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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팽나무 Jan 27. 2021

새벽이 오는 소리

  새벽 네 시, 식탁에 앉아 두 손을 모은다. 하루라는 하얀도화지 위에 첫 선을 긋는 시간이다. 지난밤 번민에 시달렸건만 마음은 어느새 고요하다. 시들했던 육체도 다시 피돌기가 시작된다. 시간이 모여 하루, 한 달, 일 년이 된다고 생각하면 하루를 여는 새벽이야말로 청정하고 신성하게 느껴진다. 창밖은 아직 어둠이 깊다. 건너편 아파트에는 늦은 저녁인지, 이른 아침인지 모를 불빛이 몇 군데 어둠을 밝힌다. 따뜻한 물 한잔으로 몸과 마음을 데운다. 

 예나 지금이나 새벽은 거룩함의 영역이다. 예전 우리 어머니들은 새벽을 무척 신성하게 여겼다. 그랬으니 푸르스름한 새벽녘, 장독대 항아리에 정화수 올리고 비손했으리라. 하루 중 가장 맑은 시간, 먼지도 티끌도 섞이지 않은 새벽에 이윽한 마음으로 천지신명께 빌었다. 가족의 화목과 자식의 무사 안위를 염원하던 어머니들의 정성이 후듯한 아침을 열었다. 

 산골의 새벽은 엷은 푸른색이었다. 동그마니 산 아래 자리 잡은 마을, 대나무가 많던 동리를 깨우는 건 생생한 푸른 잎을 품고 지나는 바람 소리였다. 쏴아쏴~~ 쓰르르르, 잠결에 듣는 그 소리는 한낮의 소음과 달랐다. 거기에 더하여 어머니의 발걸음이 마당을 가득 채웠다. 정답던 소리에 귀를 기울이면 마음이 푸근해졌다. 연이어 빗자루 소리라도 들릴라치면 안온한 행복에 젖어 들기도 했다.

 그때 어머니처럼 나도 새벽을 신성하게 여긴다. 나이가 들수록 일어나는 시간이 점점 빨라진다. 이미 몸에 새벽이 깃든 것 같다. 푸른빛이 고여있는 새벽, 따뜻한 물 한잔 감싸고 잠깐 명상에 잠긴다. 특히 비스듬히 누워있는 하현달 뜬 새벽이 좋다. 새벽하늘을 보노라면 마음이 환해진다. 어둡던 눈이 밝아지고 엉킨 마음도 풀어진다. 하루 치 노동을 견디기 위해, 건강한 정신을 위해 차리는 밥상이 기껍다. 

 복도를 지나는 누군가의 부지런한 움직임이 그 옛날 빗자루 소리처럼 귓가를 스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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