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이유』by 김영하 서평

by 에리카Y

"안녕하세요, 김영하 작가님. 내적친분은 아주 오래전부터 쌓였었지만 이제야 작가님의 책을 처음으로 읽어본 독자입니다."


라고 시작하고 싶은 나의 『여행의 이유』 독후감. 사실 나는 서평과 독후감의 차이를 모르는 non지식인이다. 하지만 이런 나라도 내가 재밌게 읽은 책에 대해서는 아는 척을 늘어놓고, 나만의 감상을 정리하고 싶어 이 기록을 남긴다.




이 책을 처음 알게 되었던 건 잠시 일을 하던 학원 건물 2층에 위치한 문구서점을 NPC처럼 배회하던 때였다. 벽 한편에 꽂힌 민음사 전집들 사이로 시선을 끄는 초록색이 눈에 들어왔었다. 『여행의 이유』 by 김영하. 엄마가 좋아하는 작가이자 TV에서 본 적 있는 낯익은 사람. 그러나 나는 한국문학싫어병에 걸린 환자였기에 그의 작품을 읽어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한국인이지만 한국작가의 작품들을 꺼려했다 (물론, 지금은 완치되었다). 그러나 여행이라는 키워드는 나를 언제나 설레게 하였으므로 한번 책을 훑어나 보자 싶어 몇 장 읽었고, 책 속 문체가 주는 깔끔함에 압도되었었던 것 같다. ‘좋아, 좋아, 다음에 이걸 사서 읽어봐야겠다.’라고 생각하고 그곳을 나왔었다. 그로부터 이 책을 읽게 된 건 1년도 더 된 지금이다. 무언이 나를 가로막고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동안은 이 책이 끌리지 않았었다. 아마도 너무 많은 논문들을 읽어 뇌가 비문학 모드로만 활성화되었었기 때문인 것 같다. 그래도 나는 늘 맞는 때에 맞는 책을 읽는 편이다. 하늘이 도와준달까? 시기적절하게 책들이 나를 찾아와 주고, 이 책도 마찬가지였다. 이 책을 읽을 때가 비로소 왔기에 이 책을 읽게 된 것이라고 믿는다.


처음부터 끝까지 한 페이지씩 공들여 읽었는데, 막상 책장을 덮으니 기억에 남는 부분들은 오직 몇 가지들 뿐이다.

1. 여행의 외면적 목표와 내면적 목표

2. 우리는 지구라는 파란 구슬의 승객들

3. 노바디와 섬바디를 넘나들기 (매우 흥미로웠던 부분)

4. 우리는 결핍된 것을 채우기 위해 여행한다.

5. 여행에서 느낄 수 있는 환대들

6. 익숙하던 공간도 하루아침에 여행지가 될 수 있다.

7. 잡아먹힌 꾀돌이...


7번은 다소 뜬금없어서 죄송. 꾀돌이가 잡아먹혔다는 이야기가 나에게는 너무나 충격적이었다. 아무튼 위와 같은 부분들이 뇌에 남는다. 이 책은 여행산문집 인척 하는 자아성찰 안내서 같다. 나에게 여행이란 그렇다. 자아성찰을 하게 되는 주제. 김영하 작가의 여행 이야기들과 그것들에 대한 회상과 통찰들을 엿보며 결국 책을 읽는 동안 생기는 나의 내면세계를 여행하게 되었다. 어떤 구절들은 비슷한 경험들을 떠올리게 하였고, 어떤 구절들은 신선함을 주었다. 나의 여행 이야기들, 내 주변 사람들에게서 들었던 이야기들, 내가 한국에서 외국인 여행객들을 만난 경험들을 활발하게 사용했다. 내 머릿속 여행 관련 직접적, 간접적 기억들을 여러 구절들과 매칭시켰다. 재밌었다.



그러고 보니 나는 항상 현지인으로 보이는 것을 추구했던 것 같다. 여행에 가서 화려하게 치장을 하는 것이 피곤하게 느껴져니 늘 편한 옷들로만 입고 다닌 것도 있지만, 사실은 나를 모르는 곳에서 나를 모르는 사람들 속에 섞여 들고 싶었던 것 같다. 원래 가지고 있던 정체성은 잠시 지워버리고, 누구라도 괜찮으니 나를 몰라주기를 바랐다. 그래서 현지인들이 나를 현지인으로 착각하고 길을 물어보거나 그 나라의 언어로 말을 걸어주는 게 너무나 기뻤던 것 같다. 이렇게 나는 노바디가 되며 힐링을 했었다. 그리고 여행을 하면서 만나는 사람들 또한 나는 그들을 노바디로 만들었다. 그들의 나이, 직업, 성격, 나와의 관계 등등을 떠나 그저 ‘현지인’, ‘여행에서 만난 또 다른 여행객’ 등으로 심플한 정체성을 부여했다. 가끔은 타인에 대해 지나치게 알아버리는 것이 나를 힘들게 만들고, 심플하게 생각할 수 있는 관계들이 편하기 때문이다. 그러다 여행을 하다 만난 사람들 중에 나에게 섬바디가 되는 사람들도 있기는 하다. 수많은 사람들과 스쳐 지나가도 기억에 남게 되는 인연들이 있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 사람들과는 연락처나 SNS를 교환하기도 하고, 여행 이후에 만나기도 한다. 그러나 여행을 하다가 만나서 그런가 나의 일상생활 속에서 빈번하게 등장하는 인물들이 아니다 보니 친숙한 인물들과는 다르게 인식된다. 특별하다고 할까. 그냥 ‘A씨’ 보다 ‘여행을 하다 만난 A씨’ 라는 정체성을 가지게 되니 왠지 나와 맞지 않는 부분들을 발견하게 되어도 넘기게 된다. 우리는 여행을 하다가 만났으니까 라며 여행이라는 게 그 사람과 나 사이의 거리를 만들면서 또 동시에 연대감도 만들어버린다. 신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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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는 여행이 끝나고 나서야 그 여행이 본인에게 어떤 의미였는지를 알게 된다는 구절이 있다. 동의하고, 공감한다. 어떤 여행은 너무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끝나서 곱씹을 새도 없어 안타깝다. 나는 한 여행에 대한 나의 감정들과 생각들을 시간을 들여 덧씌워가는 게 그렇게 재밌다. 나 스스로의 기억을 좋은 쪽으로든 뭐든 왜곡시키는 게 재밌다. 한 번의 여행에 여러 가지 버전들의 기억들이 만들어지는 것만 같다. 마치 여러 번의 가성비 여행을 하는 기분이다. 내가 이런 즐거움을 가지고 산다는 것을 이 책을 읽으며 다시 일깨울 수 있었다.


앞으로 나는 어떤 여행들을 할까? 책을 읽고 나서 가장 궁금했던 것이다. 이 질문을 파고들거나 가능성 있는 답변들을 떠올려보지는 않았다. 미리 예측할 수도 없을뿐더러, 자고로 여행이란 예상치 못하게 흘러가야 재밌기 때문이다. 나는 그 누구보다도 불안도가 높고 삶을 통제하고 싶어 하는 성향을 지녔으면서도 여행에서 겪는 예상치 못한 상황들을 사랑한다. 그런 상황들을 겪고도 목숨을 부지하고, 내가 나로 남아있을 수 있다는 걸 경험하는 것을 사랑하는 것 같다. 앞으로 나는 어떤 여행들을 할까? 잘 모르겠다. 그러나 앞으로 나는 어떤 여행들을 하고 싶나? 에 대한 것은 알고 싶고, 알고 있는 것 같다. 나는 나를 찾는 여행들을 하고 싶다. 가장 새로운 경험들을 통해 가장 가까운 사람 한 명을 알고 싶다. 아직 가보지 못한 시공간들이 너무나 많듯, 아직 모르는 나의 모습들이 너무나 많다. 이런 모름이 나에게는 삶을 살아갈 동력이 되는 것 같다. 이게 내가 여행을 사랑하고, 여행자들을 동경하는 이유이며 이 책을 통해 진정한 여행이 가능했던 힘이다. 이 책을 읽은 것이 내가 나를 찾게 되는 과정 속 의미 있는 일부가 되어주기를 바라며 독후감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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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기억 속에서 희미해졌던 여행들이 이 책을 이해할 수 있는 도구들이 되어주었다...별로 큰 의미가 없고, 재미도 없었던 것 같다고 생각했던 여행들이 언젠가 내가 필요한 도구들이 되어주었다는 걸 생각하면 몹시 설렌다. 역시 인생에 그냥 일어난 일은 없는 거구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