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복을 담을 나의 그릇의 크기는?
20대 때부터 종종 들어왔던 말이 있다.
"넌 사람 보는 눈이 있는 것 같아!"
"넌 인복이 있는 것 같아!"
몇 년 전까지 난 그 두 가지가 별개인 줄 알았다. 그런데 그 둘은 별개가 아닌 인과관계임을 깨달았다. 사람을 보는 눈이 있으니 좋은 사람들이 내 주변에 많이 있는 거란 걸.
'사람을 보는 눈'은 주관이 아닌 객관적으로 파악하는 눈이다. 그러려면 좋은 사람을 알아보는 눈을 갖춰야 한다. 좋은 사람을 알아본다는 건 무얼 말하는 걸까?
과연 그게 우리가 흔히 얘기하는 '감'이나 '촉'일까??
사람을 알아보려면 기본적으로 사람에 대한 관심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사람의 감정을 느끼는 공감 능력, 상대의 반응이나 특정 상황에 따른 감수성[sensing]과 감지성[sense making]도 있어야 한다.
그런데 이보다 우선해야 할 게 한 가지 있다. 바로 나에 대한 관심과 나의 감정에 대한 관심이다. 나를 객관적으로 아는 것이 먼저고 그다음이 사람에 대한 관심이다.
나에 대해 잘 모르면 다른 사람에게 휘둘릴 가능성도 더 커진다. 나의 주도권을 남에게 뺏기지 않으려면 내가 나의 주인이어야 한다. 내가 나의 주인인 사람들은 타인과의 관계에서도 당당함을 유지한다. 의도된 당당함이 아니라 내가 나의 주인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배어져 나오는 당당함이다.
자기 자신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의 당당함은 오만함으로 발전하지 않는다. 자기 관대화가 아닌 자기 객관화가 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나를 잘 아는 것 - 순간순간 마주하는 나의 감정의 원인을 이해하는 것 - 나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자기 객관화'
이건 결국 타인에게도 적용된다. 타인의 감정이나 반응을 인지하고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눈을 통해 상대방이 어떤 사람인지에 대한 성향 파악을 하기 때문이다.
내가 나를 모르면서 남에 대해 잘 안다고 생각하는 건 착각이다. 그런데 더 문제는 많은 사람들이 자기 자신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서 잘 알고 있다고 착각하는 경우다.
에너지 뱀파이어들이 유독 잘 꼬인다면?
자꾸 사람들이 날 이용하는 것 같은 기분을 느낀다면?
마음을 터놓을만한 좋은 사람들이 내 주변에 없다면?
친했던 사람들과도 자꾸 멀어지게 된다면?
사람 보는 눈이 없고 인복이 없다고 생각하기 이전에 자기 자신을 먼저 깊숙이 들여다 보기 바란다. '인복'도 결국 인간관계다. 그리고 일방향이 아닌 쌍방향이다. 내가 지인들을 나의 귀한 복으로 생각하면 그들 역시 나를 자신들의 복으로 여긴다.
그러려면 내가 복으로 여길 수 있는 좋은 사람들을 곁에 둬야 한다. 사람 보는 눈을 키워야 하는 이유다. 그리고 사람을 보는 눈을 키우려면 나 자신에 대해 먼저 잘 알아야 한다.
"난 참 인복이 없는 것 같아!"
아무 생각 없이 무심코 내뱉는 그 말이 상대방에게는 어떻게 들릴까?
'난 저 사람의 없는 인복 중의 하나구나!' 하는 생각이 들지 않을까?
인복을 탓하기 전에 나 자신에 대해 성찰하고 좋은 사람을 알아보는 눈을 키워 나 역시 그 사람들에게 좋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는 것.
인복 있는 사람이 되려면 나 스스로가 '복'을 담을 수 있는 그릇이 되어야 한다. 나의 그릇의 크기는 현재 어느 정도일까? 객관적인 파악이 끝났다면 나의 그릇의 크기를 키우기 위한 꾸준한 노력과 성찰을 지속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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