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희은의 "엄마가 딸에게"를 듣고
운전 중이었다.
<엄마가 딸에게>란 양희은의 노래가 흘러나왔다. 가수 양희은의 노래를 들으면 나이가 들수록 더 깊어지는 목소리에 마음이 묵직해진다. 그녀의 이십 대의 목소리가 청량한 새소리였다면 지금의 목소리엔 세월의 깊이가 담겨 있다. 더 이상 흔들리지 않는 나무 같기도 하다. 그런 그녀의 목소리 뒤에 앳된 딸 역할의 노래가 나온다. 그 대목에 울컥해서 눈두덩이 뜨거워졌다. 엄마의 든든한 목소리에 심취한 지 30초도 지나지 않았는데 딸의 마음에 어느새 홀딱 빙의가 된 것이다.
"엄마는 내 마음도 모른 채 매일 똑같은 잔소리만 반복해
나는 차가운 새장에 갇힌 새처럼 답답해...
엄마의 걱정보다는 훨씬 더 잘 살아낼 수 있어
말하지 않아도 다 알고 있어. 엄마가 나를 사랑한다는 것을..."
다시 노래의 마지막에 엄마는 이렇게 답한다.
"내가 좀 더 좋은 엄마가 되지 못했던 걸 용서해줄 수 있겠니
넌 나보다는 좋은 엄마가 되겠다고 약속해주겠니"
아! 엄마들은 왜 좋은 엄마가 되지 못한 것에 대한 원죄를 업고 살아야 할까. 좋은 엄마가 되지 못한 것에 용서를 구하고 딸에게는 다시 좋은 엄마가 되길 기대하는 그녀의 읊조림이 쓸쓸하게 느껴진다. 엄마가 좋은 엄마라는 구덩이에 빠지기 시작하면 거기서 헤어 나오기가 힘들다. 꼭 좋은 엄마가 되어야 하는 것일까.
"공부해라 그게 중요한 건 나도 알아
성실해라 나도 애쓰고 있잖아요
사랑해라 더는 상처받고 싶지 않아
나의 삶을 살게 해 줘! "
딸은 엄마의 반듯하고 정답 같은 조언에 지친다. 나를 위한 말임을 충분히 알지만, 그리고 나도 그러고 싶지만 마음의 문은 더 견고해진다. 엄마도 스스로 그렇게 살지 못했음을 알지만 내 딸을 너무 사랑하기에 나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다. 그 마음에 냉정하게 '내 삶은 내가 알아서 잘 살아 볼게요!' 하는 딸이어서 다행이다. 엄마의 원죄도 덜고 딸이 가진 마음의 짐도 덜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지 않을까.
큰 아이의 어릴 적 친구들 엄마 모임이 있다. 오랜 시간 동안 아이들이 자라는 것을 함께 보아 온 사이이다. 고만고만한 연령의 아이들을 키우는 엄마들이니 고민도 얼추 비슷하다. 사춘기를 겪는 아들들에 대한 에피소드를 소소한 조언과 위로를 나누며 지내왔다.
어제 그녀들을 오랜만에 만나 함께 식사를 했다. 다시 아이들을 키우는 어려움의 성토가 이어달리기 바통을 주고받는 형식으로 줄줄이 나온다. 입시를 코 앞에 두고 있으니 아이들은 예민해지고 그 아래 둘째가 있는 집은 사춘기까지 함께 겪는 알만한 스토리이다. 심지어 대학생이 된 큰 아이의 연애의 상황에도 엄마는 함께 에너지를 쏟고 있었다.
엄마는 아이에게 어떻게든 도움이 되고 싶어 하고 아이는 그 기운이 부담스럽기도 성가시기도 한 것 같다. 좋은 엄마가 되겠다는 마음을 먹을수록 엄마의 몸엔 힘이 더 들어간다. 아이에게도 그 무게가 고스란히 느껴진다. 엄마와 아이가 좀 더 가볍고 산뜻한 관계는 될 수 없을까.
그냥 괜찮은 어른이 되는 건 어떨까. 좋은 엄마보단 힘이 좀 빠질 수 있다. 괜찮은 어른이라면 아이를 보기 보단 나 스스로를 바라보게 된다. 아이를 위해 기도하는 그 순간에도 나 자신이 좀 더 지혜롭고 나은 사람이 되기를 기도하게 된다. 그런 어른이라면 아이가 힘들 때 슬쩍 한번 토닥거리며 아이를 믿어주는 관계가 되지 않을까. 잘 될 거라고 응원하는 마음으로 바라보는 일, 좋은 엄마라는 부담으로는 쉽지 않지만 괜찮은 어른이라면 가능할 것 같다. 옆집 아줌마의 시선으로 아이를 바라보라는 말이 그런 뜻이 아니었을까.
내 아이에게 힘을 조금만 빼고 내가 괜찮은 어른이 되는 데 더 힘을 쏟고 싶다. 아이가 좀 더 마음에 여유가 생겼을 때 엄마를 좀 더 괜찮게 바라봐 주면 좋겠다. 지금은 아이의 좌충우돌, 고군분투의 삶에 더 무게를 얹지 말아야겠다. 아이가 겨우 한 숨을 내쉬려고 할 때 옆에서 지켜보는 괜찮은 어른이 있었음을 느끼고 안도했으면 좋겠다.
노래의 후렴구는 "라랄라 라랄라...."의 허밍으로 마무리된다. 부디 딸도 엄마도 서로의 마음을 잘 이해했기를 그래서 각자 가볍게 새의 움직임처럼 훨훨 날아 '라랄라~' 살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다시 리플레이 버튼을 누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