤 새 환자의 몰골이 된 딸을 아빠는 한눈에 알아보고 가까이 다가오셨다. 마치 당신이 어딘가 아픈 것처럼 퀭하고 슬픈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빠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고 나 역시 별말을 하지 못했다. 간단한 수술이니 걱정하지 말라고 웃을 수밖에 없었다. 수술방에서 마취약이 몸 안으로 들어오는 순간에도 아빠의 그 퀭한 눈빛이 어른거렸다.


아빠는 이제 여든세 살의 나이가 되었다. 어린 딸을 바라보던 그 눈빛으로 덩치 큰 손자들을 바라보신다. 그 마음엔 호기로웠던 아빠의 청춘도 있고, 못다 이룬 꿈도 녹아들어 있다. 아이들에게 좋은 세상이라 용기와 의지가 있다면 뭐든 다 할 수 있을 거라고 이야기하신다. 아빠의 눈꼬리는 점점 더 내려와 순한 눈빛이 되어가고 웃지 않아도 눈가엔 주름이 잔뜩 묻어 있다. 흐려져 가는 눈빛이지만 젊은 딸에게 보냈던 그 마음으로 늙어가는 딸을 애틋하게 바라보신다. 나는 그 눈빛이 좋아 자꾸 아빠를 불러본다. 아빠의 따뜻하고 순한 눈빛을 잃게될까 나는 늘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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