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 아줌마의 어린이 날
"엄마는 딸이 좋아? 아들이 좋아?"
가장 애교스러운 표정으로 평소의 내 목소리 톤에서 두 단계 정도 올려 물었다.
순간 엄마의 당황스러운 표정과 어이없는 듯한 웃음이 내 눈에 포착된다.
"아이... 엄마.. 솔직히 말해보라니까. 엄마는 멀리 있는 아들이 좋아... 아님 가까이 있는 딸이 좋아?"
간절히 엄마의 답을 원했지만 답을 듣지 못한 채 그만 잠에서 깨고 말았다.
'아! 10초만 더 기다렸다면 엄마의 대답을 들을 수 있었을 텐데... 엄마의 대답은 무엇이었을까?'
엄마의 난처한 표정 뒤에 나온 말이 무엇이었을지 곰곰이 생각에 잠겼지만 엄마는 난처한 표정만큼 사이다 같은 답을 내진 못했을 것 같다. 엄마가 '물론 우리 딸들이 더 좋지...'라고 이야기했다면 엄마의 임기응변식 대답이 아닐까 의심했을 터이고, 그래도 아들이 좋다는 답을 들었다면 내 마음은 아마도 장맛비를 혼자서 우산 없이 처절히 맞고 걷는 쓸쓸함을 느꼈을 것이다. 그러니 그쯤에서 잠이 깬 건 다행스러운 일일지도 모른다.
다 자란 딸과 아들을 키우는 나이가 된 나와 언니는 아직도 이렇게 엄마에게 딸이 좋은지 아들이 좋은지를 물어보며 엄마의 사랑을 확인받고 싶어 한다. 그 마음엔 우리에게 사랑의 결핍이 숨겨져 있을거라 우리는 확신한다. 명절이나 가족들이 함께 모이는 날을 보내고 나면 우리 자매는 합심하여 엄마가 얼마나 오빠만을 챙기는지에 대한 뒷담화를 늘어놓았다. 오빠를 바라보는 엄마의 애절한 눈빛을 발견할 때면 우리 자매는 그 편애를 못 먹을 감처럼 '톡' 하고 찔러보고 싶었다.
엄마는 40년대에 아들 넷, 딸 둘의 형제자매 사이에 장녀로 태어났다. 큰 아들은 집안의 장손으로 아무도 넘보지 못할 자리를, 작은 딸은 집안의 막내로 보호받을 자리를, 그리고 나머지 남자 형제들은 집안에 힘을 보탤 아들들로 인정받으며 사랑받았지만 엄마는 늘 그들을 뒷바라지하는 할머니의 도우미 역할이었다고 했다. 큰 딸은 살림 밑천이라고 믿던 그 시기에 엄마는 정말 살림 밑천의 역할을 해 내야 했다. 그렇게 아들을 중요시하던 할머니 밑에 자란 엄마는 그 시절 엄마가 겪었던 할머니의 노골적인 편애와 그녀가 받은 설움에 대해 넋두리하곤 했다.
시집살이한 며느리가 더 무섭다고 했던가. 엄마는 자신은 그런 차별은 하지 않노라 했지만 우리가 경험하는 엄마의 차별은 20세기에 걸맞게 은근하고도 교묘했다. 엄마의 선언과 본능적 애정은 조금 엇박자로 진행되었다. 물론 엄마가 우리를 키울 때엔 대놓고 남아 선호 사상을 표현하기엔 좀 눈치를 봐야 하는 시절이었다. 아들을 꼭 낳아야 하는 마음가짐은 다 있었지만, 대놓고 딸, 아들을 차별할 수는 없었던 것 같다. 그 시절에도 엄마들의 은근한 아들에 대한 든든함과 자랑은 예민한 딸들의 레이더 망엔 다 걸려들기 마련이었다.
이를테면 이런 것이었다. 교육에 열정적이던 엄마는 오빠를 동네 국민학교가 아닌 집에서 다소 떨어진 사립 국민학교에 무리해서 입학시켰다. 넉넉하지 못한 집안 살림에도 불구하고 엄마는 아들을 좋은 학교에 보내고 싶다는 열망이 가득했던 것 같다. 당연히 우리 자매도 그 학교로 입학하리라 기대했다. 그 당시 사립 국민학교의 인기는 높아서 추첨을 통해 입학 허가가 떨어졌는데 언니는 추첨으로 합격을 했고 나는 떨어졌다.
"엄마.. 나 이제 국민학교 못 가는 거야? 으아...."
추첨에서 떨어지던 날 나는 이제 학교를 다니지 못한다는 절망감에 펑펑 울었다. 울다 지쳐 슬쩍 바라본 엄마는 나의 비극을 전혀 비극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것 같았다. 오히려 더 잘 되었다는 후련함의 표정으로 동네에 가까운 학교에 가게 해주겠다며 웃으며 나를 달랬다. 그리고 사립학교에 잘 다니고 있던 언니마저 나와 같은 일반 학교로 전학시켜 함께 다니게 했다. 아들은 사립에 딸들은 공립학교에 다니게 된 것이 내가 뽑은 추첨 때문이라는 공식적인 이유였지만 나는 엄마의 그 안도의 미소를 기억한다.
또 이런 크리스마스 아침도 기억한다. 우린 셋은 산타 할아버지의 선물을 기대하며 작은 양말 대신 큰 보자기를 주머니처럼 만들어 머리맡에 두고 잠들었었다. 꿈에 부풀어 잠에서 깼을 때 우리는 오빠의 터질듯한 보자기와 우리의 작고 볼품없는 보자기를 확인하고 씁쓸한 마음을 달래야 했다. 오빠는 그토록 사고 싶어했던 탱크 조립 셋트, 나와 언니는 문방구에서 눈에 띄지 않게 먼지 쌓여 있을 문구 종합셋트와 사진 앨범이었다. 웃지도 울지도 못하는 우리 자매를 보고 엄마는 그제야 눈치를 채고 이리저리 우리를 달래려고 애썼다. 언니와 나는 왜 산타도 오빠의 기도를 더 잘 들어주는지 고민에 빠졌다.
5월 초 연휴에 오빠가 서울에서 내려왔다. 어버이날 겸 부모님과 함께 시간을 보내겠다고 했다. 엄마의 기분이 좋아 보였다.
"엄마, 엄마는 그렇게 오빠가 좋아?" 농담처럼 엄마에게 장난을 걸었다.
"아니.. 뭐가 좋아... 오면 밥해주고 귀찮기만 하지 뭐... "
엄마도 진심을 숨긴다. 이미 냉장고에는 오빠가 좋아할 만한 음식 재료들이 꽉 채워져 있는 걸 나는 안다.
"오빠 덕에 나도 오랜만에 엄마 음식 솜씨 맛보겠네!"
음식을 준비하는 엄마에게서 콧노래가 들려온다. 엄마는 정말 아들이 좋은가 보다.
아들이 주는 저 힘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그렇다고 엄마의 사랑을 의심하지는 않는다. 여전히 엄마는 우리 자매의 건강과 경제 상황과 그리고 아이 키우는 고단함을 염려한다. 언니가 좋아하는 반찬을 만들 때면 맛있게 먹을 언니를 그리워하기도 하고 허리 통증이 심한 막내딸을 위해 반찬을 만들어주는 수고로움도 자처한다. 이 나이에도 엄마가 아들을 더 사랑하는지 딸도 사랑하는지를 자꾸 의심하게 되는 건 엄마의 사랑을 의심하기보다는 오빠보다는 아주 조금 부족한 그 빈자리의 결핍 때문이다. 아들 다음 사랑이라는 그 2순위가 늘 배고프게 만든다.
"에이. 아들이 뭐가 좋아! 이렇게 살뜰한 딸들이 최고지. 딸이 최고라니까!"
우리는 이런 속 시원한 말이 듣고 싶었던 거다.
아들 둘을 키우는 나는 아직 잘 모르겠다. 물론 아들들이 이쁘고 좋긴 하지만 만약 내가 딸이 있었다면 딸을 대하는 마음과는 또 달랐을까. 그렇지 않을 거라 생각한다. 아니, 그렇지 않아야 한다. 엄마 역시 딸들을 사랑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아들에 대한 특별한 사랑은 포기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 사랑에 자꾸 훼방을 놓고 싶다.
언니와 나 의기투합해서 이번 어린이 날엔 돌직구 질문을 날리려고 한다.
"엄마는 다정다감한 우리 딸들이 좋아? 아니면 무뚝뚝한 오빠가 좋아?"
선전포고의 질문이 될 것이다.
꿈이 아닌 현실에서의 질문이니 엄마도 피할 수 없겠지.
유치하지만 이 질문엔 나이가 중요하지 않다.
오십이 다 된 중년의 딸들에게도 엄마의 온전한 사랑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