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떠나는 아이

떠나보내는 것에 익숙해지기

by 소록소록

오늘 아침 아이를 보냈다.

둘째 아이, 버찌는 떠나는 것에 익숙하다. 어릴 적부터 집 떠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할머니가 시골 큰댁에 가자고 하면 가방을 야무지게 싸서 덥석 할머니 손을 잡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나는 아이였다. 엄마와 떨어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전혀 없었다. 시골에서도 산으로 들로 혼자 흙을 파며 어찌나 재미나게 노는지 스스로 집에 돌아가자고 한 적이 없었다. 신기하기도 했지만 엄마를 찾지 않는 서운함이 있기도 했었다.


초등학교 때엔 혼자 캐나다 밴쿠버에 가겠다고 했다. 캐나다로 이민을 간 친구 집에 놀러 가기로 약속을 했다는 거였다. 이미 친구와 친구 엄마에겐 허락을 다 받은 상태이고 비행기표만 끊으면 된다고 졸랐다. 소심한 엄마로선 혼자 비행기를 타고 그 먼 곳을 가겠다는 아이를 어찌해야 하나 고민스러웠다.


결국 버찌는 큰 가방을 싸서 스튜어디스 어린이 케어를 받아 신나게 혼자 밴쿠버에 갔다. 그때의 기억을 버찌는 지금도 행복해하며 이야기한다. 얼마나 많은 눈이 내렸는지 밴쿠버의 크리스마스트리는 얼마나 컸는지 그리고 친구와 보낸 시골 겨울밤이 어땠는지 버찌의 행복주머니에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스토리가 되었다.


중학생이 된 버찌는 3년 내내 가족 여행 외엔 집을 떠나지 못했다. 학교와 집을 반복하고 그리고 자신이 원하는 고등학교를 진학하겠다고 학원을 다니면서 아이는 서서히 빛을 잃는 것 같았다. 생기 넘쳤던 표정은 사라지고 말 수는 점점 줄어들었다. 학원과 집과 학교에 갇혀 지내는 아이가 안쓰러웠다.


고등학생이 되어 버찌는 원하는 과학 고등학교에 입학했다. 일단은 자신이 좋아하는 과목에 집중해서 공부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비슷한 취향의 친구들이 있을 거라는 기대, 그리고 한 가지 더 기숙학교라는 것이 버찌를 흥분시켰다. 코로나로 인해 한 달 한 달 개학이 늦춰지다 오늘 결국 학교에 들어갔다. 너무 오랜 기간 기다렸기 때문인지 버찌는 무덤덤해 보인다.


어젯밤 트렁크 가방을 꺼내 놓고 이것저것 함께 짐을 쌌다. 역시 버찌는 짐 싸는 것도 익숙하다. 떠나는 것이 즐겁고 익숙한 아이란 것을 새삼 깨닫는다. 처음 하는 기숙사 생활이 걱정스러워 이것저것 잔소리를 늘어놓지만 공허한 메아리밖에 되지 않는다. 버찌에겐 자신만의 지도가 이미 마음속에 그려져 있는 것 같다. 얼마나 많은 시행착오를 거칠지 걱정스럽긴 하지만 그것도 이미 버찌의 몫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이른 아침 학교 정문 앞까지 태워주고 인사를 나누었다. 잘 지내라고 어깨를 토닥이는 데 이미 아이의 어깨는 혼자 여행을 떠나던 꼬마의 어깨가 아니다. 듬직하고 널찍한 어깨다. 넓적한 손을 잡았더니 따뜻한 온기가 느껴진다. 집 떠나는 아들의 체온이 손끝에 남아 아직도 따뜻하게 느껴진다. 손을 흔들며 혼자 큰 가방을 끌며 교문을 들어간다. 떠나는 버찌의 뒷모습은 익숙하다. 앞으로 그 모습을 얼마나 더 자주 보게 될까 생각하면 엄마는 그 모습을 지켜봐주는 존재가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버찌는 어떤 마음일까. 설레고 기대될지, 두렵고 집 생각이 날지... 돌아오는 내내 버찌의 마음을 헤아려 보게 된다. 내 마음은 이미 시원하기도 서운하기도 그리고 그립기도 한 것 같다. 만만치 않을 새로운 세상에 두려움 없이 걸어 들어간 버찌의 발걸음에 건투를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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