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미국 변호사 준비 생존기
9월이 시작됐다. 올해는 휴가를 가겠다는 다짐을 실행했다. 지치고 괴로워하다 떠난 여행에서 평범한 것들에 웃고 즐거워하는 나를 보았다. 늦은 밤까지 글을 읽고 발길이 가는 대로 걷고 먹고 싶을 걸 마음껏 먹고 자고 싶으면 드러눕고 생각하기 싫으면 멍하니 머물렀다. 아, 이렇게 살고 싶다.
20대 시절 영문학 전공생인 내게 미국이란 ‘가고 싶다'는 막연한 희망이었다. 어느덧 30대 중반의 미국 로스쿨생이자 수험생으로 찾아온 내게 미국은 ‘갈 수 있다’는 구체적 희망이 되었다 싶은 순간. 광활한 땅 위에서 아무것도 아닌 나를 발견하고 흥분을 가라앉혔다.
마음이 단단해지기도 하고 뭘 해야 하는지 선명해지는 것도 같고 그러다 막막하기도 했던 어느 여름날 미국이 내게 말해준 것들.
첫째. 직장인이자 대학원생으로 지내온 지난 시간은 지금의 삶에 축이 되어 주었다. 황량한 시절을 되돌아보고 지각하며 살 수 있도록. 요즘의 나를 보며 사람들은 말한다. 너 정말 행복해 보인다, 단단해 보인다, 좋은 기운으로 넘친다, 무슨 일 있었어?
맥락 없이 노력했던 때가 있었다. 노력했지만 인정받지 못하는 것 같아 초라함을 느끼고 냉소적인 말들에 주눅 들었다. 눈 뜨고 코 베이는 상황에도 덤덤한 척 했다. 그럴수록 모른 척 할 일을 했다. 할 수 있는 게 그거밖에 없어서. 그 언젠가를 위해서, 내가 잘 되면 아무것도 아니게 되니까.
그런 시간을 보냈기에 오늘의 나는 인생의 답이 정해져 있다는 듯 산다. 매 순간이 감사하고 아깝다. 목표와 행복을 위해서 전력투구한다. 대단하지 않지만 적어도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가치를 담아냈다는 걸 자축하고 격려해 준다. 삶의 겨울을 나는 법을 조금은 알 것 같다. 삶이 물음표로 가득해질 때면 지난날을 되새기며 용기를 얻으리라.
둘째. 원하는 것을 위해 역설적으로 싫어하는 것을 해야 할 때가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하면 끝까지 해야 한다. 어쩔 수 없지만 '그냥' 해야 한다. 그리고 '잘' 해야 한다. 내 나이는 그래야 한다. 앞으로도 그래야 한다.
골든 게이트 브리지와 구름 사이로 내려오는 빛줄기. 지난날의 지난함을 안아주는 것 같았다. 누가 뭐라든 여기까지 잘 왔다. 잘 견뎠다. 완벽하진 못했지만 매 순간 완료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눈이 뜨거워졌다. 추웠지만 가끔은 따스했고 우울했지만 어쩌다 행복하기도 했다. 남들에겐 하찮게 느껴지더라도 나만 느낄 수 있는 감정과 나만 이해할 수 있는 순간으로 가득했다.
그래서 나 아직 부족했다는 거지? 더 가야 한다는 거지? 잊지도 않고 기대하면서 지금을 '그냥' 전념해 볼게. '잘' 해볼게. '진심'을 다해 쏟아볼게. 이런 나를 알아주고 넌 무조건 찾아와.
셋째. 조용히 정말 열심히 삶을 일궈가는 분들이 많다. 귀인들의 어장에 관리되고 있다는 건 감사한 일이다. 그들을 보며 배운다. 어떤 계절에도 허리와 고개는 겸손한 위치를 유지할 것. 함부로 평가하지 말 것. 입 다물기 좋은 기회를 늘 놓치지 말 것. 주변을 헤아려 볼 것.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을 것. 작은 호의라도 감사해할 것.
핑계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했던 8월. 학습 또 학습하자. 틈나는 대로 걷고 뛰자. 아늑한 곳에 들러 영감을 얻자.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지만 좀처럼 쉽게 열리지 않는다. 이럴수록 갈구하며 더 준비하는 거다. 그냥 쌓는 거다. 남들이 뭐라든 계속 두드리는 거다.
시간이 흘러 기쁘다. 어떻게든 해내 다행이고 또다시 과정 중에 있어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