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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티나무 Feb 15. 2022

아빠, 해머로 물고기를 어떻게 잡아요?

내가 '시골 감성'을 갖게 된 이유

아빠는 어렸을 때부터 나에게 호연지기(浩然之氣)를 강조하였어요.


"아들아, 호연지기가 무엇인지 아니?"


"아뇨, 처음 듣는데요?"


"호연지기(浩然之氣)란 하늘과 땅 사이에 거릴 것이 없는 꽉 차있는 용기와 기운을 가리킨다. 모름 기지 사람은 호연지기를 위해 노력해야 해"


한창 한자말이 어렵고, 사자성어가 어려운 초등학교 저학년부터 아빠는 그토록 '호연지기의 삶'을 강조를 하였어요. 


아빠는 역술이나 점성, 그리고 운명론에 대해서는 믿지 않았는데, 자연이 주는 기운 같은 것들은 믿었던 것 같아요. 항상 대자연 앞에서 겸손해야 하며, 자연이 주는 삶에 만족하고 그 안에서 우주의 질서 안에서 살아야 한다고 강조했어요. 





아빠는 대자연 안에서의 '인간으로서 호연지기의 삶'을 몸소 실천하고 보여주었어요.


어느 날 아빠는 할아버지 댁인 금산에 도착하자마자 나에게 근처 냇가를 갈 테니 나설 채비를 하라고 하였어요. 

뭐 그때 당시 나는 크게 챙길 게 없었죠. 통상적으로 아빠가 냇가에서 물고기를 잡으면, 나의 역할은 잡은 물고기를 양파망에 넣고 고기가 싱싱하게 살아 있도록 잘 보관하는 역할을 담당했어요. 그래서 할머니 장화나 모자만 챙기면 됐었습니다. 


냇가에 나갈 채비를 마쳤는데, 희한한 물체가 눈에 들어왔어요. 



"아빠, 물고기 잡는데 왜 망치를 가져가세요"


"아, 이건 망치가 아니라 해머라고 부른단다. 아빠가 조금 있다가 사용하는 방법을 알려줄 테니까 잘 보렴"



나는 내 키 절반 이상 올라오는 크고 무거운 '해머'를 왜 굳이 냇가에 가져가는지 도무지 이해가 가질 않았어요. 


근처 냇가에 도착한 우리 부자는 갖고 온 짐을 들고 냇가로 향하였고, 아빠도 가져온 해머를 냇가로 가져갔어요. 아빠는 깊지 않은 냇가 쪽으로 '풍덩풍덩' 들어가더니, 마치 독수리가 하늘에서 땅에 있는 먹잇감을 내려다보듯, 이리저리 물고기를 물색하기 시작했어요. 그러고는 가져왔던 해머로 큰 돌멩이를 있는 힘껏 내려치는 거예요. 나는 두 눈이 휘둥그레 질 수밖에 없었어요. 그런 진귀한 장면은 살면서 처음 봤어요. 




"돌이 튈 수 있으니 아들은 저만치 뒤로 가 있으렴"



아빠는 그 와중에서도 나의 안전을 위해 신경 써 주었어요. 해머로 큰 돌덩이를 내려찍자 신기하게도 물고기들이 흰 배를 위로 보이며, 수면 위로 줄줄이 떠 오르는 게 아니겠어요? 속으로 정말 신박하다고 생각했어요. 


일부 물고기는 바로 죽은 경우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물고기는 해머의 충격으로 인해 잠시 기절한 경우가 대부분이었어요. 아랫배 부분을 하늘 위로 향하며 잠시 기절해 있는 물고기를 손으로 건지며, 굉장히 흥미로우면서도 신기해할 찰나 아빠는 설명을 이어나갔어요. 


냇가에 사는 민물고기 (Source: Dreamsite.com)


"아들아, 인간도 자연의 일부란다. 호연지기를 알기 위해서는 인간도 자연의 일부임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같이 상생하는 법을 꼭 알아야 한단다."


"네, 잘 알겠어요, 아빠. 그런데 왜 굳이 투망이나 족대를 놔두고 오늘은 해머를 가져오셨어요? 힘들잖아요."


"옛날 원시시대에는 물고기 잡는 도구가 발달하지 않았겠지? 그때는 아무래도 이런 식으로 돌을 던져 충격을 주거나 무게가 무거운 물체를 물고기가 숨을 만한 자리에 던져서 물고기를 잡았을 거다. 그 방법을 아들에게 한번 보여주고 싶어서 오늘 특별히 해머를 가져와봤어."



사람이 지나가면 바위틈으로 숨는 민물고기 (출처: Flickr via U.S. Fish and Wildlife Service Pacific Southwest Region)


아빠는 해머로 잡으면 물고기가 덜 잡히는 것을 알면서도, 그리고 해머를 휘두르면서 부상의 위험과 곱절의 힘이 많이 들어가는 것을 알면서도 아들에게 자연스러운 물고기 잡는 법을 알려주기 위해 해머를 손수 가져왔던 거예요. 


나는 어린 나이었지만, 아빠의 노력과 정성에 적지 않게 감동했어요. 그렇게 잡은 물고기는 그야말로 원시인들처럼 먹기 시작했는데, 우선 아빠가 주위에 널브러져 있는 갈대와 땔감을 구해온 뒤 장작 불을 피웠고, 곧이어 물고기를 흐르는 물에 세척했어요. 


냄비나 취사도구 하나 없이 소금 하나만 가지고 있었어요. 굵은 갈대 가지를 꺾어 물고기를 꼬치 끼듯이 엮어서 모닥불에 굽기 시작했고, 소금간만 조금 해서 먹기 시작했어요.


취사기구, 조리기구 일절 없이 소금만 가지고 먹은 민물고기 요리는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출처: dreamsite.com)


"우와, 아빠 생각보다 굉장히 맛있어요. 담백한 맛이 나네요."


"그럼 아들. 이게 인간도 자연의 일부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란다. 아무것도 안 하고 아빠가 소금간만 살짝 했는데 얼마나 맛있니. 맛이 비리기를 하니 건강에 유해하길 하니. 오히려 우리가 지금 먹는 인공식품이나 화학조미료가 우리 건강에 더 안 좋단다."




처음 먹어본 물고기 바비큐(?)는 꽤나 까다로웠던 사춘기 남학생 입맛에도 잘 맞았어요.


나는 이런 식으로 아빠가 그토록 강조했던 '호연지기의 삶'이 무엇인지 조금씩 깨닫고 배워나가기 시작했어요. 그 이후 냇가에서 개구리도 손수 잡아 구워 먹고, 근처 도랑에서 잡은 가재, 다슬기, 우렁 등 자연이 주는 선물을 만끽했습니다. 무엇보다 도시생활에서는 전혀 누릴 수 없는 경험을 아빠 덕분에 하게 되었고, 나는 크면서 '도시의 감성'과 '시골의 감성' 두 감성을 충분히 느끼며 자랄 수 있었어요. 



두 아들을 키워보니 아빠가 나에게 경험하게 해 줬던 것들을 나도 아들들에게 똑같이 경험하게 해 줄 수 없다는 것을 더 절실히 느끼는 요즘입니다. 아빠도 나와 똑같이 직장 생활하며 주말이나 틈 날 때마다 시간을 내어 아들들과의 소중한 추억을 만든 것인데, 그마저도 나에게는 굉장히 벅차고 힘이 드네요. 



그래도 한 가지 내 가슴 한구석에 굳건하게 자리 잡고 있는 것은, 아빠가 그토록 강조했던 '호연지기의 삶'을 내 아들들에게도 똑같이 얘기해 줄 것이고, 그렇게 살기 위해 나부터 모범을 보여야 한다는 사실이에요. 



아빠가 나에게 선물로 주었던 경험과 모든 추억을 똑같이 아들들에게 줄 수는 없지만, 나도 내 나름의 현대사회를 살아가면서 얻은 '어른으로서의 지혜'와 단지 조금 먼저 세상에 나와서 경험을 먼저 해본 한 '남자 선배'로서의 삶을 차근차근 공유해 줄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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