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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빅리셋코치 Feb 22. 2022

제 상사처럼 되기 싫어 퇴사합니다!

회사가 아니라 사실은 사람을 떠나는 겁니다.


회사를 관두겠다고 얘기하는 팀원이 팀장에게 구두로 전하는 퇴사 이유는 진짜 이유가 아닌 경우가 많다. 대학원 공부, 건강 문제, 유학 준비, 사업하시는 아버지의 도움 요청 등등.  


물론 사실일 수도 있지만 진짜 이유는 상사인 당신을 떠나는 것일 수도 있다.
 

실제 퇴사자들이 얘기했던 다양한 이유들이 사실이 아니었음을 알게 되는 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직원들의 입을 통해 전달되는 그들의 근황이 곧 내 귀에 들어왔으니까.


처음 HR 업무로 직무 전환이 된 후 나의 가장 큰 고민은 경력 3년 미만 직원들의 높은 퇴사율이었다. 당시 모든 기업들의 공통적인 고민이었지만 내가 다니던 곳은 유독 더 높았다. 어떻게 하면 이들의 퇴사율을 낮출 수 있을까?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은 일단 직원들의 얘기를 들어주는 거였다.


대표님께 구두 보고를 드렸고 당연히 찬성하셨다. '인사가 만사다'라고 생각하시는 분이었고 퇴사율을 낮추기 위해 어쩌면 번거로울 수 있는 일을 나서서 하겠다고 하니 오히려 염려 섞인 당부를 하셨다.


"쉽지 않은 과정이겠지만 그래도 직원들한테 그렇게 비빌 언덕이 되어 주었으면 좋겠어요"


난 그 말이 참 마음에 들었다. 비빌 언덕...


비빌 언덕 : 보살펴 주고 이끌어 주는 미더운 대상


처음으로 사회에 첫 발을 내딛고 모든 게 낯설고 힘들 수밖에 없는 그 시기에 회사 내에 나의 비빌 언덕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큰 힘이 된다. 나 자신이 누군가에게 그런 존재가 된다는 건 또 다른 의미의 동기부여였다.  


이미 직원들과 그동안 쌓아온 서로 간의 관계성이 있으니 면담 제도를 도입한 후 시작은 수월했지만 그들이 정말 속마음을 털어놓기까지는 시간이 걸렸다. 기업에서의 코칭 면담은 솔직하게 자신의 얘기를 하더라도 어떤 불이익이 없을 거라는 확신과 안전감이 가장 중요하다. 그 안전감이 형성되는 데는 실제 면담 후에 무언가 자신의 고민이 해결되었거나 긍정적인 방향으로 전환된 직원 경험이 쌓여야만 한다.


그런 긍정적인 직원 경험은 곧 사내에 퍼진다. 이렇게 입에서 입으로 전달된 직원 경험은 내가 면담에서 '아무런 불이익 없을 테니까 솔직하게 얘기해도 돼요'라고 말하는 것보다 10배 이상 강력하다. 그런 직원 경험이 사내에 정착되기까지 내가 할 일은 당장의 결실이 없더라도 꾸준히 면담을 진행하고 직원들의 고민을 들어주면서 함께 해결책을 찾고 실제 내 선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을 실행하는 거였다.    



이런 신뢰 관계가 형성되자 몇 가지의 변화가 나타났다.


첫 번째 변화는 지금까지 퇴사자들이 얘기하던 가짜 퇴사 이유가 아닌 진짜 이유를 얘기하기 시작했다는 거다. 진짜 이유를 아는 게 중요한 이유는 그 원인만 해결된다면 직원들이 퇴사에 대해 다시 한번 제고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시기적으로 이미 너무 늦었더라도 재발 방지를 위해 실제 원인이 무엇인지 파악하는 건 조직의 향후 인재 관리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두 번째 변화는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 나에게 자발적으로 면담 요청을 하기 시작했다는 점이었다. 나로서는 굉장히 고무적인 일이었다. 내가 상시 면담 제도에 쏟은 시간과 에너지가 결코 무의미한 일이 아니었음을 확신하는 계기였기 때문이다. 때로는 정기 면담 중 나에게 슬쩍 친한 동료의 정보를 흘리는 직원들도 있었다.


"요즘 OO 씨가 고민이 굉장히 많아요. 그래서 제가 혼자 고민하지 말고 면담 요청 한 번 해보라고 얘기했어요"     


"안 그래도 근래 표정이 좀 어둡더라고요. 얘기 한 번 해보려고 했는데.... 오늘 점심 같이 하자고 자연스럽게 물어봐야겠다. 알려줘서 고마워요"


퇴사라는 결정을 하고 수면 위로 올리기 전에 면담 요청이라는 중간 단계를 거친다는 건 그래도 일말의 가능성을 열어 놓고 고민 중이라는 신호다. 이런 중간 단계가 만들어진다는 건 굉장히 긍정적인 일이다. HR이 개입해 문제 해결을 할 수 있는 시간이 확보되기 때문이다.




퇴사를 결심하는 가짜 이유들이 점점 사라지고 수면 위로 올라온 진짜 이유들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건 결국 관계 갈등, 그중에서도 상사와의 갈등이었다. 이건 각 조직의 상황에 따라 물론 다르겠지만 당시 내가 근무했던 조직의 경우 가짜 이유들의 거품이 걷히자 선명하게 모습을 드러낸 건 바로 이 부분이었다.


지금까지 내가 들었던 퇴사 이유 중 너무 솔직해서 기억에 남아있는 사례가 있다.   


"전 제 상사처럼 되기는 싫어요. 그래서 퇴사를 결심했어요"


"상사처럼 되기 싫다는 건 어떤 의미예요? 좀 더 자세히 얘기해 줄 수 있어요?"


"직원인 저와 경력이 훨씬 긴 상사가 하는 일이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아요. 본사에서 한 마디 하면 본인이 더 당황해서 어쩔 줄 몰라하세요. 그리고 여전히 세부적인 부분까지 일일이 다 점검하고 지적하세요. 제가 오늘 막 입사한 신입인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많아요. 상사는 나의 미래의 모습이기도 한 건데 이 부서에서 계속 근무하면 결국 나도 저런 모습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어떻게 보면 지나치게 솔직한 답변이었지만 평소에 평판도 괜찮고 불필요한 말을 하는 직원도 아니었기에 진지하게 들을 수밖에 없었다. 솔직한 그 직원의 대답에 바로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던 건 평소에 나도 해당 상사의 리더십에 대해 같은 고민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리더가 되었으면 직원들에게 권한 위임을 하고 자신은 실무가 아닌 상위 단계의 역할을 해야 하는데 아직도 실무를 놓지 못하고 마이크로 매니징을 하니 부하직원의 반응이 이런 것도 당연한 거였다.


회사에서 나의 상사의 현재는 나의 미래 모습을 담고 있다. 누군가가 본받고 싶은 롤모델까지는 아니더라도 되고 싶지 않은 누군가된다면 이건 팀원에게도 조직에도  손실이다. 하지만   문제는 자신이 팀원들에게 어떤 리더로 인식되고 있는지조차 스스로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다.


**마이크로 매니징[구체적인 업무 지시와 중간 개입 및 점검을 통해 관리 감독하는 매니지먼트 방식]이 무조건 나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리더는 부하 직원 성향에 따라 이끄는 방향도 조금씩 달리할 줄 알아야 한다. 자기 주도성이 높고 역량이 어느 정도 갖춰진 직원이라면 충분히 권한 위임을 하는 게 효과적일 거고, 지시한 일은 완벽하게 수행하지만 무언가 맡아서 하는 거에 대해 심리적 부담감을 느끼는 직원에게는 피드백을 통해 적정선의 개입을 하는 게 더 효과적일 수 있다.


만약 이제 막 입사한 신입사원이나 저성과자의 경우는 일정 수준의 역량이 될 때까지 구체적인 업무 지시와 개입을 통해 점검하고 관리하는 마이크로 매니징이 오히려 더 효과적일 수도 있다.


하지만 솔직한 답변을 했던 그 직원의 경우는 자기 주도성도 높고 업무 역량도 뛰어난 경우였다. 당시 리더가 했던 가장 큰 실수는 부하 직원의 성향이나 역량 수준과 관계없이 모든 부서원들을 똑같은 방식으로 관리하려고 했던 점이다.


이런 코칭 면담제도 운영 과정을 통해 직원들의 다양했던 퇴사 이유가 명확한 한 두 가지로 좁혀지기 시작했다.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건 역시나 관계 갈등이었고 어떤 종류의 갈등 인가만 다를 뿐이었다. 향후 어떤 방향에 더 신경을 써야 할지가 좀 더 명확해지는 계기가 되었다.  





오랜 기간 근무했던 그곳을 떠날 때쯤 인수인계 파일 정리를 하다가 입. 퇴사자 명단 엑셀 파일을 열어 봤다. 현재 진행형인 인연, 마지막이었던 인연, 앞으로도 계속될 인연들이 사진과 함께 그 명단 안에 빼곡히 정리되어 있었다.  


궁금한 마음에 지난 3년 간 3년 미만 경력의 직원들을 필터링해 보았다.


'어... 0명?? 내가 잘못 설정한 건가?'


다시 한번 필터 설정을 점검했다. 0명이 맞았다. 그 순간 나도 모르게 울컥했다. 뭔가 모를 뿌듯함과 함께 그곳에서 보낸 지난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최선을 다했던 곳이라 회사를 떠나면서도 후회가 남지 않았지만 단 한 가지 지키지 못한 나와의 약속이 있다. 각 부서의 중간 관리자의 코칭 리더십을 강화해 나와 같은 역할을 하게끔 만든다는 포부였다.


결국 실행하지 못한 미완에 그친 목표가 되었지만 지금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사내 코치 역할을 할 누군가를 두는 것도 좋고 외부 코치를 통해 직원 코칭, 팀 코칭, 그룹 코칭을 하는 것도 좋지만 결국 모든 리더가 직원들의 코치가 될 수 있도록 코칭 리더십을 키우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런 리더 밑에서 일한 직원들은 나중에 자신의 부하 직원에게도 비슷한 리더십을 발휘할 가능성이 더 크다. 그런 선 순환이 이루어지지 않은 채 시스템과 제도만 손 보는 건 일시적인 효과는 있어도 조직문화 자체를 변화시키지는 못 한다.


기업 규모나 경력에 따라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대인관계 스트레스는 여전히 상위권을 차지하는 퇴사 이유 중 하나다. 더 좋은 기회로 자신의 성장을 위해 이직하는 거라면 진심으로 축하하며 보내주면 된다. 하지만 만약 사람 때문에 떠나는 거라면? 그리고 그 이유가 다름 아닌 나 때문이라면?  


"어쩌면 당신의 팀원은 회사가 아니라 리더인 당신을 떠나는걸 수도 있다."



**이미지 출처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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