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외라는 말이 더 의외다
재작년 가을에 회사 동료들과 대화하다 자연스레 주말 스케줄 관련 질문들이 오갔다. 공연 덕후인 나는 한강 난지공원에서 개최 예정인 '오프 루트 페스트 2018'에 갈 거라고 했다. 다들 생소해하기에 다양한 힙합 아티스트들이 공연하는 힙합 페스티벌이라고 설명했다. 의외라며 놀라워하는 동료들에게 농담 섞인 목소리로 웃으며 말했다.
"나 페르소나 여럿 키워, 회사에서의 나만 보고 판단하면 곤란해!"
그리고 일 년이 지난 작년 10월, '트렌드 코리아 2020' 책 리뷰를 온라인에서 보게 되었다. 그런데 2020년을 관통하는 키워드로 '멀티 페르소나'를 꼽은 것이 아닌가? 괜히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사회에서의 경력이 어느 정도 쌓이기 시작하면서 친한 지인들에게 자주 하던 말이 있다. 난 공적인 삶과 사적인 삶이 명확하게 구분되는 사람이라는 거였다.
조직에서 신입이 아닌 경력자를 채용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회사 성장에 기여할 사람이라는 판단하에 그 사람의 직무 경험치를 합당한 금액(연봉)을 제시하고 사는 거다. 신입은 후보자의 미래 성장 가능성을 보지만 경력이 있는 경우 후보자가 조직 성장에 얼마큼 기여할 사람인가가 가장 중요하다. 전문가로서 증명해야 하는 자리이고 경력이 쌓일수록 그 무게감은 더해진다. 조직은 개인의 호불호나 사적인 취향에 따라 움직이는 곳이 아니다. 조직이 나아가야 할 방향과 직무, 직급에 따르는 공적 역할과 책임이 있다. 그 공간에서는 그 역할에 충실한 나로 존재한다.
하지만 사적 영역은 다르다. 일상의 삶을 살고 미래를 위한 준비를 하며 취미생활도 영위하는 나만의 영역이다. 사유하는 시간도 갖고 좋아하는 것들을 통해 에너지를 채우는 영역이기도 하다. 평소에 나는 어떻지? 나에 대해 생각해봤다.
나는 호기심이 강해 이것저것 많이 시도하지만, 가끔 너무 많이 벌여서 후회도 한다.
정해진 일정 없이 다니는 여행을 좋아하지만, 계획에 따라 움직이는 여행도 싫지만은 않다.
크고 중요한 결정에는 대담하지만, 의뢰로 작은 결정은 자꾸 미룬다.
사람들에게서 에너지를 받는 관계 지향형이지만, 혼자 노는 것도 매우 잘한다.
영화관보다 공연장을 더 자주 가고, 장르 취향은 그때그때 다르다.
어떤 면으로는 매우 부지런하지만, 어떤 면으로는 매우 게으르다. (호불호에 따른 게으름)
좋아하는 건 완벽을 추구하지만, 내가 못하는 건 승부근성이 발동하지 않는다. (특히 운동 종류...)
조직에서는 빈틈없어 보이는 모습이지만, 가족들만 아는 나의 빈틈과 허술함, 허당끼가 있다.
그리고, 항상 뭔가에 열을 올리고 에너지를 쏟는다. 지속적이고도 다양한 '덕질'...
공적 영역에서 만난 사람들 중 나와 친분이 두텁지 않다면? 사적 페르소나 중 많은 부분이 의외일 거다. 그러고 보면 살면서 많이 들었던 말 중 하나가 '의외다'라는 거였다. 클래식부터 재즈, 힙합, 롹, 국악까지 모두 섭렵하는 장르 취향의 의외, 술 한잔도 못 마실 것 같이 생겼는데 잘 마셔서 의외, 공연장. 영화관. 고깃집까지 혼자 잘 다니니 의외, 추리소설을 가장 좋아한다니 의외, 리듬감 없어 보이는데 춤 잘 춰서 의외, 까다로울 것 같은데 가리는 음식이 없어서 의외, 발표할 때 전혀 떨지 않으니 의외, 결정적 순간에 할 말 다해서 의외....'너 의외다'라는 말은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항상 나를 따라다니는 평가 중 하나였다. 물론 나를 잘 아는 사람들이 아닌 띄엄띄엄 아는 사람들이 내리는 평가다.
의외라는 말은 결국 한 사람이 가질 수 있는 수많은 다양성의 일면을 너무 쉽게 하나의 결로 파악했다는 의미일 거다. 겉으로 보이는 이미지와 말투만으로는 그 사람을 알 수 없다. 문신만으로 박재범을 평가할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몇 년 전 힙합 플레이야(HIPHOPPLAYA) '힙플라디오' 인터뷰에서 선순환의 가치에 대해 얘기하는 걸 듣고 다시 한번 놀랐었다. 내가 가진 선의가 누군가에게 좋은 영향을 미치면 그 사람은 또 누군가에게 좋은 영향을 줄 거고, 이게 좋은 파급력으로 발전한다면 세상이 좀 더 좋은 쪽으로 변화하는 게 아닐까 하는 그런 내용이었다. 멋진 사람이라는 생각은 그전부터 했었지만 이 인터뷰를 보면서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멋진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지만으로 의외라는 평가를 받아왔음에도 나 역시 보이는 것만으로 평가하고 결론 내리던 때가 있었다. 20대 때 특히 심했다. 내 인생에 불만이 많았던 시기라 그런 불만 욕구는 나라는 사람 자체를 굉장히 부정적이고 시니컬하게 만들었다. 사람 보는 눈이 있다는 나의 강점에 기대 누군가에 대해 너무 쉽게 판단하고 평가 내리곤 했었다. 하지만 오히려 나이 들고 의식이 성숙해지면서 정말 알지 못하는 부분에 대한 평가를 아끼게 된다. 사고 없는 말의 가벼움을 지양하려고 애쓴다.
개인차는 있겠지만 모든 사람들은 알게 모르게 다양한 페르소나를 가지고 있다. 한 가지 모습으로만 존재하지 않는다. 회사에서의 나, 가족 안에서의 나, 친구들 사이에서의 나, 친척들 사이에서의 나, 모임에서의 나, 취미생활할 때의 나... 사회적 위치, 장소, 시간, 대상, 온. 오프라인 여부 등 수많은 변수에 의해 자신만의 톤 & 매너가 달라진다. T.P.O에 맞게 꺼내 쓰는 다양한 멀티 페르소나들...
중요한 건 한 개인이 몇 개의 멀티 페르소나를 가지고 있느냐가 아니라 모든 페르소나들을 관통하는 주체 페르소나의 존재 여부라고 생각한다.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이 완벽하게 분리된 삶을 산다고 하더라도 두 영역 모두를 아우르는 상위 개념의 무언가가 있어야 한다. 멀티 페르소나가 다중인격과 다른 점은 멀티 페르소나는 하나의 인격 아래 하위 범주라는 점일 거다. 사람의 주체가 되는 인격, 즉 주체 페르소나는 하나이고 그 밑에 파생된 다양한 공적 페르소나와 사적 페르소나들이 멀티 페르소나라고 생각한다.
주체 페르소나는 그 사람의 사고, 가치관, 윤리관, 세계관 등의 본질을 관장한다. 그 하위에 놓인 다양한 멀티 페르소나는 공적 역할과 목적 혹은 사적 선호도나 목적에 따른 다양성이자 개성이다. 멀티 페르소나란 내가 갖고 있는 여러 가지의 다양한 정체성이다. T.P.O, 혹은 온-오프라인에 따라 내가 어떤 페르소나를 꺼내 쓰던 상관없다. 그건 개인의 자유이자 표현 방식이다.
다만 지양해야 할 건 주객이 전도되는 상황이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이 좋아하고 칭송하는 SNS상에서의 멀티 페르소나가 나라는 인격의 주체 페르소나를 잠식해 버리는 일 말이다. 온라인에서는 세상에 없는 다정한 '인싸'인데 실제 오프라인에서 만나보니 사회성이 결여된 사람이라는 걸 알고 놀랐던 경험이라던가, 온라인에서는 용감한 악플러들이 실제 수사를 통해 만나보니 그냥 너무나도 평범하고 소심하기까지 한 옆 집 학생 같았다는 기사처럼 말이다.
주체 페르소나가 변하지 않는 중심을 지킨다면 다양한 멀티 페르소나의 존재는 오히려 삶을 지루하지 않게 만든다. 평이함이 아닌 다양함으로 나를 표현하는 즐거움일 수도 있고, 한 가지 역할이나 색깔로만 규정되지 않는 나만의 개성일 수도 있으며, 다양한 호기심과 경험을 통한 성장으로의 연결일 수도 있다.
'주체 페르소나'라는 나의 인격을 형성하는 기반이 흔들리지 않는다면 멀티 페르소나는 오히려 가면 뒤에 감춰진 나의 모습이 아니라 '나다움'으로 규정되는 사회적 시선으로부터의 자유로움일 수도 있다. 그런 의미로 요즘 세상에는 누군가에게 쉽게 던지는 의외라는 말이 더 의외다. 살면서 누군가의 '의외성'이란 건 오히려 나에게는 고정관념을 깨는 신선함으로 다가오는 경우가 더 많았다. 그런 예측의 빗나감이라면 언제든 환영이다.
*타이틀 이미지 출처 : 개인소장 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