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도의 날 10.25
흠뻑 젖은 울릉도가 모습을 드러냈다. 8월의 뜨거운 열기를 품은 채 좁고 분주한 도로에, 아담한 집과 상점에, 가파르게 솟아오른 절벽에, 끝이 보이지 않는 바다까지도 비와 운무에 잠겨 있었다. 하늘이 열린 듯 세찬 비를 마주하게 될 줄 예상하지 못했다. 울릉도는 고깔모자처럼 경사진 지형이라 비가 쏟아지니 계곡물 흐르듯 도로에 물이 흘러내렸다. 이런 낯선 장관이 볼거리이긴 했지만 어렵게 온 여행 일정에 먹구름이 가시지 않으면 어쩌나 걱정이 앞섰다.
비를 피할 겸 아침 식사를 위해 식당을 찾았다. 간판도 도로도 익숙한 한글 표기이지만 신대륙인 듯 모든 게 생소하다. 문이 닫힌 가게에는 ‘육지 다녀옵니다’라는 생소한 글귀가 재미나고 다정하다. 메뉴판에 적힌 오징어 내장탕, 따개비밥은 듣기만 했을 뿐 먹어보지 못한 낯선 음식이다. 식재료만큼 그곳 삶을 잘 반영하는 게 있을까. 섬이기에 그들만의 방식으로 지켜온 음식이 반갑고 귀하게 느껴졌다. 친숙한 경상도 말씨의 주민들은 관광지에서 기대되는 친절보다는 거친 울릉도 바다의 직설적이고 숨김없는 표정을 지녔다.
울릉도에 도착하는 대로 곧장 독도로 향할 계획이었는데 배가 항구에 닿기도 전에 독도행 배가 취소되었다는 통보를 받았다. 여행 운이 따라주지 않는 것일까. 평생 처음 마주할 독도를 상상하며 한껏 부풀었는데, 또다시 보러 올 수 있을지 흥분되었던 마음에 김이 빠졌다. 궂은 날씨 때문인가 했는데 배의 결함 문제라니 소문으로만 듣던 독도 입성의 높은 문턱을 확인시키는 듯했다. 도동에 위치한 독도 박물관으로 아쉬운 발걸음을 돌렸다. 비를 맞으며 찾아간 박물관은 먼 동해와 도동항이 내려다보이는 곳에 있다. 선명한 영상을 통해 화창한 날씨의 아름다운 독도 풍광을 보여주고 있었다. 동해의 외로운 섬이라는 노랫말이 무색하게 독도는 여러 개의 섬이 모여 각자의 위용을 뽐낸다. 동도, 서도라고 이름 붙인 두 개의 큰 섬 외에도 89개의 작은 부속 섬들과 암초로 이루어진 화산섬이다. 상공에서 다양한 각도로 찍어낸 영상은 독도에 가지 못한 마음을 달래주기는커녕 직접 그 기운을 느껴보고 싶다는 바람을 더 강렬하게 했다.
독도 박물관에는 영상관 외에도 독도가 대한민국 영토임을 증명하는 역사적 자료가 전시되어 있다. ‘삼국사기’에는 신라 이사부가 우산국을 신라 영토로 편입시킨 기록이 있으며, ‘세종실록지리지’에는 울릉도와 독도의 위치와 연혁이 기록되어 있다. 광복 이후 1946년 기록된 ‘연합국 최고사령부 관찰지도’에도 울릉도, 독도, 제주도 등이 일본에서 분리 반환된 점이 명확히 기재되어 있다. 또 다른 전시관에는 실제 독도를 생활 터전으로 삼았던 독도 최초 주민 최종덕 씨와 그곳에서 해녀 활동을 해왔던 어로 생활의 기록과 사진, 그리고 독도 경비대의 활동을 알려주고 있었다. 그 외에도 독도의 생태계와 지질 환경을 소개하는 전시는 신비로운 섬에 대한 관심을 더 불러일으켰다.
그 간절한 생각 때문이었을까. 오후에 출발하는 독도행 승선표를 어렵게 구할 수 있었다. 하늘이 다시 주신 기회라 생각하며 서둘러 여객선 터미널로 갔다. 승선 시간까지 아직 두 시간이나 남았지만 같은 기대로 일찍 온 사람들이 하나, 둘 모여들기 시작했다. 독도에 발을 디디겠다는 열망으로 금세 터미널은 왁자지껄해지며 설렘과 흥분의 기운이 가득해졌다. 태극 문양의 두건을 쓰고 태극기를 손에 쥔 젊은이들, 기념 머리띠며 독도를 반길 소품을 지니고 부모를 따라온 아이들, 오랜 기다림으로 오늘을 기대했을 나이 지긋한 노인들. 개량 한복을 곱게 입고 손에 태극기를 들고 있는 젊은이는 마치 21세기의 독립운동가 같았다. 독도 사랑을 표현하는 열정적인 분위기 속에 우리도 태극기를 손에 들고 입도하는 순간을 애타게 기다렸다.
세 시가 가까워져 오고 탑승에 대한 기대는 한껏 높아져 있는데, 독도행 ‘씨스타호’가 아직 수리 중에 있다는 방송이 나왔다. 예정보다 늦어졌지만 빠르게 수리하여 탑승 안내를 하겠다며 안전히 대기하라고 했다. 순간 대기실은 웅성거림과 함께 탄식이 흘러나왔다. 하지만 독도의 입성에는 그만한 대가를 치를 것을 각오한 것인지 다시 차분한 기다림으로 회복되었다. 한 시간, 두 시간. 기다림이 길어지자 몇몇은 사무실로 들어가 진행 상황을 문의하는 듯했고 곳곳에서 불만이 터져 나오기도 했다. 기다리다 취소하고 아쉬운 발걸음으로 돌아가는 이들도 있었다. 그래도 대부분은 이번 기회를 놓치지 않겠다는 비장한 마음으로 탑승 안내 방송을 하염없이 기다렸다. 그 의지를 관계자들도 느꼈는지 늦더라도 반드시 독도로 출항시키겠다는 의사를 알려오자 박수가 터져 나왔다. 독도라는 섬이 아득히 멀고도 반드시 닿아야 하는 열망의 장소로 마음에 새겨지고 있었다.
결국 다섯 시가 넘어서야 승선 안내를 받을 수 있었다. 기다린 고생은 까맣게 잊은 채 오직 독도에 가게 되었다는 기쁨으로 우리는 환호했다. 울릉도 도동항에서도 배를 타고 한 시간 반을 가야 닿을 수 있는 데다가 접안의 가능성도 적으니 출발한다고 해도 아직 절반의 성공이다. 독도는 동해의 깊은 바다에 있어 주변에 파도를 막아줄 시설물이 없다. 일 년에 성공적인 접안을 하는 날이 50일에서 60일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니 ‘삼대가 덕을 쌓아야 독도에 입도할 수 있다’라는 말이 괜한 과장이 아니었다. 맑은 날씨에 울릉도에서 출발해도 금세 운무에 잠겨 잘 볼 수 없는 날이 많고, 접안이 힘든 날엔 배를 탄 채 섬 한 바퀴 둘러본 후 아쉽게 돌아오는 날이 더 많다고 했다.
영상으로 보았던 이미지를 잊은 채 나만의 오감으로 독도를 느끼고 싶었다. 과연 우리의 지극한 기다림을 가련히 여겨 독도는 입도를 허락해 줄 것인가. 서둘러도 일곱 시가 넘어 도착할 텐데 해가 져서 어두운 바다와 섬이 잘 보이지 않는 게 아닐까. 아침부터 내린 비로 암초가 젖어 볼품없는 모습을 보이는 건 아닐까. 설렘과 두려움으로 여러 갈래로 마음이 흩어진다. 배의 흔들림으로 멀미를 심하게 하는 이들도 있었다. 마치 지구 반대편의 다른 대륙을 가는 듯 독도로 가는 길은 멀고도 험난했다. 마침내 독도에 닿을 수 있다는 안내 방송이 나오자 배 안에는 다시 설렘과 흥분이 가득해졌다. 기다림과 뱃멀미를 잊은 채 준비한 태극기를 손에 쥐고 차례로 하선했다.
태초의 지구는 이런 모습이었을까. 아득히 깊은 대양의 저녁을 바라본 적이 없다. 낮게 퍼진 구름과 하늘빛은 예술가가 일부러 만들어 낸 그라데이션처럼 넓게 퍼져 있었고 그 아래 바다는 깊이를 헤아릴 수 없는 짙고 잔잔한 반짝임으로 하늘빛과 또 다른 조화를 만들어 냈다. 그 중앙에 거칠고 자유로운 모양으로 하늘을 향해 불쑥 솟아 있으니 섬은 인간이 만들어 내지 못할 신의 작품일 수밖에 없다. 저물어 가는 해의 잔영을 등진 채 거무스름하게 우뚝이 솟은 독도는 기이한 환영이 되어 벅찬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섬의 웅장함은 마치 까맣게 잊고 있었던 생명의 기원을 발견한 기분이 들게 했다. 해질녘의 대양은 광활한 고요에 잠겨 경건한 기도의 시간을 불러낸다. 자연의 소리에 둘러싸인 독도와 대양은 또 다른 신비로운 섬의 이야기를 들려줄 것 같았다. 마음 한편으로는 흥분과 감탄의 소란이 들리지 않는 고요한 독도를 맞이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 시간은 이 순간을 기다려 온 사람들의 기쁨과 환호의 시간이었고 섬은 태극기 휘날리는 축제의 장이었다.
사람의 선택일까, 자연의 허락일까. 우리에게 독도라는 섬이 뜻깊은 의미로 다가오는 것은 한반도의 동쪽 끝, 신비로운 섬이기 때문일까. 일본이 호시탐탐 우리의 영토를 넘보는 첨예한 신경전 때문일까. 독도에 대한 마음은 막연하게 우리 영토에 대한 수호의식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독도에 발을 내디딘 순간 온 마음에 전율이 일었다. 마음의 근원이 이 섬에 본능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증거 같았다. 마치 신대륙의 원주민들이 의문의 여지 없이 땅을 경건하게 받아들이듯이 우리 조상들은 울릉도와 독도에 본능적인 끌림으로 뿌리를 내렸던 것이 아닐까. 처음 독도를 발견한 이도 우리가 느꼈던 섬의 기운을 운명으로 받아들인 게 아니었을까.
화산섬이기도 하지만 풍화에 깎여 가파른 데다 평지가 거의 없다. 식수도 풍부하지 않아 사람이 거주하기에 적합하지 않은 이 땅은 본래 강치의 주요 서식지이면서 새들이 날아와 머무는 곳이었다. 일본인들이 몰려와 대거 강치를 수렵하면서 더 이상 그들을 볼 수 없는 섬이 되었다. 이 외에도 다양한 수종의 바다생물이 있어 생태, 환경 연구에 중요한 의미가 있다. 서로 내 영토라고 주장하는 인간을 비웃듯 독도는 묵묵히 생명을 위해 품을 내어주기도 하고 사람의 발길을 거부하기도 한다. 영토에 혼이 있어 그 장엄한 기운을 쉽게 보여주지 않겠다는 의지로도 느껴진다.
쉽게 갈 수 없는 섬이기에 크게 훼손되지 않았고 고유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는 점, 그래서 사람들은 더 닿아가고 싶어 한다. 마치 제 모습 그대로이고자 하는 자연과 누리고 싶은 인간의 욕망이 힘겨루기하는 것 같다. 독도는 인간이 아닌 수생 동물에게 허락된 영토였는지 모른다. 인위적인 방법으로 섬을 누리고 지키겠다는 열망이 오히려 섬을 훼손하고 있는 게 아닐까. 강치가 살아가던 그 시절의 아름다운 독도를 떠올리면 인간은 섬의 유난스러운 불청객이었을 게다.
독도에 발을 닿을 수 있는 삼십 분의 시간은 순식간에 흘러갔다. 다시 보기 힘들 웅장한 광경을 사진 속에 담느라 모두 분주했다. 처음 하선할 때의 하늘빛이 점점 더 짙어져 바다와 동색을 이루었다. 대양이 밤을 준비하는 시간, 은은한 해의 잔상이 남아 있던 하늘의 색은 바다 아래로 숨어 들었다. 빛을 품은 바다는 더 잔잔해지고 흉내 낼 수 없는 장엄함이 흘렀다. 승선하라는 신호의 뱃고동 소리가 울렸다. 잠시 머물게 해 준 독도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마지막 섬의 모습을 시야에 담았다. 유해한 인간으로 살아가지만 최소한 신비로운 자연의 섭리를 잊지 않기를 기도하는 마음으로 울릉도로 다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