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때문이 아니야

수능일을 앞둔 엄마의 마음

by 소록소록

가을 날씨가 너무 좋다는 사춘기 작은 아이의 메모를 발견했다.

짜~식. 네 눈에도 눈부신 가을은 보이는 구나. 다행이다. 가슴을 쓸어내린다. 사춘기 아이의 눈으로 본 세상은 어떨까 궁금했었다. 앞머리를 길러서 눈을 가리고 있어 제대로 세상이 보이려나 걱정도 되었고 귀에서 떨어질 새가 없는 에어 팟 때문에 지저귀는 새소리는 들리려나 의문이 들었었다.

'그래도 보고 있었구나. 아름다운 세상...'


아름다운 것을 볼 줄 아는 이에 대한 믿음이 있다. 그 아름다움을 누군가 함께 느끼고 싶어 하는 마음까지 든다면 금상첨화이다. 높은 산에 올라 절경을 보게 되면 누군가에게 전화해서 그 벅찬 감정을 전하고 싶다. 이른 새벽 우연히 보게 된 해 뜨는 장엄함을 사진으로라도 남겨 이미 죽어버린 그 장엄함도 소중한 이에게 불쑥 들이밀어보고 싶은 마음이 든다. 그런 마음이 소중하고 아름다운 사람일 거라 확신을 갖게 한다. 그런 사람이랑 오래오래 그 마음을 나누고 싶어 진다.


여느 때라면 가을 하늘과 단풍에 이끌려 여기저기 놀러도 다니고 사는 건 아름다운 점이 많은 거라는 확신으로 집에 돌아오곤 했을 텐데 이번 가을은 쉽게 발이 떨어지지 않는다. 질병 관리청의 코로나 경보 때문만은 아니다. 이른 아침부터 하루 종일 좁은 책상에 앉아 시간이 어떻게 지나가는지, 하루의 시간이 훌러덩 하루의 D day를 까먹고 있는지를 당하듯이 보고 있을 큰 아이를 생각하면 그렇다. 엄마 기분이 좋아지면 아이에게도 좋은 거라고 잘 놀러 다니라고 하는 말은 자꾸 귀에서 멀어져 가는 것 같다.


수능일 이후에 가벼운 마음으로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가득이다. 하지만 막상 그 시간이 되면 달라질 상황이란 걸 누구보다 잘 안다. 큰 아이는 시험을 잘 보든 못 보든 우리 곁을 떠나 친구들과 자유로운 시간을 보낼 것이고 또 나는 멀리서 서먹하고 섭섭하고 아쉬운 마음을 혼자 달래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함께 노력했던 날을 기억해주길 바라는 꼰대 엄마의 심정으로 아이를 원망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언제 엄마한테 놀러 가지 말라고 했나요..."

라고 말한다면 엉엉 우는 심정이 될지도 모른다. 그래도 차마 놀러 갈 수가 없다. 고3 아들을 혼자 아침 먹고 학교 가게 하고 크루즈 여행을 다녀왔다는 친구의 언니 이야기는 내게 신화같이 느껴진다. 그녀의 배포와 담대함에 그리고 강한 아들로 거듭났을 그 아들의 포스에 나는 경이로운 마음이 들뿐이다. 내겐 할 수 없는 일일 것이다.


내가 할 수 없었던 일을 너 때문에 하지 못했다고 원망은 하지 말도록 하자. 그저 엄마 마음이 불편해서 하지 못했던 거라고 인정해야 한다. 수능일이 끝나고 나서는 이 마음을 리셋해 버릴 수도 있기에 지금 다짐해야 한다. 내가 마음 편히 놀지 못하는 건 너 때문이 아니라 나 때문이다. 그러니 원망도 기대도 하지 말자. 조용히 책 읽고 글 쓰고 마음을 다지는 일이 그래도 내 성정에 싫지 않은 일이니 다행이라 생각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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