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엄마는 언제까지 어려운 일일까.
지인에게서 전화가 왔다.
함께 고3 아들을 키우는 엄마였다. 어떻게 지내냐는 안부 인사 끝에 우린 서로의 불안에 대해 터놓기 시작했다. 온라인 수업 끝에 개학은 가까스로 했지만 짧은 1학기의 기간 동안 고3 아이들이 해야 할 일은 너무 많았다. 당장 이번 주에 중간고사 시험이 기다리고 있고 중간고사가 끝난 바로 다음날엔 6월 평가원 모의평가가 기다리고 있다. 게다가 생기부 작성을 위한 각종 대회들도 사이사이 끼어 있으니 그 일정을 다 소화해 내는 것은 아이들을 슈퍼맨으로 만들어야 가능한 일이었다.
이쯤 되면 아이들은 수시파, 정시파로 나뉘게 된다. 수시파는 1, 2학년 동안 성적과 비교과 관리를 꾸준히 잘해 온 아이들이 끝까지 생기부 관리를 잘해야 가능한 일이고 정시파는 오로지 수능에 초점을 맞추어 공부를 하게 된다. 문제는 그 사이에 낀 학생들이다. 그동안의 생기부 상황과 모의고사 성적이 애매해서 수시로 밀어야 할지 정시로 밀어야 할지 고민이 되는 아이들이 많다.
이 갈림길에 선 아이들은 여러 정보를 통해, 그리고 경험자들의 조언으로 자신의 길을 정하게 된다. 이도 저도 안 되면 둘 다 준비할 수밖에 없다. 지인은 엄마가 좀 더 지혜롭다면 아이에게 이리저리 효율적인 길을 제시하며 좀 더 간결하게 자신의 공부에 집중할 수 있을 텐데 엄마가 현명한 판단을 하지 못해 이럴까 저럴까 고민하다 보니 아이 역시 수시, 정시 둘 다를 붙잡고 고생을 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지인의 말을 듣고 있으니 나도 그녀와 별 다를 바가 없었다.
아들의 선택을 존중한답시고 언제나 나는 뒷짐을 지고 "그래, 그래, 그러면 되겠네..."등의 무책임한 말로 일관해 왔다. 사실 뭔가 조언을 할 만한 정보가 없으니 지혜가 없는 엄마가 선택할 수 있는 건 그것밖에 없었다. 하지만 원래 인생이 다 그런 거지, 엄마가 어떻게 그걸 다 알고 이래라저래라 할 수 있겠냐는 뻔뻔한 나의 생각과는 달리 지인은 스스로를 자책하고 있었다. 나 역시 그녀와 통화를 끝내고 나니 그녀의 자책감과 나의 뻔뻔함까지 함께 뒤죽박죽이 되어 마음이 불편해졌다. 아! 엄마란 무엇인가...
매일 구독해서 읽는 반가운 편지 <일간 이슬아>의 오늘 내용은 문경에서 표고버섯 농사를 하시는 지인의 어머니와의 인터뷰 내용이었다. 인터뷰의 장소는 그녀의 표고버섯 농장이었고 함께 한 이는 작가 이슬아와 그녀의 어머니 복희 씨, 이슬아 작가의 지인 김신지와 그녀의 어머니이자 농장주인 인터뷰이 당사자 유인숙 씨였다. 그들의 이야기는 농사일로 시작해서 어느새 딸의 성장을 지켜보는 어머니와 그 이야기를 듣는 딸들의 구도로 흘러갔다.
하루 종일 고된 노동으로 아이들을 돌볼 여력이 없었던 유인숙 씨는 아이들 스스로 잘 컸다고 이야기하지만 딸을 응원하는 마음은 어느 어머니와 다를 바가 없었다. 그녀의 세상이 문경의 시골 한 마을이라면 당신의 딸은 이 세상 넓은 곳으로 나가 자신의 꿈을 훨훨 펼치며 살기를 바랐다. 그녀의 바람 때문이었는지 유인숙 씨의 딸이자 이슬아 작가의 지인인 김신지 씨는 몇 해전 남미 등을 여행하며 글을 써서 책을 출판한 작가가 되었다. 그녀가 남미의 어느 곳을 헤매며 여행을 다니는 동안 유인숙 씨는 부지런히 표고버섯을 길렀다. 그녀에겐 걱정과 불안의 시간이었다.
딸이 자신의 꿈을 향해 마음껏 하고 싶은 것을 했으면 하는 마음과 오랜동안 연락두절의 상태로 그녀의 세계여행을 걱정되는 마음은 서로 상충되었다. 걱정과 불안이 너무 커서 일을 더 열심히 막~했다는 그녀는 고된 노동의 피곤함에도 걱정으로 밤에 잠이 오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녀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자식을 사랑하고 응원하지만 그 길엔 걱정을 숙명처럼 안고 살아가는 엄마가 있다는 사실에 가슴이 뻐근해졌다.
엄마는 이런 존재였다. 자식의 창창한 앞날에 자신의 걱정과 불안이 걸림돌이 되지 않아야 하기에 그 불안을 스스로 혼자 다스린다. 하루하루 표고버섯을 따는 노동에 딸에 대한 걱정과 기도의 마음을 다했을 그녀의 모습이 그려졌다. 인터뷰를 하는 그들의 사진에 유인숙 씨의 진지한 노동과 딸과의 단란함이 묻어 있다. 딸이 무사히 내 곁으로 돌아와서, 넓은 세상을 보고 돌아온 딸이 기특해서, 그리고 이 이야기를 함께 나누는 것이 좋아서 행복한 순간이었을 것이다.
아이를 낳기 전엔 미처 알지 못했던 엄마의 존재를 하나씩 알게 된다. 매번 처음 겪는 일이라 실수투성이이다. 다음엔 좀 더 잘하겠지라는 말로 나 자신을 다독이기도 했던 순간들이 있었다. 이번에도 그렇다. 고3 입시에 엄마의 정보력은 언제나 부족하고 효율적인 길로 안내하는 노릇은 내겐 역부족이다. 엄마라는 이유로 걱정과 불안은 언제나 세트로 내 일상을 맴돈다. 누구에게도 표현할 수 없는 외로운 고민이 된다. 자책과 뻔뻔함이 서로 왔다 갔다 하는 엄마의 모습이지만 엄마에게 후진은 없다. 그저 묵묵히 진행할 수밖에 없는 삶이다.
새벽밥을 먹고 학교로 나서는 아들 뒤통수에 대고 혼자 속삭인다.
'엄마가 좋은 길잡이가 되지 못해서 미안해. 그래도 엄마는 언제나 널 응원한다. 지름길이 아니더라도 꿋꿋이 네 길로 뚜벅뚜벅 잘 나아갈 거라 믿을 거야.'
현실의 말은 이렇다.
"밥 잘 챙겨 먹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