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봉날 본 영화, ‘F1' 리뷰

Slip stream, Towing and Overtaking

by Jaime

※ 'F1'에 참여했고, 관전했고, 여전히 좋아하는 사람이 공감하고 같이 떠들사람이 거의 없어서(만나지 못해서) 추억팔이 하면서 신나서 떠드는 글

※ 스즈카 서킷에서 영화‘F1'촬영하는 것을 본 사람이 괜히 반가워서 떠드는 글

※ 스포는 없어요. 다만 맥락과 주인공의 일부 장면은 설명할 예정입니다.

※ 틀린 부분이 있다면 꼭! 알러주세요! 전 정말 모르는 채로 살아가고 싶지 않습니다. ㅠㅠ



날이 밝았다.

미리 하는 시사회 응모도 떨어지고, 현생으로 개봉일 하루 전 부터 상영되는 영화도 보지 못했다. 그래도 개봉일에는 꼭 맞춰보고 싶어서 돌비애트머스 관으로 예매한 나, 칭찬해!


뭐니뭐니해도 F1은 사운드다.

실제 두 귀로 들은 것은 V8 사운드 부터였고, 중계로는 V10 사운드부터 들어왔던 나는 요즘의 F1에게 그 시절 괴기음을 기대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F1 머신은 머신 그 자체만으로도 너무나도 경이로운 생명체이기에 V10이든, V8이든, 그리고 요즘의 V6 터보 사운드를 들었던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가슴이 두근거리고 설렐 것이다


영화 ost를 한스 짐머가 작곡했다고 하는데도 한스 짐머의 음악은 그렇게 기대되지 않는 이유는 바로 다양한 각도에서 깔끔하고 시원하게 들릴 F1 머신의 배기음을 들을 생각에 몹시 설렜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기대는 영화를 보는 동안 나의 두 귀를 황홀하게 만들어주는데 큰 몫을 했다.




영화의 첫 시작은 파도다.

흔히 F1은 인생에 비유된다고. 그리고 영화에서 역시 주인공 ‘소니’의 인생에서 여러 변곡점이 있고, 높은 파도와 같은 위기가 있었다는 점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 같아 좋았다.


아무튼 그 파도 속에서 시작된 영화 F1은 전형적인 헐리웃 영화의 스토리를 가지고 진행된다. 하지만 그

서사는 서사이고, F1 팬들이라면 그 누구라도 가슴 뛰게 만드는 장치들이 너무 많아서 행복했던 그런 영화였다(아니 내가 언제 그런 돌비 사운드로 F1 배기음을 듣겠어!)


계속 배기음 이야기를 하지만 사실 개인적으로는 V8 NA 엔진이었다면 이 영화는 만들어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처음 F1 배기음을 라이브로 들었을 때는 2010년 한국 그랑프리에 참여했을 때였는데 항공모함에서 쓴다는 무전기 헤드셋을 꼈음에도 다음날 귀에 이명이 올 정도로 힘들었다. 하지만 V6 터보 엔진으로 바뀐 뒤로는 “웨에엥~~”하는 배기음이 실제 들으면 크기는 하지만 V8 NA보다 훨씬 조용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F1 팬들은 그 배기음을 듣기 위해 수십만원 또는 수백만원 하는 F1 경기를 보러 향한다.




이 영화에 나오는 F1 경기를 보다보면 ‘슬립스트림(slip stream)’과 ‘토잉(towing)’이라는 단어가 많이 나온다. Apex팀의 중요한 전술로도 사용되고 영화 전체를 끌고가는 것이기도 한데 사실 슬립스트림은 사실 유체역학과 관련된 용어다. 물체가 빠른 속도로 유체(공기, 물 등)를 지나가면 그 뒤의 압력이 낮아져 주변의 유체가 해당 물체쪽으로 빨려들어오는 것을 의미한다. 때문에 몹시 속도가 빠른 레이스 경기에서 흔히 “슬립 스트림을 탄다”고 이야기 라며 앞차 뒤에 바짝 붙는 전략을 구사한다. 이 때 앞차는 뒷차를 ‘토잉(끌어주기)’을 하게 되는데 이 현상은 실제 F1의 팀 라디오(무전)을 들어보면 자주 나오는 말이다.


영화로 다시 돌아가면 초반에 ‘소니’가 참전하는 데이토나(Daytona International Circuit)에서 개최되는 롤렉스24시가 괜히 나오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완전한 오발트랙(트랙 자체가 좌우로 몹시 경사가 진 트랙. 빨리 달리면 벽에 붙어서 달리는 것 같은 느낌을 주며, 데이토나는 거의 원에 가까운 트랙이기 때문에 어마어마한 속도감을 느낄 수 있다)에서 매우 빠른 다른 차량의 뒤에 붙어 슬립 스트림을 탄 다음에 토잉이 되어 앞으로 튀어나가고, 또 슬립 스크림을 탄 다음에 튀어나가고 하는 것의 반복이 되며 이것이 실제로 매우 중요한 전략으로 사용된다.

실제 데이토나 롤렉스 24시간 경기. 트랙의 경사를 보시라!


주인공 소니는 큰 사고로 더이상 F1 머신을 탈 수 없어, 박스카(일반 상용차량을 레이스 형태로 개조한 차. 드라이버가 노출된 F1같은 포뮬러 머신들과 달리 드라이버가 차 안에(박스 안에)서 레이싱을 하는 차들을 일반적으로 의미. 영화에서는 포르쉐 911GT3 R 이다)를 타고 이러한 데이토나에서 상금 사냥을 했었기 때문에 관련된 노하우와 경험으로 F1 팀에서도 좋은 성적을 노리게 되는 플롯 간을 잘 이어주는 장치로 활용되고 있다.




F1 팬을 자극하는 또 다른 요소는 바로 소니가 소속되는 ‘Apex' 팀이다. Apex는 레이싱에서 코너의 가장 정점(꼭지점)을 의미하는데 레이싱 드라이버들에게 Apex를 어떻게 공략하느냐는 몹시 중요한 일이다. 그런 중요한 단어인 Apex가 팀 이름이라니! 아주 1차원 적이면서 좋았다!!


그리고 이 Apex 팀의 의상은 마치 실제 F1팀인 메르세데스를 연상시키는데 오른쪽에 달린 삼각별과 흰색, 검은색 계열의 색상 때문이다. 사실 드라이버들의 가슴 오른편에 그려진 메르세데스의 상징은 그들이 메르세데스의 엔진을 쓴다는 것을 의미한다. F1은 엔진 공급사와 섀시를 만드는 팀이 서로 다른데, 예를 들어 맥라렌 F1팀은 메르세데스 엔진을 쓴다. 2025년 현재 F1에 엔진을 공급하는 업체는 메르세데스, 페라리, 혼다, 르노 총 4개 기업이며, 내년에는 메르세데스, 페라리, 혼다에 알핀, 아우디, 레드불 포드가 신규 진입하며 총 6개 회사가 엔진을 공급한다.

실제 메르세데스 팀의 드라이버 수트(좌) 영화의 Apex 팀의 드라이버 수트(우)

또 흥미로운 점은 또 있다.

이 Apex의 본사가 바로 실제 맥라렌과 메르세데스의 사옥에서 촬영되었다는 것! 그 물에 떠있는 듯한 외관과 사옥 내부에서 루벤(하비에르 바르뎀)의 사무실은 맥라렌이고, 공장을 걸어가는 장면이나 백 오피스 등은 메르세데스의 사옥 실내이다. 사실 팬들에게는 너무 익숙한 건물들이라 반가운 마음이 컸고, 무엇보다도 루벤 뒤에 있는 1988년도 MP4/4 로 추정되는 머신은 바로 F1의 전설 아일톤 세나가 탔던 머신인 것 같은데 스쳐지나가서 정말 맞는지는 잘 모르겠다.

맥라렌 F1팀의 본사
메르세데스 F1 본사 실내

그리고 나와 내 주변 F1 팬들의 가슴을 저미게 하고 소름돋게 했던 장면은 실버스톤 서킷이 처음 등장하는 장면이다. 하늘에서 내려다본 실버스톤 서킷은 물론 중계에서도(특히 이번주가 실버스톤에서 경기가 개최된다) 자주 보았지만 이렇게 큰 화면에서 그에 어울리는 한스짐머의 음악과 함께 두등장! 하는 실버스톤을 보며 감탄을 금치 못했다.


실버스톤 서킷은 처음으로 F1이 개최된 서킷으로 알려져 있다. 실버스톤 서킷은 세계 제 2차 대전 시 사용한 활주로로 사용된 이력이 있는데, 주로 폭격기가 이착륙을 했다고 알려져있고, 당시의 활주로 레이아웃을 가져온 삼각형 모양의 서킷으로 유명하다.

실버스톤 서킷 근처에서는 양과 소 등등을 키우는 목초지와 목장(?)이 많았다고 한다. 그래서 아주 과거의 서킷에서 경주를 하면 ‘차에 양이 치였다’라고 동네 신문에 나왔다고. 그리고 이 것을 오마주 한 것인지는 모르지만 영화에서 소떼에 갇혀 움직이지 못해 답답해 하는 소니가 흥미로웠다(그런데 생각해보니 영화에서 소니가 가던 길은 아마도 본사를 가는 길이었던듯 하다. 영화를 한 번 봐서 잘 모르겠음ㅋㅋㅋ)


아무튼 이런 실버스톤 서킷에서 테스트 드라이빙을 하는 것도 흥미로왔는데 개인적으로는 이때 소니가 Apex팀의 차를 험난하게 모는 것보다 더 좋았던 것은 피트(차량의 정비을 하는 곳. 보통 타이어를 교체하는 피트스탑을 하는 공간 대부분을 피트라고 통칭한다) 출구로 갈 수록 피트월과 개러지의 단차가 점점 벌어지는 실버스톤 특유의 구조를 볼 수 있던 부분이었다.

실버스톤 서킷 피트. 오른쪽의 담벼락(피트월)을 보면 사진 앞쪽으로 점점 더 경사가 지는 것을 볼 수 있다.




이 영화에서는 실버스톤 뿐만 아니라 F1팬이라면 몹시 반갑게 느낄 서킷들을 볼 수 있다. 내가 제일 신났던 서킷장면들은 바로 이 셋이다. 영국의 실버스톤, 이탈리아의 몬짜, 벨기에의 스파 프랑코샹(이하 스파)! 실버스톤, 몬짜, 스파 모두 대표적인 스피드 트랙(높은 속도로 질주 할 수 있는 서킷)인데 실버스톤에서 테스트를 하고, 몬짜에서 토잉으로 속도를 올리고 이때 경험을 기반으로 스파 프랑코샹의 ‘오루즈’(코너 이름. F1 서킷은 대부분 코너와 유명한 직선 구간에는 이름이 있으며, 이 오루즈는 사고가 많이 나는 곳으로 악명이 높다)에서 앞선 차의 뒤에 추월을 시도할 때 더티에어를 극복하는 방안을 논의한다. 스파 프랑코샹에서 기세를 전환시키기 위해 오루즈를 예로 들다니... 소니는 역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드라이버다.


한 편, 슬립스트림, 토잉, 더티 에어라는 단어에서 알 수 있듯 F1은 에어로다이나믹(공기역학) 기술과 굉장히 밀접하다. 그래서 영화 중간에서는 컴퓨터로 차의 공기의 흐름을 분석하는 CFD(Computational Fluid Dynamics)가 전면에 등장한다. 실버스톤 서킷은 특히 차량의 높은 에어로다이나믹 기술이 필요하며 이 기술을 개발하는 사람들도 글로벌 Top tier 대학의 석박사 출신들이다(대부분 박사일듯). 쉽게 말해 NASA 안 가고 F1에서 유체역학을 하는 사람들인데, 현재 윌리엄스팀의 에어로다이나믹 연구원 중 한 명이 한국인이다(쿠팡 플레이 윤재수 해설위원의 'F1 레이스카의 공기역학‘이라는 책을 감수하신 바로 그 분이다).


각설하고, 이 CFD를 하려면 정말 많은 개발비용이 필요하다. 수 천개의 CPU로 굉장히 오랜시간을 돌려야한다. 뭐 여러 계산식(?)이 있지만 현재의 F1팀은 1000번까지만 CFD를 돌릴 수 있다고 알고 있다. 때문에 분석하는 칩의 성능도 굉장히 중요해서 intel과 함께 무엇을 한다, AMD와 함께 무엇을 한다 하는 소식이 가끔 들린다(그런데 F1 코멘테이터(해설자)인 마틴 브런들이 AMD의 CEO 리사 수에게 “영어할 줄 아냐?” 고 물어보고 인터뷰를 시작한 것이 중계에 나와서 마틴 브런들의 인종차별적 발언은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사실 마틴 브런들은 인종차별을 많이 하기로 유명하다. 한국 그랑프리 시기에서도 아시아는 싫다며 계속 투덜거리기도 했다는 일화가 있다). 차량도 실차 사이즈의 모델을 가지고 테스트를 하는 것이 아니라 60% 사이즈의 모델을 가지고 테스트 하고 있으며 이 스케일이 커질 수록 비용은 또 어마어마하게 늘어난다고.

이미지를 보면 차가 지나간 자리에 구불거리는 곡선이 생기는데 저것이 바로 더티에어(dirty air)

아무튼 이런 분석을 통해 F1 팀 들은 한 때 괴이한 프론트 윙을 굉장히 많이 가져왔는데, 지금은 윙의 규제가 있어서인지 ‘아니 여기까지?’ 라는 곳으로 다양한 에어로 다이나믹 파츠를 설치한다.


2019년의 레이스카 프론트 윙. 아주 기괴하고 정신없다. 영화에서 처럼 간단한 이야기가 아님

또 인상깊게 본 서킷은 작년 4월에 직관하러 갔던 스즈카 서킷이다(작년부터 4월로 개최시기를 바꿨다) 봄으로 개최시기를 변경한 일본 답게 정말 벚꽃이 만발해 ‘벚꽃 그랑프리’로 정말 아름다웠는데 이 기세를 몰아 일본 그랑프리 조직위는 서킷 안의 벚나무 하나를 소원나무로 지정하여 관람객들이 직접 글귀를 걸을 수 있는 작은 이벤트를 했었다. 그리고 바로 이 나무가 스즈카 경기를 알리는 전환 장면 중 하나로 지나가서 반가웠다.

나는 스즈카에서의 안타까운 사고로 세상을 떠난 쥴스 비앙키의 추모 글귀를 적어보았다.

아무튼 이 때 경기에서는 영화 ‘F1’팀의 관람객 함성을 촬영하기 위해 포르쉐 파나메라에 카메라를 달고 열심히 서킷을 돌았는데 그 차량이 지나갈 때마다 장내 아나운서가 소리 질러달라고 해서 수만명의 사람들이 “와아~~!”하는 것을 여러번 찍기도 했다. 헐리웃 영화를찍는 것을 보다니! 신기한 경험이었다.


브래드 피트의 사진을 꼽고 달리는 영화 촬영 차량. 저거 브래드 피트 얼굴 보여주고 달리는 거 웃겼다.

이 외에도 F1팬들을 사로잡을 만한 장면은 굉장히 많다. 현재 뛰고 있는 F1 드라이버들과 팀 맴버들, 위원회와 관계자 사람들 그리고 심지어 프로듀서로 참여한 현존 최강의 드라이버 루이스 해밀턴의 멍멍이 로스코 까지.


메르세데스의 수장인 토토 볼프의 발연기(ㅋㅋㅋ) 루이스 해밀턴의 아우라도 인상적이었고, 레귤레이션을 알면 자연스럽게 보이게 되는 옥의 티들도 보는 재미가 있었다(예를 들면, 소니가 포메이션 랩을 출발하지 못했을 때 옐로 플랙이 안 나온닼ㅋㅋㅋ 옐로 플랙(말 그대로 노란 깃발)은 서킷 위에 위험요소가 생겼을 때 무조건 나오는 깃발인데, 스타트와 포메이션 랩을 출발 못했을 때도 당연히 나온다.).


소니의 과거 영상 중 F1에서 실제 있었던 사고를 그대로 보여준 것도 조금 놀라웠고, 더티에어를 고려하지 않고 차를 만든 것도 웃겼다(더티에어를 잘 만드는 것도 기술임). 아 물론 많은 차들이 DRS 존인데 주인공들의 차만 DRS를 사용하는 것도 ‘으핫!’의 포인트였다. 그리고 ‘신세기 사이버 포뮬러’애니를 본 사람이라면 소니는 ‘제로의 영역을 목표로 하는 건가?‘ 하는 재미있는 생각도 들 것이다. 만약 아니라면 또다른 레이스 영화인 ’포드 Vs 페라리‘의 마지막 대사를 떠올릴 수도...


한편, 나는 F1 중계가 익숙해서 대부분을 자막 없이 볼 수 있었는데, 감수를 받았다고 하더라도 아쉬운 부분들이 있기는 했다. 순위가 4계단 올라가는 것을 4위라고 번역한다던가, 팀라디오에서의 전략을 그냥 뚝뚝 끊어서 표기한다던가... ‘기차놀이’를 한다는 표현을 쓰거나 ‘가속을 시작합니다’ 등 실제 한국에서 F1을 보며 즐기는 팬들이 사용하는 용어들을 적절히 배치해둔 것은 참 좋았다.


마지막으로 소니가 내가 그 시절 좋아했었던 ‘그 드라이버’에게서도 캐릭터를 가져온 것 같아 추억에 잠겼었는데, 여러가지로 F1 팬이 산전수전 공중전을 겪지 않고도 편안히 영화관 시트에 앉아 여러가지 생각을 하며 영화를 보니 참으로 즐겁고 신났던 두 시간 반이었다.


최종보스 루이스 해밀턴. 작년 스즈카 서킷에서 레이스 준비하는 모습을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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