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참...재밌는 제목을 짓는 사람이고 싶다. 내 글의 모든 제목들이 담백한 건지 식상한 건지 알 수가 없다. 아무래도 재밌는 제목이라면 더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흥미를 돋울 수 있겠지? 하지만 나는 인기작가가 되기보다는 소수의 사람들과 진실되게 연결되고 싶어 글을 쓰는 것이기 때문에 나와 비슷한 사람들이라면 이런 따분한 제목에도 이끌려 나의 글을 읽어주지 않을까 싶다. 그렇게 믿으며 내가 짓는 노잼 제목들에 대해 길게 고민하지 않겠다. 솔직히 말해서 언젠가는 인기작가가 되는 망상도 하지만 그런 것에 사로잡히면 글쓰기의 즐거움을 잃을 것 같다.
2025년 11월, 처음으로 혼자서 해외로 여행을 떠났다. 원래는 여행을 좋아하는 아이가 아니었는데 어느 순간 삶에 탈출구로써 여행이 필요해질 정도로 어른이 되어버렸다. 도망칠 수 없는 일상에 지쳐있었고, 문득 나는 나의 아르바이트 비용을 나를 위해 쓴 적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아르바이트를 해서 생활비도 쓰고, 가지고 싶은 물건들도 샀었다. 하지만 나는 내가 나를 위해 제대로 쓴 돈이 있었던가?라는 질문을 어느 날 스스로에게 던지게 되었고, 마음속이 참을 수 없을 만큼 답답해졌을 때 홍콩행 티켓을 구매했다.
홍콩을 선택한 이유는 한 가지였다. 어디로 여행을 떠나면 재밌을까 싶어 유튜브에 여러 여행 브이로그들을 시청했고, 재밌게 느껴지는 나라가 홍콩밖에 없었다. 오스트리아도 재밌어 보였는데, 유럽 여행 경비까지는 없었다.
2025년 7월부터 여행 계획을 짰다. 그때가 연구소에서 인턴 생활을 막 시작한 참이었는데 힘들 때마다 여행 계획을 짜는 것으로 스트레스를 풀었던 것 같다. 원래는 내가 계획했던 여행 루트를 올리고, 정보성 글을 적어보려 했었다. 맛집들을 정리해 두는 것이 홍콩 여행을 갈 누군가에게 더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었기 때문이다. 근데 그런 글은 쓰는 내가 기빨릴 것 같아서 관두었다. 심지어 나는 첫 혼자여행이라는 객기를 사용하여 홍콩섬과 구룡반도의 땅 덩어리와 이동시간은 고려하지 않은 여행 루트를 짰었기 때문에 누군가가 나의 일정을 그대로 따라 한다면 지옥 훈련을 하는 것처럼 느낄 것 같다.
내가 나의 여행을 돌아보며 전하고 싶었던 이야기들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하나씩 꺼내보면 좋을 것 같다.
이런 사소하고도 중요한 이야기는 첫 번째로 언급해야 하는 것 같다. 처음 사이잉푼역에서 내려 호텔을 찾아갈 때 길냥이 한 마리를 보고 놀랐었다. 분명히 한국에 있는 고양이와 똑같은 고양이라는 종(Felis catus라는 species)인데 한국에서 보던 고양이들보다 훨씬 마른 것이었다. 처음에는 이 고양이가 단순히 아기 고양이여서 체구가 작고 마른가 보다 싶었는데 이후에 마주친 다른 고양이들도 마찬가지였다. 그제야 난 홍콩의 길냥이들은 홍콩 사람들처럼 체구가 작고 마르는구나 라는 걸 알게 되었다. 사료를 챙겨주는 분들이 계시는데도 참 마른 것을 보니 원래 체질이 그런 것 같았다. 홍콩의 고양이들은 미니 사이즈의 고양이 요정들 같았다.
나는 모국어가 한국어이고, 유학 경험 덕분에 영어를 할 줄 알며, 오타쿠라서 야매 일본어가 가능하다. 이런 나의 3개 국어 능력 덕분에 여행을 하면서 언어 때문에 애를 써본 적은 없었다. 홍콩을 가기 전에는 당연히 홍콩에서도 똑같을 줄 알았다. 영어가 원활하게 통할 줄 알았다. 하지만 내 예상과는 다르게 대부분의 식당들에서는 영어가 통하지 않았다 (내가 일부러 관광객이 많이 찾는 식당들을 피한 것도 있다). 혹시 몰라서 광둥어 기본 표현들을 벼락치기로 공부해 가긴 했었지만 네이티브 홍콩인들의 말을 알아듣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게다가 식당에 계신 사장님, 직원분들은 대부분 연세가 있으셨기 때문에 번역기 화면을 보시는 것을 어려워하셨다. 이 모든 것들이 어우러져 결국 바디랭귀지의 장을 만들었다. 나도 바디랭귀지를 쓰고, 상대 분들도 바디랭귀지를 썼다. 신기하게도 모든 것이 통하였고, 심지어 재밌었다. 유창하게 내가 하고 싶은 말들을 할 때보다 어렵사리 손짓과 표정으로 의사소통을 하는 게 더 즐거웠다. 이런 예상치 못한 도전을 하고, 성공을 하게 된 것이 여행이 준 선물들 중 하나였다. 아, 그런데 내가 바디랭귀지를 해야 할 줄 알고 찾아간 찻잎 가게의 사장님들은 영어가 유창하셔서 괜히 바디랭귀지를 쓸 용기를 준비한 나 스스로가 웃겼던 적도 있다.
내가 떠나기 전, 엄마가 친구들을 많이 만들어오라고 했었다. 하지만 난 평소에 매우 내향적이고, 새 친구들을 사귀는 데에 큰 관심이 없었다. 이런 나를 알고 있으면서도 엄마는 내가 떠나기 직전까지 친구들을 사귀어보라고 조언을 해주었다. 나는 그런 엄마의 조언에 처음에는 별 신경이 쓰이지 않았었지만 그 조언을 곱씹을수록 뭔가 설레어지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나는 내가 굳이 먼저 다가가진 않겠지만 누군가가 다가온다면 기꺼이 받아주겠다는 스탠스를 취하기로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나는 자기 방어가 센 것 같다. 사실은 누구보다도 여행지에서 친구들을 사귀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결론을 말하자면 두 명의 친구들을 사귀게 되었고, 그들도 여행객들이었다. 웃긴 건 한 명은 오스트리아에서 온 할아버지이고 한 명은 태국에서 온 내 또래였다. 오스트리아 친구는 내가 길 잃은 그를 도와주다가 알게 되었고, 태국 친구는 퉁청역에서 공항으로 가는 셔틀버스 안에서 만나게 되었다. 늘 생각하는 것이지만 인연이라는 건 예상치 못하는 순간에 찾아오는 것 같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시점에도 우리는 아직 연락을 하며, 친구로 지내고 있다. 먼 나라의 국적들을 가진 친구들이 생기다니 여전히 신기하다.
앞서 말했다시피 나는 아주 타이트한 여행 일정을 짰었다. 원래 계획을 짜고, 실행을 하는 걸 좋아하는 성향이기도 하다. 하지만 여행에서까지 그런 갑갑한 성향을 끌고 오게 되었던 이유는 여행에 대한 욕심이 많아서였던 것 같다. 나의 돈과 시간을 투자하는 것이니 그만큼 가치 있게 느껴지는 경험들을 하고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런 경험들은 그저 내가 짠 일정을 소화한다고 해서 찾아오는 게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급하게 사진을 찍고, 음식을 먹고, 기념품을 산다고 해서 내 마음이 채워질 수 없었다. 나는 어느 순간에 나 스스로가 애태우고 있다는 걸 몸으로 느끼게 되었다.
지하철은 왜 안 오는지 너무 답답하였고, 오늘 안에 가야 할 곳들을 다 둘러보려면 한 장소에 크게 머무르면 안 되겠다는 걸 나 스스스로에게 잔소리하듯 주입시키고 있었다. 밑 빠진 독에 물을 붓고 있는 것 같았다. 아무리 좋은 구경을 해도 내 마음에 구멍이 뚫려있으니 무엇을 더 하든 무용지물일 것 같았다.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 온 여행이었는데 여행을 오니 더 여유가 없어지는 것 같았다. 그제야 나는 조금은 컴다운을 하자 싶었다. 그저 내가 8282 문화의 한국인이라, 성격 급한 경상도 출신이라, J라는 이유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나의 마음의 들끓듯이 존재하며 나를 몰아넣는 조급함이 있다는 걸 깨달을 수 있었다. 여러 곳들을 가는 것도 좋지만, 마음에 드는 한 장소에서 유유자적하게 노래를 들으며 걷거나 앉아있는 게 어쩌면 더 크게 내 영혼을 채워줄지도 모른다는 걸 깨달았다. 그리고 실제로도 그러했다. 여행은 서바이벌 미션을 수행하러 가는 게 아니라 나 스스로를 채우러 가는 걸 언제든 명심하고 싶다.
여행을 하면 살 수 있는 것들이 많다. 특히나 홍콩 같은 나라에서는 쇼핑할 것들이 꽤 많다. 나는 원래 여행을 떠나기 전부터 아이러브 홍콩 티셔츠를 사 입고 돌아다니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그래서 몽콕 레이디스 마켓에 가서 샀었는데, 그때 계획에 없었던 시뻘건 티셔츠 한 장을 더 샀었다. 다른 여행객들에게는 인기가 없는, 로컬 스타일의 티셔츠였다 (로컬은 홍콩이라고 써진 티셔츠를 입고 돌아다니지는 않겠지만). 두 티셔츠 다 여행 내내 잘 입었고, 오히려 계획 없이 산 시뻘건 티셔츠가 나에게 더 잘 어울리는 것 같았다. 그걸 입으니 현지인으로 오해를 많이 받아서 재밌기도 했다. 다음 여행에도 꼭 비싸고 예쁜 티셔츠가 아니더라도 그 여행을 제대로 추억할 수 티셔츠를 사서 입으면 재밌을 것 같다.
과거 일본 여행에서도 신사들에 다녀와보는 게 재밌었다. 그리고 역시 홍콩에서도 절이나 신사 같은 종교적 장소들에 다녀오니 재밌었다. 만모사원, 난리안정원, 웡타이신사, 그리고 포린사를 다녀왔는데 이런 장소들에서 현지인들도 많이 볼 수 있었다. 다들 무언가를 엄청나게 열심히 빌고 있었고, 나도 기도하는 법을 배워 어설프게나마 소원들을 빌고 왔다. 홍콩 사람들이 재밌는 게... 무뚝뚝한 듯 친절한 것 같다. 내가 모든 홍콩 사람들에 대해 알 수 없겠지만 내가 본 사람들의 스타일이 비슷하였다. 말보다는 행동으로 나를 도와주었다. 내가 길을 물어보면 말없이 같이 가준다거나, 기도하는 법을 물어보면 나에게 그걸 알려줄 수 있는 제삼자를 어디선가 데려오고는 사라졌다... 고맙다는 말도 전하기 전에 사라졌다... 지하철에서는 한 홍콩 아저씨가 할머니에게 자리를 양보해 주셨는데 그 할머니가 고맙다는 말도 하기 전에 옆 칸으로 빠르게 사라지시는 것도 목격하였다. 홍콩 사람들이 샤이한가? 잘 모르겠다. 그래도 정이라는 건 한국에서만 느끼는 게 아니라 세계 어디를 가든 여러 형태로 느낄 수 있는 것이란 걸 깨달았다. 그리고 이런 현지인들의 특징들은 여행 내내 스며들 듯 느낄 수도 있는 것이겠지만 종교적 장소들에 가면 더 잘 느낄 수 있는 것 같다. 나는 언제나 종교에 대해 믿고 있는 것이 있다. 한 나라의 종교는 그 나라의 문화와 사상을 응축시켜 놓은 곳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나라 사람들의 진한 정서를 가장 잘 체험할 수 있는 곳들은 종교적 장소들이라 믿는다.
어느 나라든 저마다의 고유한 아름다움이 있고, 취향을 타겠지만 적어도 내 눈에 담긴 홍콩은 예뻤다. 내가 혼자서 하는 첫 해외여행이라 홍콩을 더 높게 평가한 걸지도 모르겠다. 처음 보는 야경들과 파란 바다가 꿈같았다. 너무 오버스러운 표현인가 싶긴 한데, 처음 모험하듯 떠났던 여행지를 바라보는 내 눈이 꿈으로 가득 찼던 것 같다. 나의 기대를 전혀 실망시키지 않은 여행지였다. 예전 홍콩영화의 분위기는 현재 전부 사라졌다며, 왜 홍콩에 여행에 가냐는 의견들을 인터넷에서 보긴 했는데 그렇게 생각을 하는 사람들은 그냥 가지 않으면 되는 것 같다. 내가 일본에 질려서 더 이상은 일본에 가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나는 익청빌딩이 웅장할 줄 알고 기대하며 갔었는데 실제로 보니 굉장히 평범한 아파트였다. 그래도 처음 보는 거라 신기하고 좋았다 (사실 익청빌딩에서 드라마 촬영 현장을 구경할 수 있었고, 방송국 스태프 아저씨가 내 사진을 찍어줘서 웃겼었다). 아무래도 시각적으로 예쁜 건 유럽이 예쁘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여행을 하는 사람의 마음이 대한 설렘으로 가득하다면 어디를 가든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여행에서 다녀오자마자 무언가를 기록했었다면 이 글보다 재밌는 글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다녀온 지 몇 개월 지난 이 시점에 추억에 젖어 쓰는 글도 나름대로 의미가 있지 않을까? 여행을 하면서 재밌는 일들을 매우 많이 겪었었는데 다 적지 못한 게 아쉽다. 나는 역시 사람들을 좋아하는 마음이 깔려있는 건지, 여행을 회상하니 이런저런 고마운 사람들이 많이 떠오른다. 친절했던 가게 사장님, 길 찾는 걸 도와주었던 할머니, 지하철을 잘못 탔다고 알려주었던 대학생, 나에게 장난을 쳤던 꼬마 아이, 합석했던 아저씨, 내가 사진을 찍어줄 수 있냐 부탁하자 어디선가 자기 딸을 데리고 왔던 아저씨, 케이블카를 함께 탔던 젠틀 할아버지, 그리고 여행에서 사귄 친구들인 조지와 포비. 여행에 다녀온 후에 인스타그램에 사진들을 올리며 같이 적었던 캡션을 아래에 두고, 추억 회상을 이만 마쳐야겠다.
“인생이 그렇게 힘들지 않았더라면 나는 여행을 떠날 생각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니 나는 내 인생에 감사하다.”
P.S.
23살의 내가 장국영의 소녀심상과 무심수면을 반복재생하며 여행했던 홍콩은 잊을 수 없을 것이다. 날씨요괴인 내가 신기하게도 비 한 번 만나지 않고 쨍쨍한 햇빛을 받으며 거리를 걸었다. 사람들이 세월이 지나도 첫사랑에 대한 애틋함을 느끼듯 사실 나는 아니다 나도 늘 홍콩에서의 첫 혼자 여행을 생각하면 애틋함을 느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