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미국 변호사 준비 생존기
12월, 미적지근한 해를 보내다 연말까지 와버렸다. 내년은 이런 기분으로 정리하지 않겠다는 다짐으로 25년을 정리한다.
올해는 좋아했던 것들이 울음처럼 여겨졌던 일들이 많았다. 세상은, 사람은, 노력은 자주 배신한단 걸. 간절히 원했던 것들은 보란 듯 방향을 틀었고, 붙잡고 싶지만 엉망이 되어 버린 현실에 결국 놓을 수밖에 없었다.
작년 여름, 갑작스러운 복통과 어지러움으로 정신을 잃었다. 검진에서 이상 소견이 나와 조직 검사를 진행했는데 결과를 듣는 순간 심장이 멎는 듯했다. 이미 몇 개월 전 발현됐고, 몸에서도 신호를 보냈지만 스트레스 때문일 거라며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나란 사람, 나란 존재. 아니길 바랐지만 받아들여야만 했던 사실들에 모든 걸 내려놓고 싶었다.
그렇게 약물 치료와 면역 관리에 들어갔고 2월 리모트 시험도 응시했지만 기술 결함으로 시험을 중단했다. 이후 원격 시험 폐지로 LA로 다시 향했다. 1년 전보다 더 많은 준비를 했기에 덤덤할 줄 알았는데 중압감이 더 컸다. 신체가 정신을 따라가질 못했다. 약기운에 시험 내내 몸이 나를 포기한 느낌이었다. 시험을 어떻게 쳤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았다.
일이라는 게 잘될 때도 안 될 때도 있으니 개의치 않으려 했지만, 상황이 이러니 무기력했다. 삶이 만족스럽지 않았다. 그만둘까 했지만 포기할 용기도 없었다. 벼랑 끝에 서 있는 듯했다.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아 밤이면 한강에 나가 뛰었다. 연락처를 복구하고 사람들도 만나기 시작했다. 그간의 침묵을 보듬어 주는 그들. 내 삶에 들어와 준 존재들에 새삼 감사하며 마음을 추슬렀다. 선배 추천으로 VC 연수 과정을 등록했는데 업계 특성 탓도 있지만 세상에 한참 뒤처진 사람이 된 것 같아 때아닌 반성의 시간을 가졌다.
바 시험은 아쉽게도 5점 차로 불합격을 했다. 그래도 연수 과정은 무사히 마쳤고 오늘은 완치 판정을 받았다. 정말이지 세상을 다시 얻은 것 같다. 오늘 다시 마음을 다잡는다. 이미 꿔 버린 꿈, 정해버린 목표, 기다리지 않는 시간. 뒤돌아 가기엔 너무나 먼 길을 와버렸다고. 초콜릿 상자에서 제일 맛있는 초콜릿만 골라 왔기를 믿고 다시 가보는 수밖에 없다고.
그 하나를 위해 온 마음을 걸었던 나. 비록 부족해도 참 멋졌단 걸. 더는 울지 않기로 해. 아쉽지 않은 사람이 되기로 해. 26년은 건강하게, 멋있게, 힘차게 살아내기로 해. 그리고 제발 이 생존기를 끝내기로 해. 끝까지 해내고 말해. 이렇게 뒤늦게 피는 꽃도 있다며. 좋은 기운을 마구마구 전해주기로 해.
25년 잘 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