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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현우 Jun 22. 2015

시(Poetry, 2010)

더 이상 시를 쓸 수 없을 때, 시는 완성된다.

시(Poetry, 2010)

감독 : 이창동

출연 : 윤정희(양미자 역), 이다윗(종욱 역), 안내상(기범 아버지 역), 등등

별점 : ★★★★★

한 줄 평 : 더 이상 시를 쓸 수 없을 때, 시는 완성된다.


※제 리뷰는 언제나 스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영화를 보고 읽으신다면 더 뜻깊은 리뷰가 되실거라 생각합니다.


 부끄럽지만, 나는 종종 시를 쓴다. 입대 전에도 가끔 시를 쓰기는 했지만, 시에 재미를 붙인 것은 입대 이후이다. 군에서 혼자 근무를 서다 보면 사물이나 개념을 면밀히 보게 된다. 딱히 할 게 없기 때문이다. 이전에는 그냥 지나쳤던 햇살 한 줄기, 나뭇잎 하나, 연필 한 자루, 외로움 한 움큼, 우스움 한 가닥도 오랫동안 바라보며 머문다. 그러다 보면, 머리 속은 오만 가지 생각으로 가득 찬다.  그중 윤기 나는 몇몇 조각들을 맘에 드는 단어들로 칠해 이어 붙이면, 그 날 하루 내가 했던 사유들과 내가 느꼈던 감성들의 몽타주가 완성된다. 나는 이게 퍽 재밌다.


 시를 좋아한다는 부끄러운 취미를 가지게 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날, 이창동 감독의 「밀양」을 보고 깊게 감명받아 그의 다른 작품들을 구경하던 중「시」라는 그의 영화를 발견한 날, 그리고 마침 야간 근무 휴무를 받은 날, 그 수많은 우연과 필연의 날들의 접점에서 나는 「시」를 만났다. 화면에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 나는 이창동 감독의 「밀양」을 보고 그랬던 것처럼 멍해 있다가, 울어버리고 말았다. 이 영화는, 나름 생각하며 산다고 생각했던 나 자신에게 더 깊은 생각을 추궁했고, 적절히 부끄러워하며 산다고 자부했던 나를 조금 더 부끄럽게 만들었고, 이 정도면 충분히 행복하다고 생각했던 나에게 더 큰 행복을 선물했다. 이창동은 참 좋은 시인 같다고, 나는 생각했다.


 이창동은 자아가 죽고, 그래서인지 수치(羞恥)도 순수도 죽어버리고, 결국에는 시까지도 생을 마감한 오늘날의 우리에게 '양미자'라는 인물을 내민다. '양미자'는 시를 쓰고 싶어 하는 평범한 노인이다. 하지만 그녀는 통 시를 쓰기가 어렵다. 그녀는 순수하지만, 세상은 순수하지가 않다. 그녀는 너무나도 부끄럽지만, 세상은 놀랍도록 뻔뻔하다. 그녀는 아름다움을 노래하고 싶지만, 세상은 아름다움에 관심조차 가지지 않는다. 그녀는 여백에서 숨 쉬고 싶지만, 세상은 시간도 공간도 숨 막히게 바쁘다. 그녀는 단어도 자꾸 잊는다. 하지만, 세상은 단어를 버린다.


 세상은 더럽고, 꼴 보기 싫으며, 속물이다. 그래서 미자는 노래도 불러보고, 욕도 해보고, 울어도 본다. 그러다 미자는, 자신이 사랑하는 것들도 모두 그 세상이라는 시궁창 속에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손자에게 먹이는 밥 한 술도, 맨드라미 한 송이도, 딸과의 전화통화도, 가로등 아래서의 배드민턴도, 순수도, 용서도, 아름다움도, 사랑도, 그리고 시(詩)도 결국은 자신이 혐오했던 것들과 현실이라는 구덩이 속에서 치열하게 공존한다는 것을 미자는 느낀다. 그래서 미자는, 자신이 사랑하는 것들을 지키기 위해 모든 것을 짊어진다. 그리고 살구처럼 세상 속으로 몸을 던진다. 스스로 깨어지고 밟힌다. 그렇게 무참히 으깨진 흙투성이 살구에서, 살구꽃은 핀다. 더 이상 시를 쓸 수 없게 되었을 때, 그녀는 비로소 시를 완성한다. 한 편의 시가 된 그녀의 삶을 통해, 나는 내가 오늘 하루 써 내려간 나의 모습에서 부끄러움을 보고, 빛을 보았다. 그래서 또 마냥 울고 말았던 건지도 모르겠다.


 오늘 리뷰의 마무리는 한 편의 시로 하고자 한다. 「시」에 대한 어떤 분의 리뷰에서 따온 윤동주의 「쉽게 쓰여진 시」의 전문인데, 참 영화와 잘 어울리는 시라는 생각이 들어서 염치 불구하고 가져왔다. 오늘도 시 같은 하루가 되기를 꿈꾸며 글을 마친다.



쉽게 쓰여진 시


윤동주


창(窓) 밖에 밤비가 속살거려

육첩방(六疊房)은 남의 나라.


시인(詩人)이란 슬픈 천명(天命)인 줄 알면서도

한 줄 시(詩)를 적어 볼까.


땀내와 사랑내 포근히 품긴

보내 주신 학비 봉투(學費 封套)를 받아


대학(大學) 노트를 끼고

늙은 교수(敎授)의 강의(講義) 들으러 간다.


생각해 보면 어린 때 동무를

하나, 둘, 죄다 잃어버리고


나는 무얼 바라

나는 다만, 홀로 침전(沈澱)하는 것일까?


인생(人生)은 살기 어렵다는데

시(詩)가 이렇게 쉽게 씌어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육첩방(六疊房)은 남의 나라

창(窓) 밖에 밤비가 속살거리는데,


등불을 밝혀 어둠을 조금 내몰고,

시대(時代)처럼 올 아침을 기다리는 최후(最後)의 나


나는 나에게 적은 손을 내밀어

눈물과 위안(慰安)으로 잡는 최초의 악수(握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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