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의 꽁지머리
엄마는 너의 자유가 부담스럽구나...
"버찌야, 이번 주엔 머리 좀 깎는 게 어떨까?"
"아니, 아직... 앞머리가 좀 더 길어야 묶일 것 같아..."
"꼭 묶어 보고 싶어?...."
"응..."
나는 입을 닫는다. 슬쩍 더운 날씨를 들먹이며 컷트를 유도했지만, 짧은 머리가 너의 긴 목을 더 멋지게 돋보이게 한다고 아부를 했지만, 오늘도 실패다.
학생들의 인권존중의 방침에 따라 중, 고등학교에서 복장에 대한 규율도 너그러워졌다. 여학생들의 화장이나 헤어스타일도 자유롭다. 남학생들의 경우에는 자유로운 스타일을 보여주는 방식으로 머리를 기르거나, 염색, 펌 정도를 하는 것 같았다. 거리에서 만나는 청소년들의 스타일을 구경하다 보면 각자의 개성이 잘 드러나 귀엽기도 하고 또 그렇지 못했던 내 학창 시절을 떠올리며 부러운 마음이 들 때도 있다.
하지만 내 아들의 엄마 입장이 되면 나는 꼰대의 사고가 슬슬 비집고 나온다. 엄격한 규율 속에서 자란 엄마가 자유로운 영혼의 아들을 바라보는 자세에는 좀 더 노력이 필요하다. 버찌가 중학교를 졸업하던 즈음 머리를 길러서 파마를 해 보겠다고 했다. 살짝 웨이브가 져서 뒤로 넘기는 헤어스타일. 고교시절 인기 있던 멋진 오빠의 헤어 스타일이 아니던가. 우린 서로 의견이 합치되어 굵고 자연스러운 웨이브에 성공했다. 멋진 척 머리를 뒤로 쓸어 넘기는 버찌 녀석이 귀여웠다.
아들에겐 다음의 큰 그림이 있었다.
"엄마 다음 주엔 은발로 탈색을 한 번 하고 싶어..."
"뭐라고?"
눈이 왕방울만 해져서 아이를 바라봤다. 버찌는 으쓱 어깨만 들썩일 뿐 엄마의 호들갑스러운 반응이 오히려 놀랍다는 눈치다. 새로운 고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은발 탈색의 머리로 신입생 교복을 입는다는 상상을 하니 머리가 저절로 도리도리 흔들어진다.
"버찌야... 그래도 은발은 좀 아니지 않니..."
(나이 들면 자연스럽게 은발이 돼... 굳이 지금 그래야겠니...)
버찌는 은발로 탈색된 웨이브 머리를 머릿속에 상상하고 있었고, 엄마는 은발을 만들고 싶다는 저 욕구의 풍선에 어떻게 바람을 빼줄까 복잡한 마음이었다.
다행히 미용실 원장님과의 상담 끝에 파마와 염색의 연속 시술은 머릿결에 치명적일 수 있다는 조언을 듣고 탈색의 계획은 무산되었다. 나의 강경한 반대가 아닌 원장님의 의견으로 바람이 빠진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가슴을 쓸어내렸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 후 버찌는 자신의 헤어 스타일에 대해 자주 원장님과 의논을 하는 눈치였다. 감사하게도 원장님은 적당한 선에서 버찌와 서로 타협하며 아들의 욕망을 토닥여 주셨다.
최근에 앞머리가 좀 길어진다 싶었다. 긴 머리가 눈을 찌르고 잘 생긴 얼굴의 반이 머리로 덮이는 중이었다.
"버찌야, 왜 앞머리를 그렇게 안 잘라? 공부할 때 불편하지 않아?"
"음... 괜찮아. 나 머리띠하고 공부하면 돼. 머리 기를 거야."
아니나 다르까. 버찌의 등교 필수품엔 다이소검정 머리띠가 포함되어 있었다. 굳이 그래야 할까라는 말이 목구멍을 간지럽혔지만 다시 꿀꺽 삼켰다. 뭔가 긴 머리의 욕망을 다시 잠재울 방법이 있으리라. 날은 더워지고 머리띠가 야간 자습시간에 한 번 부러져 불편함을 경험하고도 버찌는 머리를 자르겠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다음 기숙사에 들어갈 때엔 머리띠를 여유 있게 두 개를 준비해 가는 것으로 자신의 확고한 의지를 보여주었다.
버찌의 큰 그림은 이런 것이었다. 앞과 중간머리까지는 기르고 뒷목과 귀 주변은 짧게 친 투 블록으로 해서 긴 머리를 고물줄로 묶는 머리. 해외 축구선수나 음악을 하는 이들에게서 본 듯한 헤어 스타일이다. 버찌는 왜 그런 헤어스타일에 꽂힌 걸까. 샤워를 하고 슬쩍 엄마의 고무줄을 가져가더니 한 번 묶어봐 달라고 했다. 뭉툭하고 짧은 꼬랑지가 생기면서 머리가 묶였지만 앞머리가 슬금슬금 삐져나왔다. 버찌는 만족한 듯 거울을 보며 "음... 조금만 더 길면 되겠다.." 했다. 웃기기도 하고 기막히기도 해서 그저 바라볼 뿐이었다.
잘난 척 웨이브를 넘기던 귀여운 녀석에 대한 엄마의 호의는 이쯤에서 끝날 것 같았다. 난 그 머리가 싫다. 그게 내 머리이지 엄마 머리냐고 외친다면 물론 할 말이 없다. 엄마는 정말 20세기의 꼰대 엄마라고 외친다고 해도 또 할 말은 없다. 하지만 뚜껑처럼 윗머리를 묶고 뒷머리는 빡빡처럼 된 그 스타일을 한 아들이 엄마라고 부르는 게 징그러울 것 같다. 드러난 뒷목에 문신을 하겠다고 한다면...? 시원하게 드러낸 귓볼에 피어싱을 하겠다고 한다면...? 확장된 나의 염려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그 머리가 완성되기 전에 어떻게 그 욕망을 뺄까 다시 내 머릿속이 복잡했다.
며칠 전 기숙사에서 아침 일찍 버찌가 톡을 보냈다.
<엄마, 금요일 저녁 미용실 예약 좀 해주세요. 나 머리 자를 거임.>
한 순간 머릿속에 어둡게 내려앉아 있던 장막이 걷히는 듯했다. 기쁜 마음을 살짝 숨기고 물었다.
<아들, 왜? 좀 다듬으려고?>
<아니, 짧게 자를 거야. 룸메 성준이가 나 긴 머리 별로 안 어울리는 것 같대ㅠㅠ>
'아...'
시원했던 마음이 갑자기 씁쓸함으로 변신하는 순간이었다. 몇 주간 버찌에게 짧은 머리가 훨씬 멋지다고 한 엄마의 이야기는 산산이 공중분해되어 온 데 간데 없이 날아가 버렸는데, 룸메의 한마디에 짧은 머리로 자르겠다며 미용실 예약을 부탁하는 아들 녀석이었다. 휑한 바람이 부는 마음을 부여잡고 떨리는 손으로 답을 보낸다.
<응. 알았어. 엄마가 예약해 둘께. 오늘 하루 잘 보내. 하트하트>
이유야 어떻든 혹시나 마음이 바뀔까 급히 하트까지 얹어 보내기를 하는 내 손가락의 움직임이 처절하다.
사춘기 아들의 헤어 스타일은 무죄다. 그의 변덕도 무죄다.
사춘기 아들을 바라보는 엄마는 심하게 피곤이 밀려온다.
오늘 금요일, 그 무서운 아들이 머리 깎으러 기숙사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날이다.
위로의 달콤한 케익이라도 먹어야 웃는 얼굴로 아들을 맞이할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