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대 구분보다 중요한 건 '다름'과 '다양성' 이해라는 본질
2018년 상반기에 외부 기업교육 기관에서 진행했던 MBA 주말 과정 교육을 수강했었다. 아무래도 과정 특성상 상위 직책자 비율이 높았다. 다른 말로 하면 대부분 40대 이상이었다는 의미다. 어느 날 강의하시던 교수님께서 이런 질문을 하셨다.
"밀레니얼 세대는 기성세대처럼 필드에서 하는 골프를 즐기지 않습니다. 그 이유를 아세요?"
누구도 정답을 내놓지 못하자,
"바로 여러분들이 거기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예상 못 한 대답에 모두들 한참을 웃었다. 굳이 설명을 덧붙이지 않아도 무슨 의미인지 모두가 알았기 때문이다. 웃으면서도 '내가 그런 나이가 되었구나' 하는 생각에 약간은 씁쓸했다.
직장 생활을 하는 비슷한 또래 지인들을 만나면 자주 하는 얘기가 있다. 꼰대라 불리는 게 무서워서 못마땅해도 그냥 지나칠 때가 많다는 거다. 문제는 그냥 지나치는 게 그 부하 직원의 향후 조직생활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걸 알 때다. 알면서도 듣기 싫은 잔소리로 들을까 봐 피하게 된다고 한다.
실제 조직에서도 사내 코치 역할을 하다 보니 그런 상급자들이 자주 면담 요청을 했었다. 면담하면서 해결책을 제시해주기도 하고 상황이 심각한 경우는 직접 개입하기도 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느낀 건 윗사람들이 부하 직원들에게 당연히 지도해야 하는 부분까지도 꺼린다는 거였다.
물론 싫은 소리 하는 걸 좋아할 사람은 없다. 하지만 예전 세대보다 요즘 상급자들이 점점 이런 성향이 강해지는구나 느낄 때가 많았다. 왜일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이미 기성세대가 되어버린 요즘 상사들을 특히 망설이게 하는 한 단어가 있다. 바로 '꼰대'다. 우리는 이 단어에 대한 거부감이 있다.
확실히 요즘 40대는 베이비부머 세대나 386 세대에 비해 꼰대라는 단어에 더 민감하다. 거슬러 올라가면 지금의 40대는 1990년대 초중반, 당시 신세대를 지칭하는 X세대였다. 기존 기성세대와는 다른 독특한 문화적 특성을 갖고 있었고 관습을 따르는 걸 거부했다. 세대 특징에 처음으로 개인주의라는 표현이 사용될 만큼 자기표현에 더 과감했고, 소비와 노는 걸 즐기는 부정적인 이미지도 갖고 있었다.
하지만 현재 조직에서 상위 직책자인 그들은 밀레니얼 세대 상사들만큼 쿨하지 못한게 현실이다. 밀레니얼 세대가 개인주의라는 개념이 어느 정도 정착한 세대라면 X세대는 약간 맛만 본 세대라고 할 수 있다. 군부 시대의 끝자락을 경험했고 개인보다는 공동체라는 시대의 가치 아래서 성장했기에 과거의 편린들은 무의식에 여전히 잔재처럼 남아있다. 부하 직원에게 조직 생활에 있어서 당연히 지켜야 할 매너와 조직 사회화에 대해 얘기하고 싶지만 꼰대라 불릴까 봐 피한다. 피하지만 마음 한구석은 계속 찜찜하다.
오랜 기간 인사 업무를 하며 80년대 초반生부터 90년대 중반生까지의 신입 채용을 직접 진행했다. 주기적인 코칭 면담으로 그들의 성장을 지켜보며 좀 더 친밀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다. 그 덕분에 비슷한 나이대, 직급의 상사들에 비해 어린 직원들과 좀 더 편안한 관계 설정이 가능했다. 하지만 나조차도 90년 대생 이후부터는 확실히 예전과는 좀 달라졌구나 하는 걸 느낀다. 지나친 관심을 부담스러워하고 상사가 효율적인 방식을 알려줘도 본인들이 납득되지 않으면 받아들이지 않는다. 내가 편한 방식이 있는데 왜 자신의 방식을 강요하는지 모르겠다며 불만을 토로한다.
상사는 더 빠르게 일 처리할 수 있는 방법을 기껏 알려줬는데도 부하 직원이 자기 방식을 고수하니 기분이 상한다. 실제 양쪽 모두 따로 면담했던 경험담이다. 무조건 상사 말이니까 따르던 시대는 이미 끝났다. '우리 때는 안 그랬는데 요즘 애들은'이라는 변하지 않는 세대 공통어를 들이밀 필요도 없다. 나이가 많으니까 경험이 많으니까 존중하고 따르는 게 아니라 존재 자체가 그런 사람이어야 따른다. 지시가 아니라 납득을 시켜야 하고 그러려면 상사와 부하 직원 간 관계 형성이 먼저라는 거다. 사실 이건 모든 관계의 기본이다. 친밀감과 신뢰관계 형성 정도에 따라 내 의견이 상대방에게 받아들여지는 정도가 달라진다.
물론 관계는 일 방향이 아니라 쌍방향이다. 부하직원도 열린 마음을 가져야겠지만 좀 더 관계 형성에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건 상사의 몫이 더 클 수밖에 없다. 그런 관계 형성이 되어 있다면 무언가를 지시하더라도 서로가 편안하다. 내 상사는 나의 성장을 도와주는 사람으로 인식되면 의외로 많은 부분이 쉽게 풀린다.
내가 생각하는 '꼰대'의 개념은 나이와는 관계없다. 젊은 '꼰대'라는 말이 왜 있겠나? 배려 없는 사람, 의사소통 능력이 부족한 사람, 경청과 공감능력이 떨어지는 사람, 다양성과 남의 취향을 존중하지 않는 사람, 나이와 사회적 위치로 대접받으려는 사람, 편견에 사로잡힌 사람, 갑질 하는 사람 등 '꼰대'의 종류는 무궁무진하다. 그런 의미로 '꼰대'는 특정 나이가 아닌 10대를 포함한 전 세대에 해당되는 단어다. 너무 나이라는 생각의 틀에 갇혀 위축될 필요는 없다. 경청과 공감능력이 있고 '다름'과 '다양성'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는 사람은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꼰대' 프레임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
특히나 조직은 각기 다른 세대가 하나로 섞인 그야말로 세대 통합 장소다. 임원이나 부서장 위치의 386세대와 X세대, 중간 관리자급의 밀레니얼 세대, 그리고 Z세대까지 살아온 시대. 사회. 문화적 특성이 다른 4개의 세대가 한데 섞여 있다. '다름'과 '다양성'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결국 ‘요즘 애들은’이라는 세대 반복 도돌이표만 그리게 된다.
어느 순간부터 시대. 사회. 문화적 특성을 기준으로 하는 다양한 세대 구분법이 살아온 시대와 다양성 이해라는 순기능이 아닌 오히려 세대 간 거리를 명확히 구분 짓는 역기능 강조 역할을 하는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든다. 애초 구분 목적은 분명히 전자였을 거다. 역기능인 후자에 에너지를 쏟는 건 어쩌면 우리 자신인지도 모른다. 세대 특성에 대한 정의가 서로에 대한 이해의 도구로 활용되지 못한다면 본질을 놓친 지식 나열에 불과하다. '무의미함'에서 '유의미함'으로의 변화는 나이나 세대를 탓하는 입이 아니라 '다름'과 '다양성'의 이해라는 사고에서부터 출발해야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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