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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티나무 Jan 19. 2022

아빠, 저에게 제발 이런 질문 좀 하지 마세요

선문답의 달인, 아빠의 질문이 부담스럽게 느껴질 때

"너의 삶의 화두는 무엇이니?"


아빠는 내 모든 삶의 과정을 적극 참여해 주었어요. 아빠도 본업이 있었고 직장생활 및 사업을 영위하다 보니 내 모든 것들을 세세히 신경 쓸 수는 없었지만, 다른 아빠들에 비해서는 내 삶의 관심과 흥미, 그리고 '나'라는 사람 자체에 흥미를 많이 느끼고, 또한 그것을 적극 표현 해 주었어요.


부자지간 자주 대화를 하는 편인데도 불구하고, 아빠는 늘 나에게 이런 식으로 대화의 길문을 열었어요.


"아들, 요새 삶의 화두는 무엇이니?"


"화두요? 글쎄요...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대학 가는 것?"


큰 사고나 말썽 없이, 평범하게 학교생활을 하는 10대 청소년에게는 너무 가혹한 질문이었어요. 내 입장에서는 무척이나 답변하기 곤란했죠.


학교, 집, 학원 그리고 기껏 해봤자 가끔 친구들과 PC방이나 오락실에 가던 게 전부였던 나에게 화두란 '대학입시' 이외에 별게 없었어요. 그런데도 아빠는 항상 '삶의 화두'에 대해서 물어보았어요.


'공부'라고 답을 하면 아빠는 추가 질문을 했어요.


"혹시, 공부 이외에 혹시 또 다른 삶의 화두가 있니? 네가 재밌어하는 것 내지는 좋아하는 것들 등"


"글쎄요.."


아빠는 늘 이런 식으로 대화를 시작했어요.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아빠는 늘 '아들에게 관심을 갖고 있다'를 표현하는 질문이었기도 하고, 워낙 감정과 목표가 변화무쌍한 질풍노도의 시기이기 때문에 그 변화를 감지하기 위한 아빠만의 노력이기도 했던 것 같아요.


출처: https://moralstories26.com/heart-touching-father-son-conversation/


가끔 중, 고등학교 친구들이 집에 놀러 오면 아빠는 똑같은 질문들을 친구들에게 던졌고, 난생처음 이런 종류의 질문을 받아본 친구들의 당황스러운 표정은 아직도 잊히지가 않네요.


'삶의 화두'


내가 현재 어느 곳에 에너지를 집중하고 있는지. 무엇이 나를 즐겁게 하는지. 삶의 원동력이자 나를 지탱해 주는 힘이 무엇인지.


이제 성인이 되고 아이를 키우는 아빠가 되어 보니, 왜 아빠는 그토록 집요하리만큼 10대 사춘기 소년인 나에게 '나의 삶의 화두'를 물어보았는지 조금은 이해가 되어요.





"아빠, 다리에 쥐가 나는데요?"


아빠는 유독 삼남매 중에 나를 앞에 앉혀놓고 대화하는 것을 좋아했어요. 그도 그럴 것이 내가 그중, 나이가 제일 많아 이해도가 빠를 수밖에 없었고, 성격 자체도 진중하고 침착한 면이 있어서 앉은자리에서 1시간이 넘도록 경청할 수 있는 힘이 있었어요.


아빠는 꽤 자주 나를 거실로 불러 아빠 다리로 앉게 한 다음, 여러 주제의 이야기를 해 주었어요. 철학, 문화, 성교육, 역사, 전래동화, 삶의 지혜와 관련된 이야기 등 많은 주제를 통해 아빠는 살아있는 이야기보따리가 되었어요. 언제는 다리에 쥐가 날 정도로 오래 앉아서 대화를 했던 적이 있어요. 아빠에게 다리에 쥐가 난다며, 검지 손가락에 침을 발라 입술과 코끝을 번갈아가며 찍어 본 경험이 있네요.


아빠와의 대화는 꽤 재미있었어요. 아빠는 아주 유능한 만담꾼 같았어요. 대화를 할 때, 어디에 강조를 해야 하는지, 이 부분을 어떻게 얘기해야 전체 내용이 생동감 있을지 등 정확히 짚어가며 대화를 이끌어갔어요. 나도 모르게 20,30분은 거저 시간이 흘러갔죠.


아마 사춘기 청소년을 앉혀두고 대화를 재밌게 이어나갈 기성세대가 그리 많지는 않을 거예요.


한 번은 이런 얘기도 해주었어요.


"아들아, 이 모든 우주 만상은 너를 위해 움직인단다. 고로 네가 우주의 중심이다. 네가 생각하고 말하고, 에너지를 집중시키는 모든 행위 하나하나가 곧 우주다"


".....?.."


10대 어린 학생에게 위와 같은 철학적인 말을 한다면 과연 반응은 어떨까요? 아마 나와 같이 멍하니 있을 거예요. 나도 처음에 아빠 철학 이야기를 들을 때는 도무지 이해가 전혀 가질 않았거든요.



"주년아,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라는 말을 들어봤니?"


"아뇨, 처음 듣는데요?"


"네 몸을 먼저 수양하고 갈고닦고, 가정을 돌볼 줄 알아야 나중에 대사를 치르고, 큰 대의를 이룰 수 있다는 뜻이란다."


아빠는 이어서 보충설명을 추가했어요.


"사람들 생각에는 돈이 엄청 많거나, 권력이 높거나, 학식이 높으면 행복할 것이라 생각하는데, 실상은 그렇지 않을 수 있단다. 부자들도 불행한 사람들이 굉장히 많아. 그럼 행복한 사람은 누구일까?"


아빠의 질문에는 도무지 답변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질문들이 많았어요. 정답지가 많기도 하고, 없을 것 같기도 해서요.


"글쎄요, 그럼 누가 행복한 사람인가요?"


"바로, 나와 내 주변 사람이 행복한 사람이 가장 행복한 사람이란다. 아빠는 내 장례식장에 나를 위해 진정으로 슬퍼해주는 사람 단 5명만 있어도 너무 행복해 할 것 같단다."


아빠는 항상 행복의 근원이 나 자신과 나를 둘러싸고 있는 관계에 있다고 강조했어요. 따라서, 내가 행복하려면 가족이 행복해야 하고, 그 행복을 통해 모든 긍정적 에너지가 발산이 된다라고 말했어요.


"아무리 사회적으로 뛰어나고 명성이 높은 사람도, 집에 들어가서 인정을 못 받는다면, 그 사람 인생을 과연 성공했다고 볼 수 있겠니?"



아빠는 이어서 말을 이어나갔어요.


"사람들이 많이 착각하는 게, 부모 자식과의 관계를 높고 낮은 관계로 보거나 일방적 사랑과 헌신을 강요하는 관계라고 보는 사람들이 많단다. 하지만 아빠는 조금 다르게 생각해. 부모 자식은 피로 엮인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기도 하고, 앞으로 같이 살아가야 할 세월이 많은 가장 친한 친구이자 동반자 관계가 될 수 있단다."


나는 사실 이해가 가질 않았어요. 대부분 주위 친구들 아빠들을 보면, 무뚝뚝하거나 자식과는 크게 대화를 섞지 않는 아빠들이 많았고, 아빠는 그저 묵묵히 자기 본업을 하며 가장 역할을 해내면 좋은 아빠로 인식이 되는 시대였어요. 그래서, 부모 자식이 가장 친한 친구사이가 될 수 있다는 말에 사실 납득하기 조금 어려웠어요.


"아빠는 앞으로도 아낌없는 사랑을 줄 것이다. 너와 아빠가 동시에 물이 빠졌는데, 한 사람만 살아야 한다면, 아빠는 죽고 너를 살려낼 거야. 그만큼 너는 나에게 소중한 존재란다."


초등학생부터 고등학생까지 줄곧 들어왔던 말이었어요. 처음에는 굉장히 부담스러운 예시였는데, 나중에는 자식 사랑을 굳이 예시로 표현하자면 이 정도로 극적인 표현으로 나올 수 있겠구나 하고 느꼈습니다.






10대 청소년기 내내, 아빠의 선문답은 줄곧 이어졌습니다.


아빠가 그때그때 묻는 질문에는 이렇다 할 정답은 없었지만 나에게 그 질문을 통하여 나를 돌아보게 만들고, 삶에 대한 열정과 애착을 기를 수 있는 질문들이었어요. 학부형이 된 내가 지금에 와서 그때 당시를 생각해 본다면, 자칫 굉장히 딱딱하고 지루할 수 있는 분위기를 아빠는 어떻게 그렇게 흥미로우면서 재치 있게 나와의 대화를 이어갔나 싶어요. 나도 두 아들에게 한창 내면적으로 성장할 시기에, 아빠와 같이 부드러운 분위기에서 '삶의 화두'를 물어볼 수 있을지, 크게 자신이 없네요.


그때 당시 해주었던 아빠의 이야기들이, 내가 삶이 지치고 어렵고 힘들 때마다 불현듯 떠오르는 것 보면, 아빠의 선문답이 어느 정도는 성공한 게 아닐까 생각을 해요. 가끔은 아무 걱정 없이 아빠와 3층 옥상에 올라가 시원한 맥주와 수박을 먹으며 대화를 해 나갔던 그때 그 시절, 그 장면, 그 냄새가 그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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