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하나 가슴에 남아 있을 때
불현듯, 정말 불현듯 그 이름이 생각났다. 나는 포털사이트에 이름 석 자를 적었다. 그리고 검색을 눌렀다. 낯선 정보가 주르르 올라왔다. 내가 아는 이름 석 자와 관련 없어 보이는 정보는 그의 삶에 대한 어떤 단서도 제공하지 않았다. 그건 그와의 영원한 단절을 의미하는 것 같았다. 그런데 나는 그가 포털사이트에 검색될 거로 여겼으니, 아직도 그는 내게 우상으로 존재하는 것인가.
다음은 내 이름 석 자를 검색했다. 흔하디 흔한 이름이라 많은 정보가 올라왔다. 나와 같은 이름을 가진, 하지만 전혀 다른 얼굴로 다른 생활을 하는 사람들, 그 낯선 얼굴들 속에 나도 들어 있었다. 평범하기 이를 데 없는 내가 검색되는데, 나의 우상이었던 그는 어디로 꼭꼭 숨어버린 것일까.
박인환 시인은 <세월이 가면>이란 시에서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이라고 말했다.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그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있어’ 물론 시인이 말하는 눈동자와 입술이란 대상에 대한 은유라 짐작한다. 사람마다 기억하는 부분이 다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나는 모습보다 이름을 더 잘 기억하는 편이다. 어느 날 이름 하나가 가슴에 들어오면 나는 편지를 쓰곤 했기 때문이다. 펜으로 꾹꾹 눌러 이름 석 자를 썼으니 그의 이름이 내 가슴에 또록또록 박혀 있는 건 당연하다. 세월은 내게서 그를 향한 동경을 가져가고 이름은 남겨둔 셈이다.
헤아려보니 삼십 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많은 시간이 지난 지금에야 그와의 일을 되새겨 보는 건 이제 그는 내 삶에 어떤 영향도 미칠 수 없는 존재가 되었다는 걸 의미한다. 단지, 당시에는 풀지 못했던 관계의 방정식이 궁금할 뿐이다. 일반적이지 않은, 조금은 특이했던 사랑법이 그를 떠올리게 했다.
요즘은 공장에서 일하는 여자들을 일컬어 ‘공순이’라 부르지 않는 거로 알고 있다. 하지만 80년대는 공장에 다니던 여자들을 무시로 공순이라 불렀다. 나도 그런 여자 중 한 명이었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생활을 시작한 게 공장이었다. 대기업 하청이라 해도 직원이 백삼십여 명 정도 되는 큰 공장이었다. 남자와 여자의 비율은 거의 반반이었다.
그때 나의 최대 관심은 사무실 직원이 되는 것이었지만, 내 학력으로는 어림도 없었다. 현장사무실 직원이라도 해 보는 게 소원이었을 만큼 열등감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나마 내 자존심이 조금이라도 살아날 수 있었던 건 현장에 관한 모든 것을 관리하는 일이었다. 글씨를 잘 쓰고 계산이 빠르다는 이유로 작업계획서나 현장일지, 분임조 등을 도맡아 했다.
그 때문에 나는 은연중 다른 직원들과 다르다는 생각을 했다. 동료들은 일이 끝나면 이성 이야기와 먹는 거로 스트레스를 풀었다. 나는 쉬는 시간이면 책을 봤고, 그런 거로 나는 ‘니들과 달라’라는 걸 은연중 과시했다. 그렇게라도 해야 견딜 수 있었다.
청춘들이 많다 보니 연애담도 끊이질 않았다. 점심때면 같은 식당에서 밥을 먹었는데 그때는 공장 사람들이 얼굴을 마주 대하는 시간이었다. 드러내 놓지는 않았어도 은연중 연애 기류가 흘렀다. 서로 좋아하는 사람 옆에 앉기를 원했고 또한 눈치를 봤고, 그 때문에 누구랑 누가 그렇고 그런 사이라는 소문이 나기도 했다.
당시 나는 예닐곱 명과 함께 기숙사 생활을 했다. 많은 사람이 함께 살다 보니 말도 많고 탈도 많았다. 저녁이면 남자들이 먹을 걸 들고 찾아오기도 했다. 나랑 같은 방을 쓰던 친구는 한창 연애 중이었다.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행복해하던 친구는 주말이면 얼굴에 복사꽃이 활짝 폈다. 나는 친구가 데이트하는 시간에 책을 읽고 펜팔 편지를 쓰면서 환상을 쫓았다. 내가 붓글씨를 배우게 된 것도 그런 열망 때문이었다. 나는 니들과 다르므로 니들이 하지 않는 걸 한다는 과시욕이 들어 있었다.
그리고 나는 서예학원에서 그를 만났다. 환상 속에만 있던 남자가 내 앞에 턱 하니 서 있었다. 외모도 준수했지만, 외모보다 그의 지적인 부분이 나를 사로잡았다. 그는 항구도시를 대표하는 대학교 학생이었다. 그의 세계는 내가 보던 세계와 달랐다. 그는 박식했고 말을 잘했다. 나의 부족한 부분이 그로 인해 채워지기 시작했다. 그게 사랑이었는지 우정이었는지는 지금도 모르겠다.
그가 아르바이트를 마치는 시간과 내 퇴근 시간이 같다 보니 우리는 저녁에 만날 수밖에 없었다. 서예학원은 내게 배움의 장소이기도 했고 데이트 장소이기도 했다. 음악과 커피, 그리고 그와 함께 나는 묵향에 취했다. 그는 항상 날 집까지 바래다주었다. 그래서 동료도 우리를 알게 되었다. 그 이후 서예학원에 다니게 된 동료가 세 명이 생겼다. 물론 그들은 다른 학원에 등록했다.
이상한 건, 그와 진전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이 년이 되도록 그는 변함없이 날 아껴줄 뿐이었다. 내가 그와 지지부진하고 있는 사이 친구는 동거를 시작했다. 행복해하는 친구 모습을 볼 때면 알 수 없는 그의 마음 때문에 답답했다. 그때부터 친구가 부러웠는지도 모른다.
겨울이 시작되던 어느 날, 그날은 겨울비까지 내리고 있었다. 나는 작심하고 그에게 편지를 건넸다. 그는 편지를 읽더니 바로 그 자리에서 화선지를 펼쳤다. 그리고는 펜으로 장문의 글을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나는 창밖에 시선을 주고 있었는데 왠지 모르게 서늘한 기운이 차올랐다. 문짝만큼이나 긴 화선지를 둘둘 말아 내게 건넨 그는 집에 가서 읽어보라고 했다. 우리는 그가 도시락 배달 아르바이트를 하던 트럭에 올라탔다. 한동안 말이 없던 그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
“난 박애주의자라 한 사람만을 사랑할 수 없어.”
그 말을 하던 순간에도 그의 눈빛은 따뜻했고 자상해서 나는 그를 외면했다. 차창으로 수많은 빗방울이 아우성치며 부서졌다. 나의 이년이 처참히 부서져 내렸다. 아니, 자존심이라 생각했던 나의 오만이 산산이 부서지는 소리가 가슴속에서 들려왔다. 니들과 다르다고 생각했던 나의 알량한 자존심이 빗물에 씻겨 내렸다. 오는 길에 친구 집에 들렀다. 친구가 따뜻한 밥상을 차려줬다. 사랑에 빠진 두 사람의 눈빛 속에서 그들과 다를 바 없는 나를 보았다.
나는 망설임 없이 그를 떠났고, 그를 떠나고 난 뒤에 그의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내가 아무리 숨기려 해도 숨길 수 없었던 차이를 그는 보았을지도 모른다. 내가 동료와 다르다고 생각했듯 그 또한 나와 다름을 자각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자 오히려 마음이 편안했다. 잠깐 나는 내 몸에 맞지 않은 옷을 입고 마치 내가 그 옷의 주인이라도 된 듯 착각했을 뿐이었다. 편지는 변함없이 따뜻했지만 풀 수 없는 문장이 몇 군데 있었다. 나는 그 문장을 굳이 풀고 싶지 않았다. 결국, 그는 내게 우상으로 남았다.
친구랑 헤어지고 난 뒤 나는 친구 소식을 종종 들었다. 친구가 옳았고 나는 내 허영에 걷어차였음을 인정했다. 지난 세월 동안 나는 서너 번 그를 생각했다. 그리고 그가 여전히 날 자기와 다르다고 여길지를 생각했다. 아니면 정말 이성에 대한 사랑까지 초월한 박애주의자였는지를 생각했다.
그를 검색하는 동안 내 마음은 편안했다. 어쩌면 그가 옳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 건, 시간이 흐른 탓만은 아니라고 나는 혼자 중얼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