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기로운 엄마생활

그녀의 눈빛으로 바라보기

by 소록소록

애정하며 홀릭해서 봤던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이 종영했다.

참으로 슬기로운 의사들이었다. 총명함과 인간다움과 의리와 다정함 등등 뭐 하나 가슴을 찡하지 않게 하는 구석이 없다. 게다가 비쥬얼은 얼마나 아름다운지 보는 이로 하여금 흐뭇한 엄마 미소를 짓게 만든다. 다소 현실성이 없는 인물의 캐릭터라고 비난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다고 부정하고 싶었다. 분명히 그런 슬기로운 의사가 존재할 거라고...


가장 내 마음을 홀리게 했던 인물은 남자 친구들 사이에서 빛나던 홍일점 신경외과의 채송화였다. 그녀가 친구나 동료, 환자를 바라보는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나 역시 모든 등장 인물을 따뜻하게 바라보는 시선을 갖게 하는 마력이 있었다. 상대에 대해 편견이나 오해, 미움의 감정없이 오롯이 한 사람을 그렇게 따뜻하게 이해하는 시선을 보낼 수 있는 그 마음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그녀에겐 삐딱하게 구겨놓은 마음의 주름 같은 것은 애시당초 존재하지 않는 것 같았다.


그런 그녀가 주변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 누구든 그녀를 떠올리면 마음이 말랑해진다. 그런 사랑을 받는 것도 부럽지만 그녀 자신은 얼마나 기쁜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 하는 점이 더더욱 부러웠다. 슬기로운 그녀의 태도를 배우고 싶었다.

'도대체 너란 인물은 어떻게 키워진거니... 네 엄마는 누구시니?...'


슬기로운 엄마가 되고 싶다. 사춘기 아들들을 키운다는 것은 진실로 삶의 슬기로움이 필요한 일이다. 있는 그대로의 아이들의 감정을 읽어보는 일이 쉽지 않았다. 아이들의 복잡한 감정에 내 감정까지 꼬여 있다면 이건 수습 불가능한 일이 된다. 표현되는 아들들의 감정에 그냥 그렇겠구나하며 채송화의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봐주는 일이 슬기로운 엄마가 할 일이었다. 내 아들이기에 복잡해지는 감정은 저 멀리 날려버려야 한다.


어젯밤 모의고사를 치르고, 야간 자습을 마치고 늦게 귀가한 큰 아이의 얼굴은 많이 피곤해 보였다. 몇 번 그럭저럭 원하는 점수가 나와 안도하고 있었는데 어제의 시험은 그렇지가 못했나 보았다. 시험에 대해 불만도 있고 틀린 것에 대한 스스로에 대한 자책감, 아쉬움이 섞여 복잡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몸도 마음도 많이 지쳐 얼굴엔 짜증이 고여 있다.

'참 고단하고 애쓰는 하루를 보내었구나...'

아들의 복잡한 감정에 엄마도 덩달아 마음이 복잡해진다. 슬기로운 엄마라면 멋지게 위로해 줄텐데 슬기롭지 못한 엄마는 그저 피곤하니 얼른 자라는 말 외에 더 할 수가 없다. 바라보는 엄마 마음도 고단했기 때문일까...


작은 아이는 계속되는 온라인 수업으로 점점 말을 잃어간다. 수업을 하는 게 멍하니 컴퓨터를 보고 있는 일이라 상호작용이 아닌 일방적으로 들어왔다 튕겨나가버리는 느낌이다. 친구들과도 잘 못 만나니 손가락으로 주고받는 채팅이 대화의 전부이다. 슬기롭지 못한 엄마는 밥 먹을 때 아이에게 괜시리 이리저리 말을 걸어보지만 시큰둥한 대답만 돌아올 뿐이다. 그래도 슬기로운 엄마라면 좀 더 사춘기 아들과 잘 소통할 수 있는 방법이 있겠지만 그 방법을 몰라 답답해진다.


큰 아들의 마음을 위로하고 싶을 때, 작은 아들의 안개 같은 마음을 이해해 보고 싶을 때 채송화의 눈빛을 생각하려고 한다. 그저 인간적인 눈빛으로 상대를 이해하려고 하는 마음이 느껴지는 눈빛, 그 눈빛 아래애서 많은 사람들이 흔들리고 위로받고 사랑을 느끼지 않던가. 엄마가 슬기롭지 못해 능력있게 대처하지는 못하지만 채송화의 눈빛으로 아이를 바라보고 그들의 마음을 짐작해보는 노력은 할 수 있지 않을까.


그윽하게 바라봐 줘야겠다. 너를 이해하고 응원한다는 마음으로.

단지 그 눈빛이 레이저 광선을 쏘는 눈빛이 될까 내 자신이 두렵다.

채송화, 너는 누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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