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프라인 모바일 결제는 NFC와 블루투스 비콘의 싸움이 아니다
애플이 2014년부터 NFC를 지원한 목적은 간단합니다. 애플 페이(Apple Pay)라는 결제 시스템을 위해서죠. (구글의 안드로이드는 NFC를 2011년부터 지원, 안드로이드 페이는 2015년에 출시)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이 당시에 사물인터넷과 비콘(Beacon)이라는 개념은 아직 생소하고, 시장이 제대로 형성되지도 않았다는 것입니다. 상점과 대중교통에는 블루투스 비콘이 아니라 NFC 단말기가 구비되어 있는 환경이었습니다. 아직 비콘 시장이 제대로 생기지도 않았는데 모바일 결제 시스템을 NFC 기반에서 블루투스 기반으로 애플이 억지로 옮길 필요도 없었고, 옮길 수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2013년 아이비콘(iBeacon) 발표 후 어언 4년이 지났습니다. 필립스가 자사의 조명기구에 아이비콘 기능을 내장하고, 메이저리그는 야구장에 아이비콘을 설치하고, 수많은 비콘 스타트업이 여러 기술과 제품을 선보였습니다. 시장이 형성되기 시작한 겁니다. 국내에서는 이미 비콘 결제 시스템을 도입한 사례도 있습니다.
... 경북대병원이 비콘을 도입한 데 이어 최근에는 한양대병원이 비콘을 설치하고 고객의 눈길 잡기에 나섰다. 병원 내부에 400개 비콘을 설치하고 진료예약부터 진료비 결제, 주차장 비용 등까지 가능한 헬스케어 솔루션 '엠케어'를 도입했다. 타 병원의 비콘과 비교해 엠케어의 특징은 진료비 결제가 가능하다는 점이다.
- "모바일 결제까지 간 비콘, 가능성 어디까지?", 메디칼업저버
앞서 말했듯, 구글도 2015년 7월에 자사 비콘 플랫폼인 '에디스톤(Eddystone)'을 발표했습니다. IT World 기사에 따르면,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구글이 BLE 기술 기반의 실내 위치 인식을 일시적인 유행이 아닌 지속 가능한 기술로 인식하고 있다는 점이다. 유명한 BLE 비콘 구축이 속속 생기는 시점에서 구글은 애플이 미래의 비콘 시장을 독식하도록 좌시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합니다.
구글 또한 NFC가 필요 없는 비콘 기반의 새로운 결제 수단을 개발 및 실험해본 적이 있습니다. 지금은 중단한 프로젝트이지만 비콘과 얼굴 인식을 융합한 '핸즈 프리(Hands Free)'라는 결제 서비스였습니다. 사용자는 핸즈 프리 앱에 본인의 사진을 등록하고 스마트폰의 블루투스, 와이파이, 위치 서비스만 활성화하면 됐습니다. 사용자는 카드나 스마트폰을 꺼낼 필요 없이 쇼핑 후 계산대로 가면 되며, 점원이 얼굴을 확인하면 스마트폰으로 자동결제가 되었습니다.
물론 현재 안드로이드 페이와 애플 페이는 모두 NFC 기반의 결제 수단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제 의견은 기술이 계속 발전한다면 NFC 이외의 결제 수단이 등장 못할 이유가 없다는 것입니다. IT기업, 스마트폰 제조사, 신용카드사, 은행의 이해관계는 일단 미뤄두고 오로지 소비자 관점에서 볼 때, 저는 결제의 본질은 불편을 해결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화폐의 역사를 한 번 보죠. 물물교환이 불편해 금속 화폐가 생겼고, 금속 화폐가 불편해 지폐가 생겼고 (금본위 제도의 붕괴는 여기서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이제는 많은 양의 지폐도 휴대하기 불편해 신용 화폐가 생겼습니다.
은행 서비스의 변화도 불편이 해소되는 과정입니다. 컴퓨터와 인터넷이 보급되기 전에는 누구든지 은행일은 오후 4시 전까지 은행에 가서 처리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시간을 내기 어려운 사람도 있고, 은행이 너무 멀기도 하고, 대기인이 너무 많을 때도 있었습니다. 이 불편을 없애기 위해 온라인과 모바일 뱅킹 서비스가 등장했습니다. 하지만 액티브 X와 공인인증서라는 다른 적폐 세력이 그 모습을 드러냅니다. 한국인들이 토스와 카카오 뱅크를 반기는 이유가 뭘까요? 모두 불편과 직결된 문제입니다.
오프라인 모바일 결제도 비슷합니다. '오프라인' 결제의 불편은 무엇일까요? 저는 '줄 서서 기다리기'라고 생각합니다.
NFC는 10㎝ 이내 가까운 거리에서 무선 데이터를 주고받는 '초근거리' 통신 기술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결제를 위해선 스마트폰을 NFC 단말기에 가까이 대야 합니다. 일대일 거래에서는 편리한 기술입니다. 고객이 한 명이니까요. 그러나 일대다 거래에서는 어떨까요? NFC 단말기에 스마트폰을 갖다 대기 위해 여러분이 수십, 수백 명의 대기열에서 오랜 시간을 기다리는 걸 상상해보십시오. 특히, 편의점이나 마트에서처럼 여러분이 어떤 제품을 구매할지 이미 다 고르고 오로지 결제만 남겨둔 상황에서요. 여기에서 불편이 나타납니다.
내가 돈 내려고 이렇게 오래 기다려야 하나?
시간은 돈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실제로 경제적으로 여유로운 사람은 줄서서 기다리는 걸 굉장히 싫어합니다. 단지 결제 수단 때문에 줄이 너무 길어서 돈많은 고객이 가버린다면 사업자 입장에서는 손해일 것입니다. NFC와 블루투스 비콘의 두 가지 결정적 차이가 여기에서 부각됩니다.
첫째, 거리입니다. NFC는 10cm 이내의 근거리에서만 작동하는 반면, 블루투스 비콘은 최대 70 미터까지 무선 데이터를 주고받을 수 있습니다. 사람이 직접 줄을 서지 않아도 된다는 뜻입니다.
둘째, 블루투스는 일대다 방식입니다. 동시에 다수와 데이터를 주고받을 수 있습니다. 결제 순서를 기다리지 않아도 된다는 뜻입니다.
이러한 두 가지 특성을 살린 애플의 대표적 블루투스 기술이 바로 파일 공유 기능인 에어드롭(AirDrop)입니다. 에어드롭 수신 옵션 세 가지 중 '모두'를 선택하면 "근처의 AirDrop을 사용하는 모든 iOS 기기에서 사용자의 기기를 볼 수 있습니다". (단, 같은 와이파이 존에서)
보안, 기술적 문제 등으로 블루투스 비콘 결제 수단이 보급되지 않은 건 맞습니다. 하지만 소비자 편의라는 측면에서 볼 때 블루투스 비콘은 기업이 쉽게 포기할 기술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불편을 해결해주는 사업은 돈이 되기 때문입니다. 커넥팅랩의 <모바일 트렌드 2016 : 모바일, 온디맨드의 중심에 서다>라는 책도 편의라는 가능성 때문에 블루투스 비콘의 미래를 밝게 예측하고 있습니다.
... 애플 페이를 이용하기 위해서는 NFC 결제 단말기가 필요한데, 미국에서 NFC 결제 단말기가 보급되어 있는 상점은 22만여 개로 3%에 불과하다.
... 온디맨드 서비스는 모바일의 특성인 휴대성, 개인성, 즉시성을 그대로 반영한다. 그래서 언제 어디서든 다양한 서비스를 간편히 이용할 수 있는 것인데, 그 과정이 꼭 편리하지만은 않다는 것이 역설적이다.
... NFC에 비해 BLE 기반의 인증과 결제가 제대로 상용화된 사례는 아직 없다. 앞에 언급한 우려스러운 점들(보급, 학습, 보안)을 극복한 BLE(Bluetooth Low Energy) 활용 기술이 서비스된다면 그 편의성은 이전의 다른 서비스들보다 월등히 뛰어날 것이다. 그리고 BLE를 통한 인증이 자리 잡게 된다면 와이파이를 통해 유사한 방식으로 인증 처리를 할 수도 있다.
애플이 아이폰 X(엑스라 쓰고 '텐'이라 읽음)을 시작으로 LCD가 아닌 OLED를 2017년 이후의 모든 아이폰 디스플레이로 채택하는 건 이제 비밀 아닌 비밀입니다. OLED가 과거와 달리 이제는 애플의 기준에 부합하기 때문입니다. OLED는 스티브 잡스의 아이폰 4 키노트 이후로 지금까지 엄청난 발전을 이루어내고 있습니다. 이처럼 블루투스의 성능도 여타 다른 디지털 기술처럼 거듭 발전하고 있습니다. 블루투스 뉴스에 따르면,
Bluetooth 5, projected for release in late 2016 to early 2017, will quadruple range and double speed of low energy connections while increasing the capacity of connectionless data broadcasts by 800 percent.
2016년 하반기와 2017년 상반기 사이에 출시될 블루투스 5는 이전 버전과 비교해 전송 거리는 4배 늘어나고 저전력(LE) 모드에서 연결 속도는 2배 향상되는 동시에 비연결 데이터 브로드캐스트 용량은 기존 대비 800% 증가한다.
라고 합니다.
불편 해소라는 관점에서 곰곰이 생각해보았을 때, 기술 혁신만 충분히 이루어진다면 NFC보다 블루투스 비콘의 활용도가 더 무궁무진하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래, 블루투스 결제다", "아니다, 아직은 NFC 결제다"로 싸울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저는 기술이 계속 발전한다면 NFC 이외의 결제 수단이 등장 못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지, 블루투스 비콘이 NFC를 대체할 것이라는 말은 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전혀 생각지 못한 기술이 NFC 결제 수단의 자리를 차지하고 오프라인 모바일 결제 시스템을 뒤엎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마존 고(Amazon Go)'가 그 서막입니다.
아마존 고는 아마존이 실험 중인 대규모 식료품 '무인'매장입니다. 아마존 고는 계산대가 없는 매장으로 이곳을 방문한 고객은 NFC 단말기와 비콘을 사용하지 않아도 무인 결제가 가능합니다. (비콘을 이용한다는 내용 없음) 블로터에 따르면 아마존 고의 결제 방식은 아래와 같습니다.
아마존은 (오프라인 모바일 결제를) 완전히 다른 시각으로 접근했다. RFID 태그 대신, 요즘 뜨는 신기술이 대거 투입됐다. 머신러닝과 컴퓨터 비전, 인공지능과 자율주행 기술 등이다...
... 원리는 이렇다. 아마존은 컴퓨터 비전과 딥러닝 알고리즘, 센서 퓨전 등의 기술과 자율주행차 기술을 적용해 ‘저스트 워크아웃 테크놀로지’ 기술을 매장에 구현했다. 이름대로 물건만 고르고 바깥으로 걸어나가기만 하면 되는 기술이다. 고객이 쇼핑을 즐기는 동안 자율주행 센서가 부착된 원형 카메라가 쇼핑객 동선을 그대로 따라다니며 구매 목록을 확인한다. 고객이 매장을 나서면 앱에 등록된 결제 수단으로 비용이 결제된다.
아마존은 아마존 고를 이렇게 소개합니다.
What is Amazon Go?
Amazon Go is a new kind of store with no checkout required. We created the world’s most advanced shopping technology so you never have to wait in line. With our Just Walk Out Shopping experience, simply use the Amazon Go app to enter the store, take the products you want, and go! No lines, no checkout. (No, seriously.)
아마존 고가 뭔가요?
아마존 고는 계산대가 필요 없는 새로운 형태의 상점입니다. 저희는 여러분이 (계산을 위해) 줄 서서 기다릴 필요 없도록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쇼핑 기술을 만들었습니다. 저희의 '줄 없는 쇼핑(Just Walk Out Shopping)' 기술 덕분에 여러분은 아마존 고 앱을 이용해 매장으로 들어오신 후 원하는 상품을 고르고 그냥 나가시면 됩니다! 줄 서지 않아도 됩니다. 계산대도 없습니다. (네, 진짜로요.)
아마존이 오프라인 모바일 결제 수단을 바라보는 시각과 제가 앞서 던진 질문의 맥락이 비슷하지 않나요?
내가 돈 내려고 이렇게 오래 기다려야 하나?
고대사회에서 금화로 결제하려고 줄 서있든, 현대사회에서 NFC로 결제하려고 줄 서있든, 돈 내려고 줄 서서 기다리는 오프라인의 불편은 아직도 해결되지 못했습니다. 블루투스 비콘이 NFC를 누르고 차세대 오프라인 모바일 결제 기술이 되는 게 아닙니다. 이 불편을 해결할 수 있는 기술이 차세대 결제 기술이 되는 것입니다. 아마존 고 프로젝트가 성공해서 전 세계로 퍼진다면 NFC와 비콘은 오프라인 결제 시장에서 순식간에 사라질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기술이 계속 발전한다면 NFC 이외의 결제 수단이 등장 못할 이유가 없다는 것입니다.
"NFC냐, 비콘이냐"의 싸움이 아닙니다. "안드로이드 페이냐, 애플 페이냐"의 문제가 아닙니다.
결제의 본질은 불편의 해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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