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결한 삶을 꿈꾸며
"사랑합니다, 고객님~"
전자제품 AS문의를 위해 전화했을 뿐인데 하이톤의 콧소리 응대를 받으면 당황스러워진다. 내가 그대를 알지도 못할뿐더러 얼굴도 본 적이 없는 그대가 내게 사랑을 화들짝 놀랄 만한 활기찬 목소리로 고백한다면 나는 뭐라고 응대해야 할까. 그다음 대화를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하다. 내가 사랑한다고 말했으니 순순히 고분고분하게 말하라고 약을 치는 것인가 아니면 우선 당황스럽게 만들어 혼미하게 만든 다음 그들의 제품을 사랑해 달라고 다시 요구하려고 하는 것인가.
TV 프로그램에서 본 정신과 의사의 조언에 의하면 상대의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도록 노력하는 것이 건강한 정신상태로 살아가는 한 가지 방법이라고 했다. 시어머니가 피곤할 테니 이번 명절에 오지 말거라 하면 그 말 그대로 "네 어머님, 어머니 말씀대로 할게요..." 하면 된다고 너무 눈치 빠른 것보다 차라리 곰이 되는 게 좋을 때가 있다고 한 말을 귀담아 들었었다. 하지만, 이런 응대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다간 미친 여자가 될 게 뻔하다. 과한 반응을 만나면 액면이 아닌 그 저의를 의심하며 계속 꿍꿍거리게 된다.
"도대체 왜 저러는 걸까. 나더러 어쩌라는 말이냐..."
과한 대응이 결코 고객응대에서만 있는 상황은 아니다. 나 역시 필요 이상의 과잉의 응대를 하고 산 것은 아닐까 고민하게 된 건 우연히 보게 된 동영상 때문이었다. 며칠 전 둘째 아이가 반려묘 달이의 우스꽝스러운 포즈를 찍은 동영상을 보여 주었다. 동영상엔 달이 모습과 함께 낯익은 배경 소음이 깔려 있었다.
"뭐? 저게 내 목소리야? 엄마가 저런 코 맹맹 소리로 말한단 말이야? 어. 머. 나..."
아이들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대꾸한다.
"엄마 원래 저런데?..."
다른 인물이었다. 어렴풋이 기억이 났다. 시어머니와의 통화였다. 그저 평범한 안부를 묻는 통화였는데 내 목소리는 한 옥타브 정도 높게 그리고 과하게 염려하기도 또 과하게 감사하기도 한 말투였다.
하루 동안 내가 뱉은 말을 계속 녹음시켜서 듣는다면 나는 어떤 말을 하고 살아가고 있을지 궁금해졌다. 십 대들에게 자신들의 하루 대화를 녹음해서 들려주면 끝없이 흘러나오는 욕 섞인 대화에 그들 자신도 놀란다고 하는데 과연 나의 대화는 어떻게 흘러가고 있을까. 나의 이런 과잉친절의 대화는 도대체 누구를 위해 무엇을 원하는 대화였을까. 싹싹한 며느리라는 칭찬을 받고 싶은 마음과 상대를 기분 좋게 만들고 싶다는 내 욕망이 내 과잉 목소리에 숨겨져 있었다. 물론 그 순간의 염려와 감사의 마음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동영상 사건 이후로 나는 내가 한 말을 다시 한번 생각한다.
'너 이 말 진심이지? 과했나? 아니 좀 더 표현해도 되지 않았을까?' 하는 자기 검열이다. 게다가 좀 과하다면 과한 말을 했던 내게 다시 묻는 거다.
'상대에게 좀 더 인정받고 싶은 거구나...' 순간 부끄러워진다.
'나란 인간 이렇게 인정받고 사랑받고 싶어 하는 존재였구나. 그대로의 나를 보여주는 게 불안했구나...'
정혜윤의 <아무튼, 메모>에 이런 글이 눈에 띄었다.
"어느 날 정말로 '갑자기' 결심했다. 달라지기로. 뭔가를 하기로. 그만 초라하게 살기로. 제일 먼저 남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떠보는 일을 그만뒀다. 누가 나를 좋아하고 좋아하지 않는지 관찰하는 일도 그만뒀다. 누군가 나를 좋게 생각한다고 "넌 내게 딱 걸렸어!" 기뻐하는 일도, 나쁘게 생각한다고 앙심 품는 일도 그만뒀다. 남의 마음에 들지 않을까 걱정하는 일도 그만뒀다. 삶이 간결해져서 좋았다...."
간결한 삶. 내가 느끼는 딱 그만큼의 감정을 표현하는 삶. 상대의 감정을 살피며 내 감정을 고무줄처럼 늘였다 줄였다 하지 않는 그런 삶을 살고 싶다. 과하게 고객에게 사랑한다 말하지 않아도 고객의 요구에 적절한 응대를 할 수 있는 상담원, 시어머니의 안부전화에 있는 그대로 그들의 안부를 묻고 답할 수 있는 나의 여유, 그리고 매번 내가 뱉는 말에 스스로 검열을 하지 않아도 진실되게 말하는 솔직함을 원한다. 과하지 않음이 무례함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좋겠다.
글을 쓰는 동안 반려묘 달이가 슬금슬금 다가와 내 종아리를 비빈다. 달이의 애정표현이다. 그리고 미련 없이 편안한 자리를 찾아 가버린다. 달이는 그 선을 알고 있다. 자신이 원하고 원하지 않는 선. 애정표현은 여기까지, 그리고 미련 없이 내가 원하는 휴식을 찾아 떠나기. 그래서 달이의 애정표현을 받는 건 언제나 기쁘다. 그의 진심이니까. 그리고 그가 냉정히 뒤돌아서는 것도 인정이 된다. 그렇다고 그가 나를 사랑하지 않는 걸 아니까. 쉬고 싶은 그의 마음을 이해하니까.
딱 달이 만큼의 친절이 내 몸과 마음에도 찾아와 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