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가을, 템플스테이로 계룡 무상사에서 24시간을 보내었다. 따지자면 내가 살아온 있는 수많은 시간들 중 24시간은 별 것 아닐지도 모른다. 템플스테이를 할 무렵 나는 첫 자취 생활을 하고 있었고, 바라던 곳에서 인턴 생활도 하고 있었다. 분명 글을 쓰려고 하면 템플스테이보다 더 근사할 지도 모를 주제들이 있다. 그러나 나는 나의 소중한 공간에 템플스테이의 추억을 우선으로 기록하고 싶다.
무상사는 학교 교수님을 통해 알게 되었었다. 처음 방문 하였을 때도 정기가 아주 맑은 절이라는 생각에 꼭 다시 방문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 생각이 비로소 이루어졌던 건 꽤 시간이 지나 내가 대전에서 인턴을 하게 되었을 때였다. 알고 보니 대전에서 버스를 3번 정도만 갈아타면 계룡에 위치한 무상사까지 갈 수 있길래 나는 인턴 생활을 마무리하기 전에 꼭 무상사 템플스테이에 가보자 싶었다.
마음을 먹은 나는 바로 무상사 홈페이지에 들어가 템플스테이를 신청했었다. 작년 가을에는 템플스테이가 가능한 날짜가 3개인가 4개 정도가 있었던 것 같은데 나는 그저 삘이 꽂히는 날에 신청을 했었다. 그런데 이 ‘삘’이 불러온 결과가 대단하였었다.
나는 그저 느낌이 오는 날에 템플스테이를 신청했었을 뿐인데 알고 보니 그날이 교수님과 우리 학교 학생들이 단체로 절에 오는 날이었다! 나는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냐며 신기해했다. 그런데 호들갑을 떨던 내게 교수님은 차분한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우리의 카르마가 연결되어 있나 보다.” (교수님이 외국인이셔서 실제로 이와 똑같은 대사를 말씀하신 건 아니었지만 통역하자면 이런 말이었다.) 순간 머리가 띵하게 울리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나는 교수님의 이 한마디를 템플스테이 내내 잊을 수가 없었다. 특히 새벽 4시에 108배를 할 때, 교수님과 마주 보며 절을 하게 되었었는데 기분이 아주 묘했었다. 카르마가 연결되어 있다는 걸 뭘까? 우리는 같은 카르마로 연결되어 무엇을 풀어내고 있는 것인가?
템플스테이에서 만났던 사람들 중 반가웠던 사람은 교수님 뿐만이 아니었다. 교수님의 다른 제자들 중 한 명인 A군도 있었다. 지극히 나의 사적인 공간에서 그의 동의 없이 그를 언급해도 되나 싶지만 나중에 이 글을 직접 보여주면 될 것 같다. A군으로 말할 것 같으면... 나와 참 사이가 나빴었다. 이건 서로 인정하고 있을 것이다. 같은 교수님을 좋아하고 관심사가 겹치다 보니 같이 들었던 수업들이 많았다. 학회도 함께 갔었다. 그런데도 오랫동안 사이가 나빴고, 어떻게 이렇게 공통점들이 많은데도 서로 하나도 맞지 않을 수 있을까 싶었다. 그도 나를 싫어했겠지만, 나도 그를 정말 싫어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우리는 같이 있을 때 서로에게 너무 필터 없이 말을 했었던 것 같다. 그리고 둘 다 교수님에게는 본인이 가장 아끼는 제자이길 바랐다. 이게 정말 웃긴 점이다. 20살 훌쩍 넘은 성인들이 왜 교수님을 두고 유치한 애정 싸움을 했나? 학회에 가서 발표를 하는 교수님 사진을 더 잘 찍기 위해 기싸움도 했었다. 쓰고 보니 정말 웃기네. 대학생들이 뭐 한 거지? 어이없는 이유들로 서로 사이가 나빴다가, 내가 휴학을 하며 안 만나다 보니 서로 무관심해졌었다. 그러다 무상사에서 다시 만나니 갑자기 친근한 사이가 되었다. 정말 웃기다... 우리가 더 이상 앙숙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던 건 산행 때였다. 그에게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노르웨이의 숲』에 대해 물어볼 것이 있어서 먼저 질문을 했었는데, 한참 동안 책에 대해 이야기하며 산을 올랐다. 기묘한 힐링이었다.
앞서 말한 산행에 대해서 더 이야기를 해보자면, 죽을 만큼 힘들었다. 지옥에서 온 산행 같았다. 평소 등산을 좋아해서 동네에 있는 산에 가끔 올라갔음에도 너무나 힘들었다. 몇 번이고 포기하고 싶었고, 내 다리가 더 이상 내 다리가 아니라는 감각이 들 때까지 계속 올랐다. 이 산행을 하던 것이 마치 수행처럼 느껴졌었고, 수행이라 생각한 덕분에 끝까지 올라갈 수 있었던 것 같다. 정상에 가서는 교수님과 셀카를 찍었다.
신비한 일은 하산을 하던 도중에 떠올랐었다. 자세하게 쓸 수는 없지만, 하산을 하던 스님과 어떤 프로 등산객으로 보이는 아저씨 무리를 마주쳤다. 그리고 그 무리 중 한 아저씨가 20년도 더 된 과거의 스님을 기억하고 계셨었다. 스님은 아저씨를 모르고, 아저씨만 스님을 알고 계신 상황이었다. 스님은 아무래도 아저씨께서 대구에 있던 자신을 알고 있는 것 같다고 하셨었다. 나에게는 이 스침이 매우 묘했었다. 내가 알지 못하는 누군가가 오래전 과거의 나를 기억한다라... 그리고 그 사람을 우연히 산에서 마주친다라... 인연이라는 것을 무엇일까? 정말 오랜 세월 돌고 돌아 다시 스치게 되는 인연이 있을까? 있다면, 어째서?
인연이라는 것에 대한 많은 물음들이 생기는 템플스테이었다. 또 하나 더 이야기하고 싶은 건 나와 함께 방을 쓴 템플스테이 도반분들에 대해서이다. 두 분은 친구 관계이시며 알고 보니 부산에서 오신 분들이었다. 부산은 나의 외가댁이 있어 아주 친근한 도시라 반가웠다. 여기서 끝이 아니라 내가 그때 당시 가지고 있던 진로나 미래에 대한 조언들을 줄 수 있는 분들이셨다. 나는 내가 궁금해하던 것들에 대한 정보들을 인터넷에서 찾고 있었는데 우연히 절에서 만난 분들을 통해 진귀한 정보들을 얻을 수 있었다. 특정 나라로 대학원 유학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는데 한 분은 그것에 대한 본인의 경험을 나누어주셨고, 한 분은 본인이 배필을 만났던 방법을 공유해 주셨다. 이밖에도 재밌는 이야기들을 많이 해주셨다. 헤어질 때는 연락처를 공유하였는데, 언젠가 다시 만나게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생각해 보니 신비한 분이 한 명 더 계셨다. 호주에서 온 J 아저씨. 사실 그는 할아버지와 아저씨의 중간이었다. 이상하게 수많은 사람들 속에서 그분이 유독 내 눈에 들어왔었다. 푸른 새벽에 뒷짐을 지고 걸어가던 뒷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아, 오해는 하지 않기를 바란다. 나는 오지콤은 없다. ‘이상하게 눈길을 끄는 분이네...’라고 생각했었는데 어쩌다 운력 시간에 함께 설거지를 하게 되었었다. 거기서 몇 마디를 나누었었는데, 그가 매우 친근하게 느껴졌었다. 근데 절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원래 친근한 느낌이 들기 때문에 그냥 J 아저씨도 절에서 만난 사람이니 그런가 보다 싶었었다. 그러고는 다음날에 무상사에서 하는 일요 젠카페에 참가했었다가 그를 다시 만나게 되었었다.
알고 보니 그는 나와 설거지를 하며 나눴던 대화에서 충격을 받았었고, 나에게 꼭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었다고 했다. 설거지를 하며 내가 말했던 것은 ‘4시간 밖에 자지 못했다. 근데 나는 원래 이렇게 산다’라고 말했을 뿐이었다. 그런데 내 말을 들은 그는 내가 그렇게 짧은 시간을 자고도 활기차게 이야기하고 돌아다니는 데에는 비밀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고 한다. 그는 나에게 나의 슈퍼파워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달라고 했다. 눈빛이 진심이어서 장난이 아닌 것 같았다. 나는 그냥 원래 그렇게 잠이 부족하게 살뿐, 슈퍼파워가 있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내가 그렇게 말하자 그는 진심으로 내 수면 생활에 대해 걱정을 해주었다... 고마웠다...
근데 이 아저씨가 기억에 남는 이유는 다른 이유에서다. 그는 젠카페 도중 흘리듯이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약한 마음을 가진 사람은 그것을 문제로 보고, 균형 잡힌 마음을 가진 사람은 그것을 도전으로 보고, 강한 마음을 가진 사람은 그것을 기회로 본다.’ 그가 영어로 했던 말을 한국어로 적어보았다. 이 말에 출처는 일본의 스님이라고 한다. 그가 이 말을 했던 자세한 맥락은 기억이 안 나는데 이 말만 아주 선명하게 기억에 남는다. 이 말이 템플스테이 이후에도 종종 생각이 났으며, 아직도 되새기고 있다. 그는 세계를 돌아다니는 수행자로, 교수님과도 몇 년 전에 무상사에서 만난 적이 있다고 한다. 아마 나도 계속 무상사에 다니다 보면 언젠가는 그와 또 마주칠 수도 있지 않을까? 이 아저씨가 무언가 특별하게 느껴져 헤어질 때 내가 먼저 악수를 청했었다. 그 악수가 굉장히 좋았던 기억이 난다. 난 이 악수를 마지막으로 무상사를 떠났다.
무상사를 떠나서는 계룡역으로 갔다. 배가 고파 거기서 팥빵을 사 먹으며 생각했다. ‘절은 인연을 만나는 곳이구나’라고. 나의 24시간을 돌이켜보니 묘한 기분들로 뒤덮였었다. 가끔 살다 보면 이런 신비하고 묘한 기분들을 느끼게 되는 것 같다. 그리고 대부분은 그런 기분들은 사람들을 통해 온다. 나는 그럴 때마다 마음속 어딘가가 설렘에 물들며 인간으로 태어나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한다. 앞으로도 내가 방문할 많은 절들이 나와 내 인연들을 연결해 주길 바란다.
P.S.
나는 신비한 목사님을 만났던 적도 있다. 그는 정말 맑고 신성한 분이셨다. 그분께 도움을 받았던 적이 있는데, 그 도움을 받고 나서 나도 그처럼 누군가를 도와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리고 길 위에서 그런 생각이 끝나자마자 갑자기 어디선가 두 명의 대학생들이 나타나 나에게 도움을 청해왔었다. 나는 신기해서 소름이 끼치는 기분으로 그들을 도왔다. 소름은 무서울 때만 돋는 게 아니라, 신기할 때도 돋을 수 있다는 걸 그때 깨달았었다. 종교를 불문하고 신성한 기운을 가진 사람은 자신의 영향력을 끼치며 살아가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