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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팽나무 Nov 18. 2020

낙엽이 전하는 말

 퇴근 후 가방을 정리하는데 뭔가가 떨어진다. 거실 바닥에 사뿐히 내려앉은 건 낙엽 하나, 나무 밑에 잠깐 앉아 있었는데 그때 가방 속으로 숨어든 모양이다. 어쩌자고 낙엽은 나를 따라온 것일까. 아니, 따라온 게 아니라 운명이 엇갈린 건 아닐까. 가지 끝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다가 바람이 툭 건드리자 떨어졌을지도 모르니 말이다. 밑에 뭐가 있는지 살필 겨를이 없었다면 낙엽은 바람이 불 때 딴생각을 하고 있었던 게 분명하다. 사색에 잠겼거나 삶에 대해 심각한 고민을 하고 있었을지도…. 친구들이 손잡고 땅이나 울타리, 지붕이나 계단으로 흩어질 때 혼자 엉뚱한 곳으로 온 가을 한쪽이 말을 걸어온다.


  의외의 장소에서 빛을 발하는 낙엽의 색은 오묘하다. 줄기와 연결된 부분은 노란색, 주맥은 짙은 갈색이다. 잎 가운데 부분은 주홍, 끝으로 갈수록 붉은빛이 짙다. 낙엽 하나에 여러 색이 정교하게 스며있다. 나무는 이렇듯 이별마저 아름다운 것이리라. 이른 봄, 생명을 품은 나무는 여린 잎이 다칠세라 햇살 가득한 날을 택해 몸을 풀었을 것이다. 연초록 잎들의 호기심은 세상에 생동감을 불어넣었고 지난여름, 전염병의 창궐에도 나무는 창창했다. 만약 나무가 없었더라면 인간의 삶은 얼마나 적막하고 답답했을까. 사람들이 아우성을 쳐도 자연은 흔들림이 없었다.


   낙엽과 눈을 맞추며 나의 일 년을 가늠해본다. 봄이 시작되면서 푸른 꿈을 가졌으나 아등바등 살다 보니 늦가을 문턱에 다다랐다. 낙엽처럼 붉게 빛나지도 벼의 알곡처럼 속을 채우지도 못했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 건 초가을에 발간한 산문집 한 권. 영혼을 채우기는 부족하지만, 누군가에게 삶의 불씨가 되어주길 바라는 간절함을 담은 책이다.


   낙엽이 내게로 온 까닭을 이제야 알겠다. 책을 펼치고 활자 위에 가만히 낙엽을 놓는다. 훗날 나 또한 치열하게 살았음을 추억할 어떤 시간을 기대하는 지금, 창밖에는 소리 없이 낙엽이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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