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남들보다 쉽게 지칠까』by 최재훈 서평

HSP로 살아간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by 에리카Y

“처음부터 끌리지 않는 책에는 이유가 있다.”


서평을 쓰며 부정적인 생각을 섞자니 여러 명의 사람들에게 죄송하다. 이를 테면 해당 책의 저자분, 출판사 직원분들, 그리고 나에게 책을 추천해 준 지인까지 말이다. 그러나 이유 없는 비난이 되지 않도록 책에 대한 나의 솔직한 감상들을 털어놓고자 한다.




『나는 왜 남들보다 쉽게 지칠까』는 내가 1년 전에 SNS 피드에서 본 적이 있는 책이다. 제목과 북커버를 보아 미루어 짐작하였을 때, 이 책은 전혀 내 취향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었다. 책을 즐겨 읽는 사람들이라면 본인의 책 취향에 대한 이해도가 탄탄하게 잡혀있는 경우가 많은데 나 역시도 그러했다. 나는 감성적이고 감정호소가 가득한 책을 선호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 책도 처음 보았을 때는 내가 선호하지 않는 류의 책일 것이라는 확신이 들어 책에 대한 자세한 정보가 아무것도 없었지만 빠르게 내 리딩리스트에서 걸러내었었다.


그로부터 1년 후쯤, 내가 신뢰를 하고 있는 지인에게서 나에게 추천하고픈 책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나는 설레는 마음으로 그 책이 무엇이냐 물었고, 그 책이 바로 지금 쓰고 있는 서평의 대상인 책이다. 끌리지 않았던 책이 돌고 돌아 내 인생에 재등장한 것이었다. 지인은 책을 읽으며 나를 떠올렸다고 말하였고, 본인이 생각하기에는 내가 해당 책을 읽음으로써 분명 도움을 받을 것 같다고 말하였다. 나는 제목을 듣자마자 나도 이 책에 대해서 이미 알지만, 누군가의 감정호소가 가득한 책은 읽고 싶지 않다고 전하였다. “나는 질질 짜는 책이 싫어”가 내가 사용한 워딩이었다. 그러자 그녀가 말하길, 책은 Highly Sensitive Person (HSP) 기질에 대한 내용이며 감성팔이를 하는 책이 전혀 아니라고 말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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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추천을 받았던 바로 그날, 나는 지인과 함께 교보문고 강남점에 가 책을 구매하였다. 그러고는 집에 돌아와 읽고 있던 다른 책들은 제쳐두고 이 책을 읽기 시작하였는데, 읽는 내내 저자분으로부터 내 모습을 사찰당한 듯한 기분이 들었다. 책의 처음부터 끝까지가 나에 대한 내용들로 가득 차 있었다. 심지어 나와 지인이 가까워진 이유는 서로가 느끼는 인간관계들에 대한 피로감을 털어놓다가 이야기가 매우 잘 통해서였었는데, 우리의 비밀스럽고 소중하게 나누었던 대화 내용들이 그 책이 그대로 들어있었다.


1. 다른 사람들의 기분을 빨아먹게 된다. 그러고는 체한다.

2. 인간관계에 대한 환멸감을 지속적으로 느끼고, 강렬하게 고통받는다.

3. 인류애가 떨어졌다고 말하면서도 사람들을 만나는 것을 진심으로 좋아한다.

4. 휴식은 꼭 혼자서만 취할 수 있다.

5. 본인은 스스로가 매우 예민하다는 것을 알지만 주변 사람들은 알지 못한다.

6. 주변 사람들은 느끼지 못하는 것들을 혼자서 느낀다.

7. 자기 검열이 매우 심하다.


크게 떠오르는 것들만 정리해도 벌써 7가지나 나온다. 우선, 책에 대한 더 깊은 내 감상들을 털어놓기 전에 나는 HSP 코스프레를 하며 특별하게 보이고자 하는 게 아니라는 말을 하고 싶다. 과거의 나는 항상 특정 MBTI나 별자리에 본인의 정체성을 쑤셔놓고, 남들과는 다르다는 특별함에 빠져있었다. 아무래도 소속감을 느끼고 싶었던 것 같은데 특정 정체성에 대한 나의 과몰입이 너무나 과했기에 이제는 그런 행동을 하는 걸 조심하고자 한다. 이 이야기는 왜 내가 HSP 특징들에 깊게 공감하면서도 나 스스로를 HSP로 선뜻 인정하는 걸 꺼리는지와도 연결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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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매우 공감이 되었었다. 그러나 너무 공감이 되어 힘들었다. 보통은 공감이 되는 글을 읽으면 위로를 받기 마련이다. 심지어 이 책의 저자분은 매우 따스하셨다. 이 분을 알지는 못하지만 전하는 내용들이나 문체가 그러하였다. 이 책이 쓰인 이유도 HSP 기질로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들을 위로하고, 응원하기 위함이라고 믿는다 (실제로도 그렇게 쓰여있다). 나는 이 책이 가진 모든 선함을 머리로는 알고 있다. 이 책은 나의 지인을 도와주었고, 이 책으로 도움을 받은 지인은 나를 도와주었다는 걸 알고 있다. 그럼에도 이 모든 것을 불구하고, 이 책은 너무 힘들었다. 책에서는 다양한 에피소드들이 소개가 되며 ‘HSP 기질을 가진 사람은 이럴 때 힘들지 않은가요?’라는 식으로 공감을 얻으며 진행이 된다. 이로 인해 책을 읽으며 각각의 에피소드, 예시들을 머릿속으로 상상하고 나의 경험들을 대입시키며 읽던 나에게 두통이 찾아왔다. 너무나 생생한 상상들이 고통스러웠던 것이다. 침대 위에서 평온하게 누워 책을 읽으며 여러 가지의 스트레스들을 받았다.


책은 공감뿐만 아니라 HSP 기질을 다루는 방법들도 제시를 한다. 놀랍게도 전부 내가 하고 있는 것들이었다. 다른 말로 하자면, 그 방법들이 새롭지 않아서 내 삶을 여기서 더 개선시킬 수는 없었다. ‘내가 잘하고 있었구나’라는 생각 대신에 ‘아, 이게 이미 최선이었구나. 색다른 다른 방법은 없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적어놓고 보니 이 책은 나라는 다소 부정적인 독자에게 잘 못 걸린 것 같다.


다 읽고 나서는 피로감이 들었다. 그런데 여기서 끝은 아니었다. 나는 여태까지 나의 예민한 성향 (이쯤 되면 성격인 것 같다) 탓에 여러 힘든 일들을 겪으며 살아왔다. 어떤 일들에 대해서는 극복을 하였고, 어떤 일들에 대해서는 아직 극복을 하지 못하였다. 나름대로 나 자신을 배웠다고 생각하고, 다루는 방법들을 배웠다고 생각한다. 근데 이 책을 읽으며 나 같은 성향을 가진 사람은 인생을 살아가는 난이도가 얼마나 높을지, 앞으로도 얼마나 더 부딪히고 깎여가야 할까 라는 생각에 한동안 매우 우울했다. 보통의 사람들의 성향과는 너무도 크게 다르다고 생각했다. 보통과 HSP 사이 간 차이가 너무나 벌어져 있다고 생각을 했다. 이런 HSP 기질이 없었다면 나의 정신이 지금보다는 덜 힘들지 않았을까라고 탓을 하였다.


누군가가 읽고 힘들어하길 바라며 쓰인 책이 아닐 텐데, 이런 감상들을 가지게 되어 안타깝다. 다행인 것은 이 책을 읽은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와 다르게 책을 통해 많은 도움을 받게 된 것 같다. 나의 마음은 어지러워졌지만, 다른 사람들의 마음은 오히려 더 괜찮아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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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통해 HSP 기질의 장점들도 다시 한번 알 수 있었다. 나도 살면서 언뜻 느꼈던 것들이다. 세상에 존재하는 부정적인 것들도 잘 흡수를 하는 만큼 긍정적인 것들도 잘 흡수를 한다. 긍정적인 이야기, 긍정적인 사람의 생각, 스스로가 가진 긍정적인 감정 같은 것들 말이다. 사소한 햇빛과 바람에도 행복할 수 있다. 이런 긍정적인 마음을 지키기까지 매우 많은 변수들이 존재하고, 인생은 통제 밖이긴 하지 말이다. 이러니 세상과 주변을 마음대로 통제하려고만 하는 욕심을 버리고, 선택할 수 있는 것들에 (함께하는 사람들, 업무 스타일) 집중을 해야 하는 것인데 이게 어려운 것이다. 내가 알고 있던 것들을 더 알게 되었다. 내가 인지하고 있던 어려움들을 더 선명하게 인지하게 되었다.


책을 읽고는 일주일 동안 우울했지만, 결국에는 괜찮아졌다. 뭘까? 오히려 기분이 더 나아졌다거나 그런 것은 아니지만 나 스스로에 대한 이해도가 축적이 된 것 같다. 우울한 이벤트에 대한 경험치를 얻고, 레벨업을 0.5단계 정도 한 기분이다. 스스로가 느끼기에 0.5단계 정도의 레벨업이라면 실제로는 5단계 정도의 레벨업을 한 셈이다. 이 레벨업은 내 인생에 어떤 작용을 하게 될까? 답은 아직 모른다.


처음부터 끌리지 않는 책에는 이유가 있다는 생각은 바뀌지 않을 것이다. 이렇든 저렇든 이 책을 읽고 나는 힘들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예상했던 것 같이 감정호소를 하는 감성적인 책은 아니었지만, 그게 아니어도 힘들었다. 이 책을 읽지 않더라도 나는 내 성향에 대한 여러 가지 들을 알고 있었고, 어쩌면 불필요한 감정소모를 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 감정소모를 지나고 나서 얻게 된 레벨업이 나에게 도움이 될 건지도 미지수이다. 언젠가 내가 성숙해질 일이었다면 굳이 이 책을 통해서가 아니었어도 되었다. 그래서 나는 앞으로도 처음부터 끌리지 않는 책은 읽지 않을 생각이다. 독서를 통해서도 아플 수 있다는 것을 배우게 되었다. 언젠가 이 책을 다시 읽게 되었을 때는 다른 감상들을 가지게 될 수도 있겠지만, 그 전이 오기 전까지는 이 책이 나에게 준 의미들을 해석하는 게 복잡할 것 같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내 머릿속에 떠오른 웃긴 생각과 함께 이 서평을 마무리해야겠다. 책을 읽으며 어쩌면 나는 HSP라서 직감이 좋으니까 나에게 도움이 될 책과 아닌 책은 첫눈에도 구별해 낼 수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 들었다. 이 책이 처음부터 끌리지 않았던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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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알고 보니 내 지인은 나에게 총 2회에 걸쳐 이 책을 추천했었다고 한다. 왜 첫 번째 추천은 흘려듣고, 두 번째 추천 때는 마음이 동하여 이 책을 읽게 된 것일까? 그날은 무언가 홀린 듯이 이 책을 샀었는데...어쩌면 이 책을 읽고 한동안 진지한 고민들 속에 사로잡히는 게 나에게 필요한 경험이었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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