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는 궤변

단지 일반화의 오류일 뿐...

by 심 코치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 과연 그럴까? 누군가 다른 사람을 판단함에 있어 너무 쉽게 이런 말을 뱉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면 난 그 사람을 다시 한번 쳐다본다. 그리고 표정을 살핀다. 단순히 농담으로 던진 말인지, 아니면 정말 그 사람의 진심인지... 전자라면 그냥 웃어넘기지만 후자라면 글쎄... 좀 실망스러울 것 같다. 사람에 대한 판단이 너무 가볍기 때문이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는 것만큼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가 또 있을까?


남에 대해 섣불리 판단하고 평가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다. 대게 그 대상은 본인이 잘 모르는 사람들이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는 것도 결국 그 '하나'만 알 정도로 상대방에 대해 잘 모른다는 얘기다. 오랜 기간 알고 지낸 사람에 대해서는 이런 표현을 잘 사용하지 않는다. 회사에 갓 입사한 신입, 오늘 처음 미팅한 거래처 담당자, 또는 처음 나간 모임에서 만난 누군가를 대상으로 열 개 중 하나의 경우의 수, 단지 10%밖에 안 되는 모순적인 잣대로 종종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를 범하곤 한다. 뭔가 상대방이 마음에 안 드는데 그냥 싫다는 건 없어 보이니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는 말 뒤에 숨는다. "난 그냥 이유 없이 저 사람이 싫어"라고 하는 게 차라리 더 인간적이고 설득력이 있다. 적어도 솔직하기라도 한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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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는 말만큼이나 개연성이 없는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가 바로 혈액형 맹신이 아닐까 싶다. 아주 오래전에 토크쇼 프로그램에 나온 연예인이 그런 말을 했다. 본인은 특정 혈액형과 맞지 않는다고... 너무 단호한 어조로 얘기하니 진행자가 이유를 물었다. 그랬더니 본인이랑 잘 맞지 않았던 사람들이 희한하게도 다 같은 혈액형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 이후로는 특정 혈액형을 꺼리게 되었다는 말도 덧붙였다.


너무 확고한 그 믿음이 난 왠지 안쓰러워 보였다. 관계는 쌍방향이다. 누군가가 나와 맞지 않는다면 거기에는 적어도 혈액형보다는 좀 더 논리적이고 개연성 있는 이유가 있어야 한다. 다른 것도 아닌 인간관계에 관한 일이니 말이다. 좋지 않은 결과론의 이유로 들기에 혈액형 논리는 너무나 빈약하다. 남과 북으로 나뉘어 있는 작은 국가에서 지역, 학연, 지연, 혈연, 종교 따지는 것도 모자라 혈액형까지 따진다면 도대체 나와 좋은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사람들이 남아 있기는 할까?


에니어그램, DISC, MBTI 등 여러 가지 유형 검사 관련 자료들을 직무상 교육과 연결해 활용하곤 했다. 내가 어떤 유형이고 남이 어떤 유형인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다름과 다양성에서 오는 상생과 시너지를 강조하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적어도 혈액형보다는 예로 들기에 설득력이 있는 도구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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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주변 사람들한테 직관력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는다. 성향 분석에서도 항상 그 부분이 높게 나온다. 그래서 더욱 스스로를 경계한다. 나 같은 사람이 스스로의 직관력을 맹신하는 순간 벌어질 일들이 예측되기 때문이다. 특히 다른 곳도 아닌 사람에 대한 판단에 그 강점을 쉽게 사용할 때 말이다. 직관력만으로 판단하기에 인간이란 예측 불가하고 모순적인 존재다. 결코 모든 패를 다 내놓지 않는다. 상대방과의 관계성, 사회적 위치, 속한 환경, 익숙함의 정도 등 수많은 요소들에 따라 어느 정도를 보여줄지 본능적으로 판단한다. 여기에 무의식, 숨은 의도, 비 언어적인 요소까지 더해진다. 보이는 건 일부이고 그 이면에 너무 많은 보이지 않는 영역이 존재한다.


관계에 있어서의 진정성은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 중 하나다. 하지만 가족들한테조차도 내보이지 않는 나의 모습이 분명히 있다. 때로는 내가 하는 말이나 행동이 스스로 납득이 가지 않을 때도 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서야 내 안에 있던 숨은 의도를 깨닫기도 한다. 내가 아까 화가 났던 건 사실 상대방에 대해서가 아니라 내 안의 찌질한 열등감이었구나 하는 것들 말이다. 인간 심리에는 늘 예측 불가한 미지의 영역이 존재한다.


특히 요즘은 점점 더 다양하게 분리되는 정체성을 갖는다는 멀티 페르소나의 시대다. 내 안의 정체성과 타인에게 비추어지는 정체성이 확연히 다를 수 있는 요즘 시대에 사람에 대한 왜곡된 판단과 제한적인 관점으로 인해 좋은 관계로 남을 수 있는 사람들을 스스로 밀어내고 있는 건 아닌지 생각해 봐야 한다. 살다보면 하나를 보면 열을 알 수 있는 상황이 분명히 존재한다. 하지만 사람에 대한 판단에서만큼은 예외다. 가벼운 말로 툭 던져 판단하기에 사람이란....그 존재의 의미가 너무 무겁다. 무거움은 무거움으로 대해야 한다.



*이미지 출처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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