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소중한 친구를 만났다. 함께 있으면 영혼이 충전되는 느낌을 주는 소수의 사람들 중 한 사람이다. 친구와 만났던 날의 날씨를 비유해 보자면 마치 겨울이 떠나가기 싫다며 미련을 부리는 것 같은 날씨였다.
우리는 함께 여의도 한강공원에 가서 손이 얼어붙을 때까지 한참 야외에서 대화를 나누었다. 그날 집에 돌아오는 길에는 행복해서 눈물이 났다. 극에 달한 긴장감을 안고 살다가 오랜만에 마음을 편히 놓을 수 있었던 시간을 가져서 그랬던 것 같다.
그날의 감사함을 오랫동안 추억하고자 꼭 글로 남겨두고 싶었다. 그래서 친구에게 동의를 구했고, 흔쾌히 동의를 해준 덕분에 이렇게 그날 나누었던 대화들 중 일부를 올려본다.
이건 재밌었던 대화인 것 같아서 기록하고 싶다. 우리 둘 다 스무 살 초반에는 연애에 대한 무수한 로망들이 있었지만 이제는 그 로망들 중 대부분이 사라졌다. 그래도 아직 가지고 있는 로망이 있느냐 묻는다면, 나는 남자친구와 유럽 여행을 떠나는 것이고, 친구는 남자친구와 동남아 여행을 떠나는 것이다. 나는 언젠가 진지한 연애상대가 생긴다면 함께 오스트리아에 가고 싶다. 이 로망이 언젠가는 이루어지길 바라고, 나는 친구도 본인의 남자친구와 함께 동남아에 가서 그녀가 그토록 좋아하는 동남아 음식들을 배 터질 때까지 먹길 바란다.
각자 최근에 상처받았던 일들에 대해서 털어놓게 되었다. 그런데 친구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우리에게 상처를 남긴 사람들을 욕하기보다는 어느새 그들을 이해하고 있었다. 심지어 행복까지 빌어주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나 스스로와 친구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떠올라서 입 밖으로 내뱉어 보았다. “자신에게 상처를 준 사람들의 행복을 진심으로 빌어줄 수 있는 사람은 분명 그 사람들보다 더 잘 살 거다!” 친구가 이 말을 듣고는 웃으며 좋아했다. 나도 좋았다.
몇 년 전에 겪었던 내 공황장애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그때도 친구가 큰 힘이 되어주었었는데, 공황장애가 사라지고 난 지금도 여전히 내게 힘이 되어주고 있는 친구에게 고마웠다. 친구는 나에게 누구나 ‘마음의 감기’를 겪는 것 같다고 말을 해주었다. 공황장애가 감기라면 독감 정도는 되겠지만, 나는 이 감기라는 표현이 좋았다.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고, 누구나 그것에서부터 완쾌될 수 있다.
우리는 다소 거절을 어려워하고, 남들을 맞춰주는 편이다. 그래서 손해를 볼 때도 조금은 있고, 종종 스트레스를 받기도 한다. 그래도 나는 이런 공격력 제로 모드로 살아가는 게 좋다. 이렇게 살고 있으니 비슷한 사람을 만날 수 있었고, 서로 이해하며 응원해 줄 수 있다. 일부의 사람들에게 약간 데기는 했어도 여전히 인간의 순수성을 믿고, 다가오는 새로운 사람들에게 마음 열며 살아가는 나와 내 친구의 태도가 좋다.
대화라는 건 관계의 좋은 지표가 되어주는 것 같다. 대화가 잘 통해야 잘 통하는 사이라고 생각한다. 무거운 이야기든 가벼운 이야기든 나눌 수 있는 사이가 편한 것 같다. 내가 이 이야기를 하니 친구도 공감을 하였다. 덧붙여 친구는 보면 볼수록 좋은 사람이 있고, 그렇지 않은 반대의 경우가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예전에 친구가 나보고 나는 보면 볼수록 좋은 사람인 것 같다는 이야기를 술을 마시며 했던 적이 있다. 몇 년 전에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똑같은 기준으로 사람을 보는 친구가 조금은 신기했고, 한결같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조금은 (사실 많이) 감동을 받았다. 나는 잘 맞는 사이란 어떤 사이인지를 친구와의 관계를 통해 늘 배워나가고 있다.
이렇게 대화의 일부를 적어보았다. 너무 짧은가?
걷다가 했던 이야기도 있고, 앉아서 했던 이야기도 있다. 함께 한강라면을 먹었었는데 그 라면이 연료가 되어주었던 것인지 몇 시간을 쉬지 않고 이야기를 했다. 잠시 침묵이 도는 순간들도 있었지만 언제나 하나의 침묵이 우리를 또 다른 대화주제로 실어주었었다.
친구가 최근에 해외 봉사활동을 마치고 돌아와 이에 대한 재밌는 경험담을 들을 수 있었고, 또 더 넓은 세계를 간접경험한 기분이 들었었다. 이런 친구로 인하여 나 또한 재밌는 인생 이야기들을 부지런히 모아서 나누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의 시간들을 생각하면 설레어지는 것은 우정의 힘 아닐까? 10년 뒤에는 어떤 이야기들을 나누고 있을지 궁금하다. 좋은 인연을 가꾸어나갈 수 있도록 열심히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친구는 앞으로도 더 따뜻하고 다정한 사람이 될 테니 나도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 가능하겠지!
P.S.
가볍게 MBTI 이야기를 해보겠다. 나는 INFJ이고 친구는 INFP인데 그래서 그런가 굉장히 잘 맞는다. 나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합이라는 것이 존재한다고 늘 믿고 있으며, 이건 노력의 영역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사람들을 겪으면 겪을수록 그런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