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의 새로운 급 나누기 전략
2020년을 책임지는 새로운 아이폰이 출시되었다. 그 어느 때와는 다르게 올해에는 무려 4가지의 아이폰 12가 출시되었는데, SE를 비롯한 애플이 최근에 소개한 라인업까지 포함한다면 최근의 애플은 뭔가 많이 달라졌음을 직감할 수 있다.
애플은 아이폰 5S까지만 하더라도 1년에 단 1개의 모델을 고집했고, 팀 쿡 체재가 본격적으로 도입된 아이폰 6부터 아이폰 8까지는 총 2가지의 모델을 출시했다. 그리고, 아이폰 8 및 아이폰 X이 출시된 시점부터는 2개의 제품을 단순 사이즈만으로 차이를 두는 것이 아닌, 외관적인 차이 및 스펙적인 차이가 더더욱 노골적으로 변했다.
물론 그 이전에도 7 및 7 플러스와 같이 카메라로 고의적인 급 나누기를 하는 경우가 있긴 했지만, 최소한 여전히 애플이 이러한 두 제품을 바라보는 시점은 동일했다. 특정 제품을 더 높은 급에 분류하고, 차별화를 하진 않았다는 거다.
그런 의미에서 아이폰 XS, XR은 애플이 최초로 내놓은 2가지의 서로 다른 급의 스마트폰일 것이다. 아이폰 XS를 기본 베이스로 두되, "100만원 이상을 스마트폰에 소비할 마음이 없는 소비자를 위해서 내놓은 열화판"이 아이폰 XR을 설명할 수 있는 가장 적합한 문장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애플의 이러한 포지셔닝으로 인하여 상당한 문제가 발생했다. 이미 위에서 언급했지만, 애플은 삼성처럼 일 년에 많은 제품을 출시하는 기업이 아니다. 많아야 1년에 2개의 제품을 출시했고, 내놓은 모든 제품이 스마트폰의 가장 높은 등급인 하이엔드를 표방하는 기업이다.
만약 기존 아이폰 시리즈와 마찬가지로 기본형인 아이폰 XS를 100만원 수준에 책정하고, 하위 호환인 XR을 80만원에 책정했다면 애플의 이러한 급 나누기가 먹혔을지 모르겠지만; 애플은 오히려 X의 가격을 유지하면서 143만원에 달하는 가격표를 아이폰 XS에 책정하고, 염가형 제품에 기존 아이폰이 가지고 있던 100만원짜리 가격표를 달아줬다.
당연히 사람들은 여태까지 존재하지 않던 염가형 아이폰과 기본형 아이폰에서 고민을 할 수밖에 없었고, 비록 애플이 의미하는 염가형이 여전히 100만원에 달하는 하이엔드 제품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목은 143만원짜리 아이폰 XS에 집중될 수밖에 없었다. 그게 여태까지 사람들이 아이폰 하면 생각했던 이미지를 충족하는 제품이었으니까.
애플도 이러한 실수를 인정하고 라인업을 다잡는 데까지는 크게 오래 걸리지 않았다. 물론 여전히 노골적인 급 나누기는 존재했지만, 아이폰 11 및 11 프로와 같은 네이밍을 새롭게 공개하면서 다시 한번 XR의 후속작인 아이폰 11이 기본형임을 강조하는 방향성을 택했다.
여기에 대해서는 아직까지도 사람들마다 의견이 엇갈린다. 네이밍만큼은 R과 같은 이상한 염가형 모델을 의미하는 알파벳이 들어가지 않았으나, XR과 달라진 게 거의 없는 하드웨어 및 여전히 존재하는 프로와의 외관 차이는 노골적이었기 때문이다.
애플의 아이폰은 언제나 최고여야 한다
그 최고의 의미가 하드웨어를 중심적으로 다루는 삼성이 생각하는 최고와는 많이 다르다. 카메라 100배 줌, 120Hz 디스플레이와 같은 소위 말하는 "너드" 들만 좋아할법한 기능을 넣어서 최고인 제품을 원하는 게 아닌, 대중들이 아이폰을 구매하면서 기대하는 것은 내가 스마트폰에서도 가장 좋은 제품, 가장 좋은 브랜드를 사용한다는 것이다.
결국 XS, XR이 출시된 시점으로부터 2년이 지난 아이폰 12는 애플이 앞서 저지른 모든 실수를 만회하고, 처음부터 했었어야 하는 아이폰으로써의 포지셔닝을 성공적으로 내놓은 제품이다. 12와 12프로의 급 나누기는 최소한으로 유지함에도 불구하고, 프로를 구매하고자 하는 고객들이 요구하는 프리미엄은 적절하게 가미한 아이폰이 아닐까 싶다.
아이폰 12와 12프로의 하드웨어적인 차이는 거의 없다. 디스플레이도 동일하게 OLED를 탑재하고, 베젤도, 사이즈도, 폼팩터 디자인도 동일하다. 가장 큰 차이는 네이밍 벨류에서, 그리고 이를 뒷받침하는 머티리얼(재질)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알루미늄 마감과 스테인리스 마감을 가장 큰 외관적인 차이로 꼽을 수 있겠다.
애플이 했었어야 하는, 혹은 최소한 소비자들이 희망했던 급 나누기는 (자신들이 말하는) 최고에서 더더욱 힘을 과시한 제품이지, XS와 XR마냥 힘을 절제한 염가형 모델이 아니다. 그리고 이를 뒷받침하는 치밀한 가격 정책과 눈에 보이지 않는 너드들이 신경 쓸법한 스펙을 챙기는 게 가장 중요하다.
이건 필자가 최근 인스타그램에 올린 아이폰 12 라인업의 주요 차이점을 정리한 이미지다. 다른 부분은 전부다 자처하더라도, 128GB 및 256GB 아이폰 모델을 볼 때 아이폰 12와 12 프로의 가격 차이는 20만원의 적정거리를 유지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는 지극히 소비자의 심리를 파악한 가격 정책이자, 사업적으로 훌륭한 급 나누기의 표본이라고 생각한다. 소비자로서 하여금 "20만원만 더 내면 더 아름다운 제품을 살 수 있는데.."라는 생각을 자아내게 하는 가격 정책이라는 것이다. 일반 모델에서 64GB 모델이 있음에도 프로에는 없고, 512GB 프로 모델이 있음에도 일반에선 없는 것도 동일한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일반 모델에서는 청소년층들이 선호할법한 활발하고, 밝은 색감의 색상이 많지만 고급진 색상은 찾아볼 수 없다. 그와 반대로 프로 모델에서는 고급진 마감과 4가지의 색상 옵션만 존재하며, 일반 모델에서 있던 분위기는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이 역시 애플의 치밀하게 계산된 움직임이라고 평가한다.
애플은 하드웨어 기업이 아니다.
그렇기에 더더욱 하드웨어 스펙으로 급을 나누는 건 주의가 필요하다. 삼성처럼 심심할 때마다 폰을 출시하는 기업이 아니기에 모든 제품이 프리미엄을 표방하고, 그 프리미엄에서 급 나누기를 한다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다.
2개의 하이엔드 프리미엄 제품을 내놓겠다면, 둘 다 좋아야 하며, 하나가 더 좋다는 느낌으로 제품의 포지션을 정해야 한다는 것이지, "이게 제일 좋고, 저건 이것저것 약간씩 부족해요!"라는 식의 전략은 별로 좋은 전략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최소한 애플이 여태까지 추구했던 방향성에는 맞지 않는다.
요약하자면, 아이폰 8 그리고 아이폰 X으로부터 시작된 애플의 엇박자가, 장장 3년에 걸쳐 아이폰 12와 12 프로에 도달해서야 해결됐다고 생각한다. 물론 아직까지 모든 결과가 나온 것은 아니고, 여러 가지의 악재가 겹쳐있는 상황에서 최종적인 2021년 상반기 판매량을 봐야 애플이 이번에 선택한 전략이 정답인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이상이다.
아이폰 12 프로 모델을 주문했으며, 배송을 대기중인 상황입니다. 11월쯤에 아이폰 12 프로 모델 리뷰도 진행할 예정이며, 지속적으로 애플을 비롯한 IT 관련 글을 작성중에 있으니 관심이 있으시다면 "작가 구독하기"를 고려해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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