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의 비밀
'이기적'이라는 말보다 '이타적'이라는 말을 칭찬으로 알고 살았다. 누군가 내게 '너 왜 이렇게 이기적이니?'라고 말했다면 그 순간 나의 고뇌는 깊어진다. 인생을 잘못 살았구나. 난 이 세상에 정말 도움이 되지 않는 존재일까. 이기적인 내가 이타적인 인간으로 바뀔 수 있는 가능성은 없는 것일까...
정혜윤의 책 <여행, 혹은 여행처럼>을 읽으면서 무릎을 탁 치며 기뻐한 구절이 있다. 정확히 말하자면 정혜윤 작가가 역사학자 강판권 씨와 나눈 대화가 소개된 글이었다. 시골 출신의 역사학자 강판권 씨는 우연한 기회에 나무에 빠져들게 된다. 그가 근무하는 대학교에 있는 나무가 모두 몇 그루인지 그리고 어떤 종의 나무가 있는지를 조사하다 보니 나무를 알아가는 것이 너무나 큰 기쁨이 되었다고 한다.
나무 한그루 한그루가 온전한 존재란 사실을 깨닫고 나무와 자신의 물아 일치의 경지를 느꼈다고 하니 그가 얼마나 나무에 심취해 있었는지 짐작이 된다. 그는 나무에게서 배운 깨달음 한 가지를 이렇게 이야기했다.
"제가 나무에게 배운 것은 철저한 이기주의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기주의자라는 말에 거부감을 갖습니다. 그러나 어설픈 이기주의자가 문제지 철저한 이기주의자는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이기주의와 다릅니다. 철저한 이기주의자에게 이기와 이타는 아예 분리가 안됩니다. 어떤 경우든 자신을 완성해야 남에게 어떤 역할인가를 할 수 있습니다. 나뭇가지가 우리 보고 와서 쉬라고 그늘을 만들었을까요? 우리 보고 와서 감탄하라고 단풍이 들까요? 자기를 위해서 충분히 애써야 합니다. 그것이 나무의 이기주의입니다. 그렇게 치열할 때만 존재는 다른 존재에게 기쁨을 줄 수 있습니다. "
얼마나 통쾌한지 모르겠다. 내 존재에 대해 충만하게 최선을 다하는 삶이 나 자신을 위한 이기주의적 삶인 동시에 다른 이에게도 충만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은 당연한 논리임에도 잊고 살아왔다. 가족을 위해, 부모님을 위해, 그리고 돌봄이 필요한 이들을 위한 삶을 살겠다고 내 삶에 충실할 수 없었다면 제대로의 이타적인 삶도 존재할 수 없음을 말한다. 그러니 제대로 이기적이지도 못하고 그래서 더 이타적일 수 없었던 내 시간들을 돌아보게 된다.
나무가 그들의 생태 시계에 맞추어 새싹을 틔우고 잎의 색깔을 바꾸며, 꽃을 피우기도 하고 그리고 낙엽을 떨어뜨리는 일이 얼마나 스스로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삶임을 나무 전문가 강판권 씨는 깨달았다. 그 힘으로 인간에게 여러모로 도움을 주는 나무는 세상 만물의 본보기가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하게 된다.
나는 내 삶을 얼마나 철저히 완성하고자 노력했는지 집 앞의 벚꽃나무만큼 아름다운 꽃과 싱그러운 잎을 만들도록 치열하게 살아왔는지 돌아보게 된다. 그게 없다면 타인에게 좋은 영향을 주는 힘도 빛을 발하기 힘들다는 말은 무서운 경고처럼 들린다.
토요일 오후 점심을 먹은 후 산책을 나가니 벌써 라일락꽃이 지면서 잎은 한결 더 푸르고 싱그러운 빛을 뽐내고 있다. 내 눈에도 아름다우며, 나비를 춤추게 하는 나무의 이기심에 찬사를 보낸다.
너의 이기적인 노력이 이렇게 세상을 싱그럽게 하였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