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시간 속 느낀 여러 가지
지금으로부터 일주일 전인 2026년 1월 9일, 처음으로 108배 챌린지를 시작하였다. 사실 이렇게 ‘챌린지’라는 단어를 쉽게 써도 되는 걸까 싶다. 거창한 의도나 마음을 가지고 시작한 것은 아니었다. 단지 스트레스와 불안이 깊어져갔고, 점점 내가 손 쓸 도리가 없어지는 것 같았다. 이대로 간다면 조현병 증상들을 겪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몇 년 전에 동기가 “나는 가끔 조현병 증상들을 겪어”라고 하였을 때는 어떻게 그럴 수 있냐며 전혀 믿지 않았었지만, 직접 겪어보니 그것이 가능한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지속적으로 악몽을 꾸고, 잔인한 상상들에 시달렸다. 이 글이 너무 어두운 분위기를 풍기지 않기를 바라지만 108배 수행을 시작하기 전 내가 어떤 상태였는지를 자세히 적어놓는 게 비슷한 일을 겪고 있을지도 모를 누군가를 위해, 그리고 비슷한 일을 겪었던 누군가를 위해 도움이 되는 솔직한 글이 될 것 같다.
점점 정신이 피폐해져 간다는 것을 알았을 때, 정신과 약을 복용할까도 싶었지만 내키지 않았다. 약은 단기적인 효과는 있지만 장기적으로 보았을 때는 사람의 정신을 더 멍하게 만들어버리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호흡 명상을 해볼까도 싶었지만 집중을 하는 게 예전과는 다르게 너무 어렵게 느껴졌다. 그럼 도대체 어떻게 이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생각을 하던 중, 주마등 속에서 템플스테이를 통해 108배를 했던 게 떠올랐다. 조금 뜬금없기는 했지만 108번의 절 후에 느꼈던 개운함이 그리워지는 것 같기도 했다. 나에게 108배라는 것은 가끔 템플스테이에 갈 때만 하는 낯선 것이었는데, 마치 애매하게 알고 있는 친구 같았다. 절을 하는 정확한 자세도 몰랐다 (관심을 가져본 적이 없었다). 그래도 피폐함 대신에 개운함을 느끼고 싶다는 생각에 그 어색한 친구를 다시 찾았다.
별생각 없이 유튜브에 들어가 ‘108배 음원’이라는 키워드를 검색하고, 매트 위에서 절을 시작하였다. 절박한 상황에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시작한 게 전혀 아니었다. 그저 ‘아... 요새 정신이 이래서 어떡하냐? 108배라도 해보자 그냥’ 같은 마음이었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정신이 고통스러워지는 것에 익숙한 편이다. 그래서 그런지 엄청난 효과를 기대하고 한 것은 아니었는데, 오히려 나의 낮은 기대치가 108배의 좋은 효과들을 경험할 수 있도록 도와준 듯하다. 아래에 몇 가지 내가 느꼈던 점들을 적어보겠다.
러닝이나 웨이트를 하여도 땀은 나고, 노력으로 흘리는 땀은 전부 의미가 있다. 그러나 108배를 하고 나서 흘리는 땀은 정신과 육체가 함께 흘리는 땀 같았다. 이게 바로 108배의 좋은 점 같다. 정신과 육체가 하나 된다. 처음에는 힘들고, 중간중간에도 힘들지만, 어느 순간 무아지경으로 자기반성을 하고 나면 108배가 끝난다.
여러 가지의 108배 음원들이 존재하지만 전하는 내용의 방향성은 같다. 초점이 외부 환경이나 바깥 세계가 아닌 자신 스스로를 향하고 있다. 놀랍게도 108개의 참회문들 중 내 이야기가 아닌 것이 없었다. 내가 이렇게까지 잘못 살았었다고?라는 생각이 들어 어이없어서 웃었다. 또한, 인간이 저지르는 잘못들에는 패턴이 있는 것인가 싶었다. 그게 아니라면 본 적 없는 나의 잘못들에 대해 108배 참회문은 어찌 그리 잘 알고 있는 것일까? 내가 인지하고 있지 못하던 나의 모습들까지 반성하게 만든다.
솔직히 나 스스로 나의 알맹이가 바뀌었다고 하면 제법 웃기다. 나는 내가 108배 수행을 하며 엄청나게 깨닫게 되었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게 아니라, 얼룩졌던 나의 알맹이를 조금씩 씻어가게 되었다고 말하고 싶다. 알맹이가 무엇이냐고 한다면, 그건 사람마다 다르게 느낄 것 같다. 누군가에게는 그게 뇌일 수도 있고, 마음일 수도 있을 것 같다. 나에게 알맹이란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무언가 같다. 느껴지기는 하지만 그게 어디에 있는지는 모르겠다. 분명히 존재한다는 것만 알겠다. 언젠가는 이 알맹이라는 것에 대해 더 배우게 되어 설명을 할 수 있는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108배를 하면서도 가장 어렵다고 느꼈던 것은 집착과 탐욕을 버리는 것이었다 (두 번째로 어려웠던 것은 자비를 가지기. 나는 이 자비라는 게 무엇인지 아직도 모르겠다). 어디서부터가 끈기를 가지는 마음이고 어디서부터가 욕심을 부리는 마음인 건지 모르겠다. 나는 나의 꿈과 이상을 위해 포기하지 않고 달려간다고 생각하는데 어떤 시각에서 보면 나는 그저 유희왕 카드 속 욕망의 항아리일 뿐인가 싶다. 이것에 대해 인공지능 Gemini와 대화를 해보았다 (Chat GPT와는 다르게 인간스러운 EQ가 있기 때문이다). Gemini는 활이라는 것은 너무 당겨서도, 느슨하게 잡아서도 안된다는 유명한 말을 인용하며 나에게 해답보다는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었다. 이게 바로 내가 앞으로 탐구해봐야 할 화두 같다.
나 스스로 욕심을 부리는 모습이 싫어 먹는 양을 줄이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식욕도 줄어들었다. 배는 고프지만, 욕심을 부리는 것이 더 싫게 느껴진다. 예전에 다이어트를 할 때는 식욕을 억지로 참아서 내가 나 스스로의 행복을 억누르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는데 이제는 그렇지 않다. 근데 소식좌가 되고 싶은 마음은 없다. 그냥 내 위장 사이즈에 맞춰서 살면 충분할 것 같다.
일주일 밖에 되지 않기는 했지만 짧은 시간들 속에서도 예전에 내가 알지 못했던 것들을 배우게 되었다. 느낀 것들이 꽤 많아서 혼자 내 일주일을 돌아보는 비디오를 찍었더니 1시간 정도의 분량이 나왔다. 물론 수행을 계속하다 보면 내가 느꼈던 것들과는 반대되는 것들을 느낄 수도 있다. 생각과 감정은 늘 변하는 것 같고, 나도 이런 변화에 몸을 싣고 사는 것이 편한 것 같다.
아주 감사하게도 이제는 악몽에 시달리지 않고, 부정적인 상상들이 불침번처럼 찾아오는 게 잦아들었다. 물론 아직도 불안감을 안고 산다. 원래 내 성향이 이런 것인지, 나의 MBTI가 N이라서 이런 것인지, 내가 살아온 과거가 나를 이렇게 만든 것인지, 나의 생각과 마음은 가끔 재미로 균형을 잃어보는 것인지, 무엇 때문에 이런 것인지는 모른다. 그저 나는 평생 수행을 하는 수밖에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살든 저렇게 살든 끊임없이 업을 만들어가고, 번뇌를 겪겠지만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어쩔 수 없는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어쩔 수 없는 일을 받아들이는 데까지 많은 시간이 걸리고 있는 듯하다.
108배 수행이 나에게 위로가 되었던 의외의 포인트에 대해 말하며 슬슬 글을 마무리해야겠다. 108배 음원 영상들을 보면 많은 댓글들이 달려있다. 그 댓글들을 하나씩 읽어보는 게 나에게는 위안이 되었다. 다들 저마다 다른 이유로 수행을 하고 있고, 나에게는 수많은 온라인 도반들이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모르는 사람들이 만들어낸 온라인 댓글창에서의 공명이 내 마음속 솟구치는 불안을 잠재워주었다. 신기한 일이다. 마치 감기약을 먹고 눈병이 나은 것 같이 생뚱맞지만 감사하게 느껴지는 일이다. 108배 음원이 말하길, 수행으로 인해 얻는 작은 공덕에도 너무 기뻐하지 말라고 했다. 일주일의 시간을 걸쳐 경험하게 된 감사함들에 호들갑 떨지 말고, 앞으로를 향해 집중해야겠다. 부지런함을 잃지 않는다면 나도 언젠가는 다른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줄 수 있지 않을까?라는 희망을 가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