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텔 맥북의 끝, M 맥북의 시작.
애플의 3번째 이벤트인 "One More Thing"이 11월 11일 새벽 3시에 진행됐다. 많은 이들이 예측한 애플의 맥 전용 자체 칩셋 도입과 더불어 MacOS 11 발표 등 최근 애플이 내놓은 어떠한 맥 관련 소식보다 흥미로운 한 해가 되지 않았나 생각한다.
이번 이벤트의 간단한 요지를 3줄로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1. M1칩셋의 발표
2. M1칩셋을 탑재한 3종의 맥 제품 (맥북프로 13인치, 맥북에어, 그리고 맥 미니)
3. MacOS 11을 통한 앞으로의 로드맵
여태까지 전 세계에서 대중들의 가장 많은 이목을 끌었던 제품은 아이폰이었고, 지난 10년 동안 아이폰이 애플의 주요 제품군이 되면서 기존 맥 라인업에 대한 발전이 더뎌진 것도 사실이다. 스티브 잡스가 처음 아이폰을 설계할 때 맥만큼 가능성이 있는 스마트폰을 설계하고자 만든 것이 아이폰이었다면, 어느 순간 아이폰이 애플의 발전을 주도하고 아이폰에서 이루어진 발전이 맥에 도입되는 것은 격세지감이 아닐 수 없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끝은 창대하리라
아이폰 4부터 처음 도입된 애플의 A 시리즈 칩셋은 10년이라는 시간을 지나 A14까지 발전했다. 아이폰 4부터 시작된 애플의 CPU 설계는 아이폰 6부터 GPU 세미커스텀으로 발전했고, 아이폰 X과 함께 CPU와 GPU를 모두 자체 설계하는 기업으로 도약했다.
이러한 A 시리즈 칩셋의 발전은 그저 더 큰 아이폰으로써 치부되었던 아이패드를 노트북과 대적할 수 있는 수준까지 끌어올렸고, 애플이 만드는 모든 하드웨어 제품들은 단계적으로 애플의 자체 AP를 탑재하게 되었다. 모든 제품을 하나의 이코시스템에서, 한 회사가 독자적으로, 모바일부터 컴퓨터까지 같은 설계로 통합한다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닐뿐더러 이를 상업적으로 성공한 전례도 없다.
이로써 이번에 애플이 발표한 M 라인업 칩셋은 애플이 처음에 구상했던 거대한 청사진의 마침표이자, 새로운 시작을 의미한다. 불가능할 것 같았던 맥 라인업의 두 번째 CPU 아키텍처 변경은 아이폰부터 아이패드, 애플 워치, 애플티비, 그리고 애플의 전 라인업을 지나서 맥까지 모두 다 통합을 이루었다는 의미다.
현 Windows 그리고 세상의 거의 모든 PC가 사용하고 있는 CPU 명령어 셋은 X86이라고 불리는 아키텍처다. 해당 분야에 관심이 있거나, 최소한 관련 기사를 자주 접하는 사람이라면 "ARM", "X86", "X64"와 같은 키워드를 많이 들었을 것이라고 짐작된다.
명령어 셋(Instruction set)을 최대한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CPU가 특정 작업을 처리할 때 사용하는 기계어의 종류를 의미한다. 사람으로 치면 한국어, 영어, 중국어, 일본어와 같이 특정 언어마다 문법이 존재하고, 특정 물체나 작업을 의미하는 단어가 따로따로 존재하는 것처럼, 기계가 사용하는 기계어 또한 "0101010110101"을 사용한다고 해서 모두 다 호환되는 건 아니라는 의미다.
인텔의 8086 프로세서에서 널리 퍼진 "X86" 명령어 셋은 그 역사만 해도 40년이 넘으며, 컴퓨터 대중화에도 개국공신 취급을 받을 정도로 역사가 깊다. 16비트부터 시작된 PC가 64비트가 된 오늘날까지 유지 및 확장되면서 역사가 역사니만큼 단점도 명확하고, 장점도 명확하다.
이번에 애플이 전성비(소모 전력 대비 성능)가 중요한 맥북 라인업과 맥 미니 라인업에서만 M1을 탑재하고, 맥 프로와 같은 하이엔드 제품에선 인텔 칩셋을 그대로 유지한 이유는 바로 이것 때문이다. ARM은 여태까지 임베디드 시스템에서만 주로 사용되었고, 전기 소모가 높지 않은 모바일이나 태블릿으로 점차 범위를 늘려왔다. - 그것마저도 전성비라는 장점이 사라져서 Big.Little구조와 같은 변화를 강행했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전력 소비보다 성능이 더 중요한 시스템 환경에서는 X86의 성능을 따라잡지 못하고 있으며, 서버와 같은 대형 컴퓨터에서도 ARM 기반 프로세서를 사용하는 일은 매우 드물다. 이 시점에서 맥북이 최근 지적받고 있는 내용을 유심히 살펴볼 필요성이 있다.
애플은 2016년에 맥북 프로의 대대적인 리프래쉬를 강행하면서 과감히 USB-C 도입과 함께 다른 기타 포트를 전부 다 드랍하는 결정을 내렸다. 이는 당시 인텔이 추진하고 있던 Ultra-Thin 노트북 정책의 미래를 걸고 베팅한 결과라고 할 수 있는데; 2020년에 이 글을 보고 있는 당신은 당시 인텔의 계획이 어떤 식으로 흘러갔는지 짐작이 될 것이다.
인텔은 결과적으로 이후에 개발한 칩셋마다 발열 관리에 실패했고, 성능 개선의 폭도 더뎠다. 아마 이 시점에 애플의 맥북 프로 라인업이 갖은 쓰로틀링과 퀄리티 이슈를 온몸으로 체감한 시기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한 관계자는 당시 애플이 리포팅한 버그의 개수가 인텔이 내부적으로 발견한 것보다 많다는 말까지 했으니, 믿거나 말거나이지만 상황이 그 정도로 심각했음은 어느 정도 지레짐작할 수 있다.
지금까지도 애플의 맥북프로 13인치형과 맥북에어는 발열과 저조한 성능으로 비난을 받고 있으며, 맥 미니는 위에 컵을 올려놓고 쓰다 보면 따뜻한 물이 된다는 속설까지 생기는 마당에, 애플이 인텔 CPU를 포기하고 전환하는 건 할까 말까의 문제가 아닌 시간의 문제였다고 평가한다.
특히 앞서 언급한 애플의 통합된 이코시스템에서 여태까지 맥 라인업에서만 유독 멀리 떨어진 이유는 인텔의 칩셋이 유일한 이유였으니, 아이러니하게도 애플의 현대적 아이폰과 아이패드를 만들어준 맥북이 회사의 아픈 손가락이 되는 처지였던 것이다.
이를 타파하기 위해서 애플은 '보안'을 명목 잡아 애플에 T2칩을 맥에 넣어뒀으나, 애매모호한 기능 구현을 싫어하는 회사 성격을 고려할 때 "넣었으니 장땡"으로 생각하기보단, 완전히 해결할 방법을 강구했을 가능성이 높다. 거기다가 일관성이라면 강박증세를 보일 정도로 신경 쓰는 기업이 자사 라인업의 근간이 되는 맥 라인업이 혼자 동떨어지는 건 - 그것도 자사의 문제가 아닌 인텔 칩셋의 한계로 인하여 - 그냥 보고 있을 리 만무하다.
그리고 맥을 이용하는 유저라면 현재 필자가 평하는 바가 무엇인지 체감되는 바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아이폰에서 아이패드, 애플티비, 에어팟을 연결할 때와 맥북에 연결할 때의 체감되는 편의성은 차원이 다르다. 예를 들어 아이폰과 아이패드 간의 Airdrop는 실패하는 경우를 거의 못 보는 반면, 맥북과 아이폰에서 Airdrop은 심심할 때마다 한 번씩 실패하는 경우가 많다.
스마트폰이 초창기에 스펙 싸움에서 편의성으로 넘어간 것처럼, 기술의 발전은 과시로 시작하여 세밀함으로 끝난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필자는 애플이 단 한 번도 기술의 도입을 게을리하거나 늦게 하는 기업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애플은 비교적 완벽을 추구하는 기업이다. 비록 기술이라는 것이 완벽할 수 없기에 기업 또한 완벽할 수 없겠지만, 상업적으로 성공한 스마트폰 제조사 중에 기술 탑재를 가장 신중히 검토하고 탑재하는 기업임은 틀림이 없다. 신중을 기하는 기업임에도 불구하고, 본인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거나, 본인들의 목적과 부합하는 기술은 어느 누구보다도 빠르게 탑재하는 경우도 많다.
TouchID와 FaceID가 그 대표적인 예시인데, 아이폰 5S때부터 탑재된 TouchID는 에어리어 방식의 지문인식 센서를 스마트폰에 거의 처음으로 탑재한 제품이기도 하며, 현대 스마트폰의 바이오 인증 절차를 처음으로 도입한 제품으로 손에 꼽힌다.
FaceID 또한 스마트폰이 베젤레스로 넘어가는 트렌드에서 지문인식을 후면으로 넘기지 않고 3D 얼굴인식을 도입한 거의 유일한 스마트폰일 것이다. 이는 곧 노치 트렌드를 불러일으켰고, 수많은 안드로이드 제조사들이 맹목적으로 카피하게 되는 대참사가 일어나기도 한다. - 그래도 업계 1위인 삼성은 노치를 안 따라 했다는 점에서 1등은 뭐가 달라도 다름을 보여주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
비록 애플은 특정 기술의 도입을 늦게하는 기업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의 뇌리에 남고, 대중들이 기억하는 유일한 기업이다. 일부는 이렇게 말한다 "애플은 종교와 같은 팬덤을 가지고 있기에 그렇다", "그들은 폐쇄적이라 늦게 신기능을 제공해도 좋아한다" 등등. 사실 크게 틀린 말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그렇다고 맞는 말도 아니다.
애플이 이번에 120Hz 디스플레이를 넣지 않은 것은 배터리 소모가 심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배터리 문제가 없는 아이패드에서는 태블릿 시장의 어떠한 기업보다 120Hz 디스플레이를 빠르게 탑재했음을 고려한다면 더더욱 신빙성이 있는 주장이다.
2011년부터 추가된 애플의 AirDrop은 2020년인 안드로이드 10에 도달해서야 Nearby Share라는 별도의 기능으로써 제공되기 시작했고, 2011년에 추가된 아이메시지는 Google Hangout을 비롯한 여러 가지 시도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제대로 된 안드로이드 전용 통합 서비스가 없다.
하지만 여기서 봐야 할 점은 타사가 애플을 늦게 베끼거나 못 베꼈다는 점이 아닌, 결국 비슷한 기능이 타사에도 언젠가엔 생겼다는 점에 있다. 애플 기기를 사용하는 유저들은 가장 큰 장점을 늘 '이코시스템'으로 꼽는다. 그것이 애플의 가장 큰 장점이자, 애플의 비싼 가격표를 정당화하는 가장 큰 이유기 때문이다.
Microsoft와 삼성은 지난 2년 동안 서로 간의 파트너십을 통하여 Windows PC와 Android 스마트폰 간의 연동성 개선에 힘써왔다. 2011년부터 준비한 애플의 맥과 아이폰 간의 연동성만은 영 못하지만, 가장 중요한 점은 이제 연동성이 더 이상 애플만의 고유 기능이 아니게 되었다는 것이다.
애플에게 있어선 꽤나 심각한 내용인데, 특히 안드로이드가 전세계 스마트폰 시장 점유율 70%와 Windows가 PC 시장 점유율 70%대라는 전제조건이 있기 때문이다. 그들의 이코시스템이 절대적으로 애플보다 나아질 순 없겠지만, 비슷한 기능을 비슷한 이름으로 비슷한 수준에 제공한다는 건 애플만의 장점이 사라진다는 의미기도 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애플이 맥과 자사 모바일 기기들을 다시 한번 이코시스템으로 통합하고자 한다면, 가장 먼저 해야 되는 것은 맥의 발전이다. 그리고 맥이 다시 한번 이코시스템에서 아이폰과 아이패드와 동급으로 원활하게 소통할 수 있어야 다른 제조사들이 따라올 수 없는 장점을 다시 한번 제공할 수 있다.
지난 2017년, MS는 Windows 10의 미래 비전을 제시했다. 이름바 UWP(Universal Windows Platform)라고 불리는 이 플랫폼은 MS가 일궈놓은 Windows 10, Windows 10 Mobile, Xbox One, 그리고 Microsoft Hololens의 앱을 합체한다는 거대한 계획을 안고 출발했다.
MS의 프로젝트는 실패로 끝나는 느낌이지만, 여기서 다시 한번 교훈을 얻을 수 있다. IT기업은 트렌드에 민감해야 되고, (Next big thing) 웨이브를 놓쳐선 안된다. 모바일 플랫폼의 패권을 잡지 못한 MS는 당시 "아이폰은 너무 비싸고, 물리적인 키보드도 없어서 이메일을 쓰기도 어렵다"라고 평했고, 잘못된 판단으로 인하여 차후 프로젝트에 크나 큰 차질이 생기고 있다.
최초의 아이폰이 처음으로 세상에 공개되었을 때 구글의 안드로이드 개발팀은 드로잉 보드로 돌아가 프로젝트를 리셋했다. 하드웨어 키보드를 사용하던 안드로이드 OS를 아예 터치로 바꾸는 데까진 1년에 가까운 시간이 걸렸지만, 10년이 지난 지금의 결과는 모바일 OS 시장 점유율 70%의 독점이고, 구글 검색 엔진의 독주다.
모바일 패권을 빼앗긴 MS는 자사 인터넷 브라우저인 IE의 점유율이 추락하는 것을 눈뜨고 볼 수밖에 없었고, 2020년엔 Microsoft Edge를 구글의 크로미윰으로 바꾸는 치욕스러운 선택을 하게 된다. 참고로 삼성은 자사 모바일 기기에 기본으로 탑재하는 삼성 브라우저 만으로도 현재 브라우저 시장 점유율 3.44%로 IE와 Edge를 합친 것에 맞먹는다.
현재 MS가 전개하고 있는 B2C(비즈니스-to-커스터머) 서비스들을 전부 다 살펴보자면, 대부분 모바일 패권을 잡지 못해서 성공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나마 MS는 B2B로 수익을 상당수 내는 기업이었기에 타격이 덜했지만, 이러한 대체안이 없는 기업들은 소리 소문 없이 도태되어 사라졌다. 블랙베리를 기억하는가? 노키아는? 소니에릭슨은? HTC는? 모토롤라는?
MS는 아마 2017년 당시에 UWP를 통하여 Windows 10 앱 생태계가 활발해지면 자동적으로 Windows 10 Mobile도 활발해질 거라고 행복한 상상의 날개를 펼쳤을 것이다. 그렇기에 Windows 10을 무료로 업그레이드해주는 사상 초유의 전략을 짠 것이고, MS로써는 보이지 않을 법한 행보를 보인 것이다.
그들의 가장 큰 실수와 애플이 이번에 하지 않았던 실수는 결정적으로 받쳐주는 플랫폼의 차이다. MS는 Windows 10 PC 플랫폼의 앱을 Windows 10 모바일로 옮기려고 시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Windows 10 UWP는 역사가 길지 않다는 점과, UWP 앱은 제약이 많다는 점을 간과했다.
iOS에서 앱을 만들었다면 배포할 수 있는 방법은 오로지 앱스토어 한 곳이다. 다만 Windows 10은 사정이 좀 다르다. 이미 Windows 7, 8, 8.1, 그리고 10까지 전부 다 사용할 수 있는 기존의 Win32 방식의 프로그램을 만들어도 사용자들의 불만이 없고 - 어떤 유저가 망해가는 Windows 10 Mobile 앱 호환을 안 해준다고 화내겠는가 - 오히려 UWP로 만들면 MS 스토어에 올려야 된다는 제약과, Windows 10 Mobile과 Windows 10에서만 작동되는 건 장점이 아니라 단점이다. 직설적으로 말하자면 Windows 8 혹은 그 이하를 지원하기 위해서 앱을 다시 만들어야 된다는 소리 아닌가?
반대로 애플은 iPad 앱을 MacOS으로 옮기는 선택을 내렸다. 여전히 걱정이 안 되는 것은 아니지만, 최소한 MS가 저질렀던 실수만큼 치명적인 문제가 생길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이미 아이패드는 수십만 명이 사용하고 애용하는 플랫폼이고, 맥 생태계에 준하는 앱과 유저가 존재한다.
여기서 애플의 강점은 맥에도 이미 기존 유저층이 있고, 아이패드에서도 기존 유저층이 있다는 점이다. M1을 탑재한 맥은 기본적으로 모든 아이패드 앱을 네이티브로 돌릴 수 있다. 위에서 언급한 X86과 ARM 아키텍처가 기억나는가? 애플이 모든 플랫폼에서 같은 칩셋 아키텍처를 사용한다는 것은, 아키텍처가 같은 시스템은 앱도 호환된다는 의미다.
개발자들은 아이패드 앱만 만들어놓고 인터페이스 단위만 맥과 아이패드를 분리해놓으면, 그리고 의지만 된다면 iOS용 인터페이스까지만 구현한다면, 애플의 iOS, iPadOS, MacOS를 전부 앱 한 개로 지원할 수 있는 애플만의 독자적이면서도 가장 거대한 플랫폼이 완성된다.
애플이 그리는 자신들의 청사진은 바로 이런 것이라고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청사진을 여태까지 계획으로써만 지켜봤다면, 이번 애플 이벤트 "One More Thing"은 공사의 첫 삽을 뜨는 과정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현실로 비유하자면 누가 서울 한복판에 1000층짜리 마천루를 짓겠다고 10년 동안 지반공사를 하다가, 어제 막 첫 번째 층을 올리기 시작한 느낌으로 생각하면 될 것이다. 기대되지 않겠는가?
여태까지 X86칩셋을 사용해서 아이패드 앱을 네이티브로 못 돌렸고, 이제 ARM 기반으로 넘어가면서 아이패드 앱을 네이티브로 돌린다는 의미를 반대로 생각해보자. 이는 즉슨 기존 맥에 만들어졌던 앱들은 ARM 기반 신형 맥에선 네이티브로 작동이 안 된다는 의미다.
"네이티브"라고 한다면, 이 역시 앞서 언급한 인간의 언어와 비유를 하는 것이 가장 이해하기 편하지 않을까 싶다. 만약 필자가 한국인으로서 한국어를 제1 언어로 사용하고, 제2 언어로 영어를 배웠다면, 나는 영어 문장을 읽고 이해할 수 있지만 한국어만큼 효율이 나오지 않을 것이다. 이 경우는 반대도 마찬가지다.
만약 X86을 따르는 인텔 맥이 한국어를 사용하는 사람이고, ARM 기반 M1칩셋이 영어를 사용하는 사람이라고 가정해보자. iOS, iPadOS앱은 영어로 작성되어 있고, 기존 MacOS 앱들은 한국어로 작성되어 있다. 둘 다 각자의 언어를 제2 언어로써 배웠고 쓰고 이해할 수 있다. 한국어를 사용하는 X86은 한국어로 작성된 MacOS를 네이티브로 읽을 수 있지만, 영어로 작성된 iPadOS와 iOS 앱을 읽는 데는 시간이 좀 더 많이 걸린다. 반대로, 영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M1은 영어로 작성된 iOS, iPadOS앱을 읽는데 문제는 없으나, 한국어로 작성된 기존 MacOS 앱들은 읽는데 시간이 좀 더 걸린다.
여기서 애플이 해야되는 것은 기존에 한국어로 작성된 MacOS앱을 신형 M1 맥이 읽을 수 있도록 영어로 번역해줘야 한다. 여기엔 여러 가지 방법이 있는데, 가장 대표적인 것은 애플이 개발사들에게 "니들이 만든 앱을 영어로 바꿔줘"라고 부탁하는 것이다. 그리고 개발사가 자신들의 앱을 업데이트하기 전까진 M1이 속도는 좀 느리더라도 한국어 앱을 읽을 수밖에 없다.
애플이 자사의 M 칩셋으로 맥을 전환할 때 가장 중요한 것 또한 이 전환 과정이 얼마나 매끄럽냐에 달려있다. 이미 Windows on ARM이 대차게 실패한 마당에 아무리 남들과 다른 애플이라고 무조건 성공하리란 보장은 없다. - AirPower, 3Dtouch 여기다 잠들다... -
그리고 어찌어찌 호환성 문제는 아이패드 앱들이 넘쳐나니까 사정이 좀 다르다고 쳐도, UWP의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는 호환성도 호환성이지만 인터페이스가 정말 구렸다. 제조사가 원했던 PC용 인터페이스, Mobile용 인터페이스, AR용 인터페이스를 각각 구현하기는커녕, 개발사들이 내놓은 결과물은 이도저도 아닌 어중간한 사용하기 거지 같은 앱들이 많았다.
안 그래도 인터페이스 일관성에 병적인 집착이 있는 애플인데, 카탈리스트 앱이나 iPadOS 앱들이 그대로 MacOS에 포팅 오버돼서 UI가 이도저도 아니게 되는 것은 원치 않을 것이다. 맥은 맥다워야 한다면서 아직까지 터치스크린도 안 넣은 분들이기에 더더욱 인터페이스의 최적화가 중요하게 됐다. - 모바일 UI를 마우스로 조작하게 시키면 Windows 8이라는 훌륭한 표본이 있다 -
결론적으로 M1은 맥의 방향성은 물론, 애플의 향후 수십 년을 결정짓는 프로젝트다. 어떠한 방식으로 애플이 이를 전개하느냐에 따라서 그 어떠한 기업이 달성하지 못했던, 그리고 불가능에 가까워 보였던 목표를 달성하게 될지; 아니면 최종적으로 애플 이름에 오점을 남기는 희대의 실수가 될지는 시간만이 말해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