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보니 고3엄마

by 소록소록

어쩌다 보니 대한민국 고 3 엄마가 되어 있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육아와 교육에 대해 좀 더 미래지향적이고 글로벌한 시각을 키웠다면 또 다른 방법이 존재했을지도 모르나 그저 눈 앞에 놓인 상황에서 별 고민 없이 키우다 보니 꾸역꾸역 공교육의 순서를 따라가다 보니 어느새 내 아이가 고 3이 되어 있다. 이렇게 치열한 경쟁을 해야 한다는 것을 스스로 경험했으면서도 똑같이 아이를 이런 상황으로 내 몬 것 같아 불편한 마음이 불쑥불쑥 올라온다.


수시 원서도 다 접수가 되었고 이제 수능의 막바지에 접어들었다. 코로나 수험생으로 기록될 2002년 출생의 아이들은 여러 가지 고난도 많았다. 초등학교 시절엔 세월호 사건으로 수학여행을 포기해야 했고 (큰 사고에 수학여행으로 투덜거린다면 벌 받을 거야...), 교육과정 변경의 가장 피해자로 지목되는 학년에다가 코로나로 인해 제대로 학교 수업을 다 하지 못한 상태로 수능을 보게 되었다. 게다가 수능 당일에는 마스크에 투명 가림막까지 설치된 책상에서 시험을 치러야 한다는 부담까지 안고 있다.


며칠 전 아이는 마지막 10월 학력 평가 시험을 치르고 돌아왔다. 마지막 학력평가 시험을 보면서 최종적으로 부족한 점을 다시 한번 점검해 보는 의미를 갖는 시험이라고 했다. 눈은 충혈되고 퀭한 데다가 마스크로 인해 더 안 좋아진 피부 상태, 떡진 머리로 나타나 배가 고파 쓰러질 것 같다고 했다. 소화가 되지 않을까 걱정하며 두 끼 내내 죽만 먹은 탓이다. 허겁지겁 밥을 먹는 아이를 보면서 하루 동안 아이가 느꼈을 긴장감, 외로움, 당황스러움, 안도감등등의 감정을 상상해 본다.


현재 아이의 눈 앞에 놓여 있는 상황을 보며 열심히 가고 있는 아이에게 뭐라고 말해 줘야 할까 항상 망설여진다. 조금만 더 열심히 해서 네가 원하는 꿈을 이루도록 하자고 말을 걸어야 할지 아니면 세상엔 너무나 다양한 길들이 많이 있으니 넓게 보고 찬찬히 가자고 말해 주어야 할지 늘 갈피를 잡지 못한다. 이것도 맞고 저것도 맞는 것 같은 줏대 없는 엄마이다.


글을 쓰고 이런저런 책을 읽다 보니 이 세상의 사람들이 살아가는 다양한 방식들을 알게 된다. 최근에 젊은 영화감독 이길보라의 <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어서>를 읽었다. 그녀는 한국의 공교육에서 벗어나 청소년기에 혼자 배낭여행을 하고 자신의 꿈을 찾아 하나씩 이루어 나가며 세상을 배워가고 있었다. 듣지 못하는 장애를 가진 부모 아래 자라면서 그녀가 부모로부터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 바로 ' 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다'라는 말이었다고 한다. 그러니 망설이지 말고 경험해 볼 것.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고 경험하라는 말이다. 당찬 젊은이 뒤에는 역시 지혜로운 부모님이 있다.


어떤 권력 있는 부모처럼 성공가도를 달릴 수 있는 비밀 루트를 아들에게 알려줄 수도 없고 그 정도는 해도 되지 않냐는 의원님들의 뻔뻔한 엄마 찬스, 아빠 찬스도 없다. 눈 앞에 놓인 길에 그저 성실하게 뚜벅뚜벅 가자고 말하는 고지식한 엄마이다. 혹시라도 아들이 원망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슬그머니 네 인생, 내 인생 선을 긋기도 한다. 그저 네가 원하는 삶을 만들어 나가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고 말하지만 아이에겐 허무하게 흩어지는 알맹이 없는 메아리에 불과하다.


수능 스케줄에 맞춰 아침 일찍 등교를 하겠다고 했다. 새벽밥을 먹고 덜 깬 정신으로 나서는 아이와 동네 학교 친구 두 명을 태우고 등교 기사 노릇을 했다. 너무 새벽이라 피곤하겠다며 안쓰럽게 안부를 묻자 해맑은 아이들은 시원한 새벽 공기를 맞으며 학교를 가니 상쾌하고 좋단다. 아! 너무 예쁘게 말하는 아들들에게 사랑과 애정의 마음을 담아 말했다.

"너네들 너무 멋지다!"

나도 멋진 부모가 되고 싶은 욕망이 스멀스멀 피어오른다. 그래도 안다. 그냥 생긴 대로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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