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전공이 전공을 이기고 있다. 내 전공은 브런치 소개글에도 나와있듯 심리학과이고, 부전공은 Writing and Rhetoric Studies (이하 라이팅과)라고 불리는 다소 한국에서는 생소한 학과이다. 직역하자면 ‘글쓰기와 수사학’ 정도가 되는 것 같은데 한국의 국어국문학과나 문예창작과 와는 다르다. 이유를 생각해 봤는데 한국에서 ‘글쓰기’라고 하면 뭔가 예술적인 이미지가 동반되는 것 같다. 글을 쓰는 사람이라고 하면 문학소년이나 문학소녀 같은 느낌도 든다. 괜히 가을에 낙엽을 밟으면서 생각에 잠길 것만 같은 이미지다. 반면에 미국에서는 (적어도 내가 느끼기에는) ‘글쓰기’라고 했을 때 비판, 평론, 마케팅 등이 떠오른다. 딱히 예술적인 이미지가 동반되지는 않는 것 같다. 사실, 이게 어떤 학과인지 설명하기가 부전공을 하고 있는 나에게도 애매하다. 굉장히 광범위한 학문인 것 같다. 그래서인지 실제로 부전공 강의들에서는 “What is writing and rhetoric?”라는 질문에 대해 토론을 하는 게 흔하며, 학생들마다 다른 대답들을 내놓는다.
이 부전공을 공부하게 된 계기가 재밌다. 처음부터 부전공을 가질 계획은 없었고, 이런 학과는 더더욱 생각에 없었다. 어릴 때부터 글을 쓰는 걸 좋아하기는 했지만 그뿐이었다. 솔직히 재능이 없다고 생각해서 글쓰기를 내 진로에 집어넣을 생각이 없었다. 글쓰기 대회에 참가를 하면 그게 교내 대회든 교외 대회든 꼭 장려상을 탔었다. 운이 좋을 때는 우수상을 탔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교외 대회에서 장려상을 탈 정도면 교내에서는 당연히 최우수상이나 우수상을 타는 게 자연스럽지 않나 싶다. 사춘기 때도 일기 쓰는 건 좋아했었는데 아름답게 쓴다기보다는 사춘기의 어둡고 폭력적인 심연을 아주 솔직하게 드러내는 데 흥미가 있었다. 내 마음을 휘갈기는 데에 부끄러움이 딱히 없었다. 고등학교는 캐나다에서 다녔었는데 졸업 전 들었던 English 과목에서 80점대를 받고, 짜증 나는 기분으로 졸업을 했었다. 『위대한 개츠비』를 읽고 분석하는 에세이 과제에서 헛소리들을 썼기 때문이다... 이러한 과거들 때문에 대학에 와서도 라이팅 강의들이 있다는 걸 알았을 때 별 생각이 없었다. 그저 해치우자는 마음뿐이었다. 그런데 신입생 때 필수교양으로 들어야 했던 라이팅 강의 하나가 내 인생에 큰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한 교수님을 *덕질하다가 부전공을 시작하게 되었다. 브런치에 저번에 올린 무상사 템플스테이 후기글이 있는데 거기에도 어떤 교수님이 등장한다. 참고로 내가 신입생 때 덕질을 했던 교수님과 그 템플스테이글 속 교수님은 다른 분들이다. 같은 학과에 소속된 다른 분들이다. 처음에 어떤 라이팅과 교수님을 덕질하다가 이후에 라이팅과의 다른 교수님을 만나게 되어 그 교수님도 덕질하게 되었다고 보면 되겠다.
*덕질: 연예인, 아이돌, 애니메이션, 게임 등 특정 분야를 열정적으로 좋아하고 팬 활동을 하는 것을 의미
교수님을 덕질하니까 동기들이 돌아이냐고 했었는데... 글쎄? 『유리알 유희』의 요제프 크네히트도 명인을 덕질했었다.
다시 이야기를 이어가자면, 나는 신입생 때 우연히 들었던 강의에서 어떤 교수님을 만나게 되었다. 강의를 듣기 전에도 이미 그분에 대한 정보를 알고 있었다. 그 교수님은 어렵게 강의를 하고 점수를 엄격하게 주시기로 에브리타임(대학생들이 쓰는 어플)에서 유명한 분이셨다. 당시 신입생이었던 나는 강의를 듣기도 전에 매우 설렜었다. 얼마나 엄격할까? 두근댔었다... 그런데 강의에서 뵙게 된 교수님은 전혀 무섭지 않으셨었다. 오히려 시커먼 분위기를 가졌지만 마음은 따뜻하신 전형적인 츤데레형 교수님인 것 같아서 좋았었다. 나는 이 교수님의 강의들이 매우 재밌었고, 교수님이 세운 엄격한 채점기준들에 들어맞는 글들을 쓰기 위해 열정을 쏟았었다. 교수님의 오피스 아워에도 자주 찾아가서 조언을 받고, 내 전공 수업보다 열심히 들었었다. 그렇게 한 학기를 즐겁게 보냈었고, 좋은 점수를 받고 수강을 할 수 있었다.
여기서부터 시작이다. 나를 좋게 보셨는지 이후에 교수님이 나를 교내 라이팅 관련 일자리에 추천을 하셨고, 그렇게 그 일을 시작하며 또 다른 라이팅과 교수님(템플스테이 글에 등장하신 분)을 만나게 되었다. 나는 우연처럼 두 교수님들을 덕질하게 되었다. 두 분의 강의들이 열리면 모두 다 수강신청을 해서 들었었다. 그러다 보니 아주 자연스럽게 부전공 이수에 필요한 학점들을 채우게 되었다. 심지어 교내에서 라이팅 관련 일을 하고, 교수님들 오피스들에 자주 드나들다 보니 다른 라이팅 교수님들과도 알게 되어 그분들 수업들도 하나씩 도장 깨기를 했다.
정신 차리고 보니 이미 부전공이 생겨있었다. 어디까지 솔직하게 말해도 될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내 전공 공부는 좋아도 교수님들은 그냥 그랬다. 저스트 저스트. 나도 그분들의 심금을 울리지 못했겠지만, 그분들도 딱히 내 심금을 울리지 못하셨다. 귀찮게 매달리며 무언가라도 더 가르쳐달라고 찡찡대게 되는 매력이 전공 교수님들에게는 없었던 것 같다. 적당히 좋은 사이를 유지하기는 했다.
언젠가는 임상심리사가 되고 싶기는 했지만 그 목표를 이루고 나면 내 인생에 무엇이 남을까 고민을 했었다. 이런 류의 고민을 할 때면 부전공 공부가 내 인생의 의미를 찾아주는 듯했다. 내가 즐길 수 있는 게 내 인생에 남아있다는 사실이 안도감을 주었었다. 사실 20대는 무협지 나이로보면 갓난아기이고, 굳이 무협지 나이로 보지 않더라도 어리고 창창한 나이인데 내가 왜 그렇게 진지하게 우울했는지 모르겠다. 대부분의 인턴 경험들은 심리학과 관련된 스펙을 쌓아야 할 것 같아서 한 일들이 많았다. 그렇게 한 일들이 소중한 성취들이 되어 돌아오기는 했지만 대가가 컸다. 체력과 정신이 같이 갈려있었다. 반면에 장학금, 학회, 리서치 경험들은 부전공을 순수히 즐기다가 얻게 된 일들이었다.
왜 전공에서는 아득바득 노력해야지 작은 것 하나라도 얻어지고, 부전공에서는 즐기기만 해도 큰 성취가 이루어질까?라는 질문이 찾아온 적이 있었다. 왜 나에게 심리학을 가르쳐줄 스승은 나타나지 않을까?라는 질문도 가지게 된 적이 있었다. 엄마는 나에게 그 정도면 내가 그냥 전공보다는 부전공이 더 잘 맞는 것 아니냐고 하셨었지만 내 생각은 좀 다르다. 인생에서는 채찍과 당근의 균형이 중요한 법인데 내 공부에 있어서 전공이 채찍이고 부전공이 당근인 것 아닐까 싶었다. 심리학이 내 적성에 안 맞는다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다. 물론 대학원 가게 된다면 심리학에서 더 뻗어나간 연구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있긴 하지만 말이다.
현재는 휴학 중인데 최근에도 부전공 관련 일을 하였다. 일을 잠시 해달라고 해서 그렇게 했다. 조금씩 무기력이 찾아오고 있던 나에게 온 좋은 제안이었다. 나는 그 일을 하며 내가 순수하게 즐기면서 했던 것들이 어느새 쌓여 내 인생을 지탱해 주는 좋은 기둥들이 되었구나 싶었다. 그리고 우연한 계기로 브런치에서 내 글들을 올리고 있으니 글을 쓰는 행위와 내 인생이 많이 연결되어 있구나 싶기는 하다.
어느새 내 마음속에서 부전공은 전공을 이기고 있다. 그러나 작가가 되거나, 글을 쓰는 직업을 가지는 게 인생의 우선적인 목표는 아니다. 글을 쓰는 건 내가 순수하게 열정을 쏟을 수 있는 일로 지켜가고 싶다. 어쩌면 복학을 하여 부전공을 복수전공으로 바꾸게 될지도 모르고, 내가 미래에 무엇을 하며 살고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지금은 이렇다. 웃긴 일은 그렇다고 해서 임상심리사나 심리학자가 되는 게 인생의 목표인 것도 아니다. 원래는 그랬는데, 지금은 아니다. 어쩌면 부전공이 전공을 이긴다는 게 내 현실적인 목표들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내 인생 자체의 의미를 바꾸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졸업하면 무엇을 할 거냐, 취업을 할 거냐, 대학원은 어디로 갈 거냐, 미래에 뭐 먹고살 것이냐라는 질문들을 아주 여러 사람들에게서 받는다. 가족들에게도 받고, 지인들에게도 받고, 친구들에게도 받고, 심지어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도 받는다. 예전에는 그럴싸한 직업명을 대며 그런 질문들에서 빠져나와 생각 있게 사는 20대인 척을 했다. 아니, 그때도 생각은 있었다. 근데 생각만 있었다. 딱히 마음이 없었다. 고등학생 때는 꼭 임상심리사가 되고 싶었는데 커가면서 내 미래에 대한 여러 가능성들을 그리게 되었다. 지금은 특정 직업보다는 어떤 인간이 되고 싶은지에 집중하며 살고 있다. 되고 싶은 인간상을 천천히 그려가다 보면 직업도 생기지 않을까. 이제는 위에 적은 질문들을 받으면 아직 꿈을 찾아가는 중이라고 대답한다. 그러면 왜 젊은 사람이 아무것도 정하지 않고 막 살아가냐는 말을 듣는다. 예전에는 그런 말들에 흔들렸었는데 이제는 그런 말들이 내 인생의 자유를 얻기 위해 감수하는 대가라고 생각한다.
나만의 속도로 살아가고 싶다면 치러야 할 게 많다는 걸 배우게 되었다. 이런 이야기가 부전공이 전공을 이겼다는 주제와는 조금 벗어나는 듯 하지만 사실 전공보다 더 좋아하는 게 생겼다는 것 자체가 나를 찾은 기분이다. 진정으로 열정을 느낄 수 있는 것을 찾은 것이 인생의 재미와 깊이를 더해주었다. 그리고 실제로 부전공에 빠져들면서 겪었던 많은 일들이 나를 인간적으로 많이 성장시켜 주었다. 브런치에서 글을 쓰게 된 것도 평소에 부전공으로 인해 글을 쓰는 데에 익숙하고, 나 스스로가 글을 쓰는 걸 좋아한다는 걸 알게 되었으니 가능했던 일이라는 생각도 든다. 어찌 됐든 감사한 것이다.
쓰다 보니 꽤 길게 적게 되었다. 나는 왜 이런 이야기를 글로 쓰고 있을까? 별 의도는 없었고, 풀어보면 재밌을 것 같아 적어보았다. 브런치에서 연재를 하는 작가님들을 보니 대부분 나보다 훨씬 연령대가 높다는 걸 알게 되었다. 누군가는 내 글을 보며 본인의 학창 시절이나 청년 시절을 떠올릴 것도 같다. 나도 다른 분들의 글들을 읽으며 내 미래를 상상해 보곤 하니까. 글이라는 건 이래서 재밌는 것 같다. 내가 읽고 쓰는 글들이 나나 다른 사람에게 어떤 영향들을 불러오게 될지 전혀 미지수이다. 그래서 설렌다.
P.S.
이번 글에는 최근에 현상, 스캔한 필름카메라 사진들을 실어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