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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ric Oh Jul 16. 2024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

독후감[讀後感]

서문


 이전에 써 둔 글을 다시 읽어보니 어려운 단어들로 글이 써져 있다는 걸 느꼈다. 흔히 말하는 고급어휘들은 분명 풀어서 설명할 긴 문장을 함축한다는 점에서 글의 효율성을 높이고, 글쓴이의 의도를 더 정확하게 전달하는 효과가 있다. 그러나 과도한 어려운 단어들은 글의 진입장벽을 높이고, 글쓴이의 의도와 다르게 글이 더 난해하게 될 수 있다. 그래서 대다수가 이해할 수 있는 글을 목표로 다시 쓰기로 하였다. 물론 그럼에도 주변의 반응은 여전히 난해하다는 입장이다. 글재주가 없어 이보다 쉽게 풀지 못 하는 나의 능력을 불쌍히 여기며,




 내가 이 책,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를 읽게 된 계기는 너무나도 명확하고 간단했다. 내가 살고 있는 이 나라, 대한민국과 국민들을 사랑하는 한 사람으로서 평소 대한민국이 망하는 길을 걷지 않고 더 나은 나라로 나아가길 바라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책 제목과 같은 '국가는 왜 실패할까'하는 고민을 늘 하곤 했다. 그러던 중에 이런 제목을 가진 책을 발견했을 때 내가 얼마나 반가웠을지 쉽게 상상이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부유한 국가와 빈곤한 국가는 왜 생기는지에 대한 것이다. 즉 현대시대에서 경제적 성공과 실패 만을 다루기 때문에, 이 책이 직접적으로 내 고민을 해결해주진 않았다. 그렇지만 분명히 나의 고민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공하였기 때문에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다.  

 이 책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 책이 비판하는 진화생물학자 제레드 다이아몬드 교수의 <총, 균, 쇠>와 세계적인 경제 석학 제프리 삭스 교수의 <빈곤의 종말>, 불평등에 대한 철학적 배경지식, 알베르 카뮈의 저서들, 그리고 국가론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이 필요하다. 이 책의 레퍼런스 리스트만 24페이지에 달하니 말 다했다.


 이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단 하나의 주장만을 하고 있다. 바로 국가의 경제적 성공과 실패는 국가의 정책에 달려있다는 것이다. 그 대표적인 예시로 한국과 북한을 든다. 한국과 북한은 지리적 차이점도 거의 없고, 인구수, 지하자원, 인종, 문화, 역사 등에서도 거의 차이점이 없었지만 오늘날 세계 10위권 경제대국과 세계 최하위 경제빈국으로 나뉘었다. 이에 이 책의 저자인 애쓰모글루 교수는 국가의 정책이 두 국가의 운명을 결정했다고 주장한다. 또한 <총, 균, 쇠>의 저자 다이아몬드 교수의 국가의 경제적 성공에 끼치는 지리적 요인과 <빈곤의 종말>의 저자 삭스 교수의 빈곤국에 대한 견해에 대해 '맞지 않는 이론들'이라고 소개하며 이들의 이론들은 현대 국가들의 실패를 설명할 수 없다고 강하게 주장하고 있다.

 애쓰모글루 교수는 국가가 착취적 정책을 펴는 것이 국가를 빈곤하게 만든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중국과 같이 권위주의 체제를 통한 국민(인민)을 착취하는 정책을 펴지만 경제적으로 발전을 이룬 국가를 설명하지 못한다는 한계도 분명하다.


 또한 이 책에서는 근본적으로 국가의 성공과 실패를 설명하지 못한다. 가령 한국만 예를 들어도 그러하다. 한국은 북한과 다른 정치체제를 구축하고 시장 경제에 적합한 정책을 펴기 때문에 북한에 비해 성공한 국가라고 할 수 있고 이는 사실이지만 그럼 한국은 이 정치체제만 유지하면 앞으로도 실패하지 않는 국가라고 할 수 있는가에 대한 대답은 하지 못한다.

 현재 대한민국에 발생하는 국가적 문제들은 수없이 많지만 경제적인 부분만 놓고 보자면 아래와 같다. 실질적으로 돈을 벌고 소비하는, 경제인구수가 매년 눈에 띄게 감소함에 따라, 한국의 GDP는 2050년에는 25위 이상 밀려날 것이라는 OECD의 경고가 있다.

 한국의 교육열은 높지만 상위 4%(1등급)의 엘리트는 경제적으로 생산직에 종사하길 꺼려한다. 이에 따라 실질적 부를 창출하는 직종에 질 높은 인재들이 부족하다. 문과 계열에서는 판사, 검사, 변호사 등의 법조인, 정부 소속의 공무원과 교사 등의 직업이 가장 우선시 되며, 이과 계열에서는 의사 열풍이 그칠 줄 모른다. 아이비리그의 최고 엘리트들이 세계 굴지의 기술기업이나 스타트업으로 향하는 미국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미국을 필두로 세계 경제 강대국이라 할 수 있는 국가들은 대부분의 엘리트들이 국가와 기업의 부를 창출하는 직종을 선호한다. 이들은 기술집약적 노동을 통한 고부가가치를 창출하며 고스란히 조국의 GDP로 이어진다.

 수도 서울에 모든 인프라가 집중되어 서울 이외의 지역의 경제가 사실상 무너져있는 것도 한국이 직면한 경제적 문제점 중에서 큰 비중을 차지한다. 한국은 영국의 잉글랜드와 비슷한 크기(한반도 기준 브리튼 섬과 크기가 비슷하다) 임에도 불구하고 국가적 사회적 인프라가 서울이라는 작은 도시에 집중되어 있으며 전 세계 그 어떤 국가도 국토를 이렇게 비효율적으로 사용하는 나라는 없다. 실제로 한국이 수도권 집중으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들은 싱가포르 등 도시국가들에게서 발생하는 문제와 다르지 않다.

 이 외에도 무수히 많은 문제들이 있겠으나, 당장 위에 언급한 문제들조차도 애쓰모글루 교수가 주장하는 대로 해석했을 때 한국이 성공한 국가인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기 충분하다. 이 책이 2011년에 출판되었음을 감안하더라도 한국은 더 이상 성공한 국가라고 할 수 없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민주정과 공화정의 차이를 아는 사람들은 그렇게 많지 않다. 한국의 정치체제가 민주주의인가 공화주의인가를 물었을 때 공화주의라는 말조차도 처음 듣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라 생각한다. 심지어 둘은 같은 개념이 아니냐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민주주의와 공화주의의 차이는 평등과 공평의 차이이다. 평등이 우선시되는 민주주의는 국민 개개인의 인종, 재력, 기타 모든 요소에 상관없이 같은 권리를 가지는 것이다. 이는 얼핏 들었을 때, 정당하고 정의로워 보인다. 그러나 이는 민주주의가 국민의 자유를 억압하고 다수가 소수를 짓밟는, 충동에 의한 중우정치(떼법)로 변질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10명의 국민이 모두 평등하게 1의 권리를 가진다면, 6명으로 이루어진 집단이 4명으로 이루어진 집단을 '민주적'으로 억압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반면 공화주의는 공평을 우선시한다. 민주적인 가치를 수호하기 위해 역설적이게도 '비민주적'인 요소를 가미하는 형태이다.


 미국은 공화정을 채택한 공화국이다. 미국의 건국아버지들은 미국이 순수민주주의 국가가 되는 것을 염려하여 정치적 사회적 수많은 안전장치들을 만들어 미국이 공화국으로서의 모습을 지켜가기를 바랐다. 그래서 그들은 미국 국회를 둘로 나눈 양원제를 채택했다. 미국의 양원제는 각 주의 인구수에 비례한 대표인 하원과 각 주마다 2명씩 선출하는 상원으로 구성되어 있다. 미국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캘리포니아 주의 경우 하원의원의 수는 52명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미국에서 가장 인구가 적은 와이오밍 주는 하원의원이 오직 1명이다. 그러나 상원의원은 캘리포니아 주도 2명, 와이오밍 주도 2명이다. 이는 캘리포니아 주의 시민들보다 와이오밍 주의 시민들이 1인당 권리가 더 크다고 할 수도 있다. 이는 명백하게도 민주적이지 못하다. 그러나 만약 상원의원이라는 개념이 없다면 인구가 가장 많은 캘리포니아에 유리한 정책들과 캘리포니아를 우선시하는 정치인들이 많아질 것이다. 이는 각 주마다 평등한 권리를 나눠가지는 것을 막고 인구가 많은 주들 위주로 미국 전체의 정책이 쏠리는 부작용이 발생하게 된다. 같은 이유로 미국은 미국 국민들이 대통령을 직접 선출하는 직접 선거제를 채택하지 않고 각 주마다 존재하는 선거인단을 통한 간접 선거제를 채택하였다. 이로서 미국은 인류 역사상 민주주의를 가장 잘 수호하는 국가가 될 수 있었다.


 그럼 한국을 보자. 한국은 미국에서 박사학위(조지워싱턴, 하버드, 프린스턴)를 받은 이승만 박사를 필두로 세워진 나라이기에 미국의 정치형태인 공화국을 표방하였다. 그러나 1875년 생인 이승만 박사는 일제강점기간인 36년을 제외하더라도 군주국가였던 조선시대에 태어난 조선 사람이었고 한반도는 5천 년 역사상 단 한 번도 민주정이 들어선 적이 없는 순수 군주정이 지배한 곳이다. 한반도의 이런 특수한 역사와 정치관에 의해 완성된 공화정을 그대로 적용할 수 없었고 한국만의 특수한 형태의 정치체제가 들어서게 되었다. 대통령과 민주주의에 대한 개념도 없던 당시에 민주공화국으로 설립된 대한민국 대통령을 왕실에서 사용하던 칭호인 각하(사실 이는 입헌군주제이자 귀족제가 남아있던 일본의 잔재이다)로 부르거나 대통령을 필두로 하는 행정부의 구성이 조선시대 정부였던 조정의 구조형태를 그대로 사용하였다. 결국 껍질은 공화정이나 내용물은 군주정이었던 한국의 정치형태에서는 한 사람의 독재를 막을 수단이나, 다수의 폭정을 막을 장치도 없었다. 대표적으로 한국의 국회는 양원제가 아닌 단원제를 채택한 것이다. 이는 인구가 많은 지역이 선호하는 특정 정당이 다수당이 되고 다수당이 사실상 독재를 하는 가장 순수한 민주주의의 형태를 띠지만 그래서 가장 민주적이지 못 한 결과로 이어졌다.

 지금 현재 한국의 정치의 오래된 문제점으로 지적되는 것은 극단적으로 나뉜 정치정당이 각 정당의 생존을 위해 국민을 위한 정책에 합의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인구가 많은 수도권에 우선적인 정책들이 그 외의 지방들을 위한 정책보다 우선시되고 정권을 잡은 정당이 정책을 반대 없이 펴기 위해서는 다른 장치 없이 다수가 되는 것 밖에 방법이 없기 때문에 각 정당의 최우선 목표는 국민들을 위한 정책이 아닌 생존을 위한 다수당이 되는 것이 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또한 군부독재의 역사를 겪은 한국은 대통령의 연임을 헌법으로 금지하고 있기 때문에 한 정권이 추진하는 정책이 대통령 임기인 5년을 넘기기 힘든 것이 대부분이다. 그 정책이 좋은 정책이거나 국민들을 위해 필수적인 정책일수록 더 그렇다. 왜냐하면 그런 정책은 각 정당들 본인들이 해야지, 반대 정당이 그런 우수한 정책을 펴서 정권을 잡는 것을 막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를 단순히 정치인들 개개인의 도덕성만을 문제점으로 삼을 수 없고 앞서 언급한 내용처럼 구조 상의 문제도 고려해야 한다.

 국민들이 직접 대통령을 뽑는 직접 선거제와 더불어 위와 같은 다수당 독식 형태의 구조에 의해 한국 정치는 소위 '자기편'을 더 만들어야 하고 점점 양극화되어 국민 정서도 좌측과 우측으로 나뉘는 악순환이 될 수밖에 없다. 정치를 하는 정치인이나 정치에 문외한 일반 시민들조차도 양측의 의견을 모두 듣고 화합을 이뤄낸 통합적이고 중립적인 정책들이 가장 이상적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이미 '자기편'에 소속된 국민들이 이제 그런 이도저도 아닌 정책이나 정치인들을 거부하는 최악의 상황이 한국 정치의 현주소다.

 한국이 직면한 문제는 경제와 정치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비정상적인 수도권 비대화에 의해 지방소멸과 그로 인한 인구문제, 인구가 많은 수도권은 이들의 거주지역의 비상식적인 집값에 의한 거주지 부족문제, 인구가 부족한 지방들은 인력부족으로 인한 경제적, 세수적 문제, 청년들의 주거문제와 분야 상관없이 전국 1등부터 꼴등까지 줄 세워 들어가는 대학 서열화를 부추긴 지난 몇십 년간의 교육문제로 인한 사회에 팽배한 4%가 아닌 96%의 청년들의 패배주의, 봉건적 계급이 사라진 빈자리를 자본주의 계급이 차지하며 평등도 공평도 존재하지 않는 사회에 보이지 않는 계급과 계층 문제, 이 모든 복합적인 요소들에 의해 발생한 눈치 보고 눈치 주는 사회, 창의력을 필두로 하는 인재와 같은 인적 자원 말고는 전무한 자원빈국인 이 나라에서 개성은 사회 부적응자로 바라보는 기현상, 지식인을 폄하하고 기업인을 비난하고 공직자들을 그저 봉사하는 하인이라 생각하고 연예인들을 공인이라 부르는, 안타까운 문제라고 부르기도 부끄러운 문제들이 한국이 직면한 문제들이다.


 위의 문제들을 다 살펴본 지금도 애쓰모글루 교수의 주장대로 착취적 정책을 펴지 않는 민주주의라는 이유만으로 대한민국이 실패하지 않는 국가라고 할 수 있다고는 볼 수 없다.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 그 국가가 건국될 때 가장 중요한 가치로 여겨지던 것들이 무너질 때 국가도 무너진다. 십상시와 동탁의 폭정을 끝내고 난세를 치세로 돌리려 일어선 조조는 그 스스로가 저들보다 더 한 폭군이 되며 무너졌다. 인덕을 최고로 여기며 백성들을 우선시하고 책사의 말을 잘 따랐던 유비가 아우들을 잃고 백성보다 본인의 분노를 우선시하고 책사의 말에 귀를 닫으면서 무너졌다. 외척들과 공신들이 국왕을 흔들며 나라를 마음대로 주무르는 것만은 막고자 했던 태종 이방원이 완성한 조선은 세종이란 두 번은 없을 성군을 만들어냈지만 그 원리원칙이 무너져 외척들의 세도정치가 판치고 공신들이 국왕을 따르지 않게 되며 조선은 망했다.


대한민국은 왜 건국되었나.

 5천 년 한반도 역사상 처음으로 국민이, 백성이 주인이 되는 국가를 세워 한민족이 살아가는 터전을 만들고자 건국되었다. 세상 그 어느 민족보다 정이 많고 똑똑하며 나라를 욕하면서도 다른 나라들로부터 조국을 지키려 제 한 목숨도 기꺼이 내놓는, 자랑스럽고 사랑스러운 대한민국 국민들이 평화롭고 행복하게 살아갈 터전을 지키기 위해 건국되었다. 비록 역사상 처음 도입된 민주주의와 건국되자마자 벌어진 민족의 비극적인 전쟁과 이후 경제를 회복하기 위한 독재, 그리고 그 독재를 끝내기 위한 암살과 그 이후 어지러워진 나라를 잡은 군부를 겪었지만 그 이후 다시 일어난 대한민국은 전 세계에 유례 없는 경제발전을 이룩하고 세계 각 분야의 우수한 인재들을 길러냈다. 그럼 지금, 2024년의 대한민국은 여전히 군부 독재로부터 탈환한 민주주의를 수호하고 선대의 유지를 이어 위대한 도전을 이룩하며 나아가고 있는가. 우리 모두가 생각해 보아야 할 문제라 생각한다. 모든 문제 해결은 문제를 인식하는 것부터 시작한다. 한국은 더 이상 성공한 국가가 아니다.


 내가 살아가는 이 나라 대한민국을 사랑하고 이 땅에 살아가는 모든 국민을 사랑하는 한 사람으로서 매일같이 생각한다.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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