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에리카 Erika Feb 28. 2023

이야기를 담는 바다

토론토에서 생각하는 고향, 부산


내 생에 내리는 눈이 지긋지긋해지는 날이 올 줄이야. 토론토에 온 첫 해 겨울, 부산에서 평생 볼 눈을 그 몇 달 새 다 봤던 것 같다. 어쩌다 진눈깨비라도 흩날리는 날이면 창문을 열어 젖히고 호들갑을 떨어대던 부산에서의 지난 이 십 여년이 무색해졌다. 6년전 여행삼아 미국으로 처음 떠났던 길이 이곳 캐나다 토론토까지 구불구불 이어지더니, 나는 덜컥 현지 법무사가 되었고 지금은 로펌에 출퇴근을 하는 직장인으로 살아가고 있다.


열 살 이후로 장래희망란에는 ‘작가’라는 단어만 고집스레 쓰던 내가 연고하나 없는 낯선 타국에서 법조인이 된 그림은 나조차도 예상하지 못한 전개다. 세상 사람들이 들려주는 다양한 형태의 이야기를 보고 듣는게 마냥 즐거웠던 십대, 스무살이 되면 나도 재미난 이야기를 맘껏 들려주리라 다짐했다. 하지만 부산은 커녕 해운대조차 제대로 벗어나본 적 없던 내가 묘사 할 수 있는건 결국 내가 살아온 좁은 세상 뿐이었다. 연속극의 다음화를 기다리지 못하고 안달난 사람처럼 더욱 많은 이야기를 졸라댔고, 세상에 대한 호기심과 질투심으로 좀이 쑤셔 견딜 수 없었다. 이야기꾼이 되고 싶었다. 그 핑계로 미국 플로리다와 캘리포니아에서 2년을 지내고도 모자랐는지 대뜸 캐나다로 유학행을 선언했다.


철없는 막냇딸이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저지른 일의 댓가는 혹독했다. 꿈꿔오던 유학 생활을 시작했지만, 배움의 기쁨을 느낄새도 없이 현실의 여러 문제들이 매순간 나를 위협했다. 아름다운 토론토의 겨울은 춥고 시리기만 했다. 우여곡절끝에 유일한 유학생으로 법학과를 졸업했고 곧장 법무사 자격증을 따서 취업도 했다. 지금이야 한 줄로 요약하고마는 여정이지만 그 시절 나는 매일이 참 처절하고 구질했다. 미처 준비할 겨를없이 나를 뒷바라지 해야했던 부모님은 내가 떠나고 곧 거처를 옮기셨다. 언제 돌아올지 모르는 딸을 위한 곁을 마련해 두기에는 팍팍한 살림살이가 묻지 않아도 눈에 훤했다. 내가 타국이라는 이유로 삶의 고단함을 생색낼 때, 그들은 단 한순간도 치열하지 않은 적 없었고 종종 아팠지만, 그 순간조차 딸의 안위를 기도했을 것이다. 그제서야 우리의 물리적 거리감이 조금씩 실감이 나기 시작했다. 쫓기듯 시간은 흘렀고 어느덧 부산은 내 오랜 유년시절을 품은 그리운 고향으로 기억속에 박제되었다. 꼭 색감 예쁜 클래식 영화 장면을 모아둔 앨범처럼.


타지인에게 부산은 그저 화려한 해양도시 같은 모습일지 모르겠다. 내가 나고 자란 해운대는 이제 외지인이 더 많이 찾는 호화로운 관광지가 되었다지만, 나에게는 여전히 작은 바닷마을 고향이다. 계절마다 다른 운치가 있는 남포동과 다대포 등지는 광활한 북미 대륙에서도 비슷한 곳을 찾지 못했다. 포근한 남쪽 지방이지만 매서운 바닷 바람을 피해 복잡한 골목 사이를 비집고 숨어들다보면 으레 낭만적인 풍경을 마주치는게 익숙했던 부산. 그렇게 발걸음이 이끌리는대로 여행을 시작하게 되는 곳, 나의 처음이자 시작.


서머타임이 시작된 토론토는 한국과 열 세 시간의 시차가 난다. 한 쪽에서는 열 세 시간 앞선 미래를, 다른 한 쪽에서는 과거를 동시에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나와 다른 시간을 살아가는 모습은 스마트폰으로 생중계되고, 언젠가 내게도 당연했던 그 일상들을 엿볼때면 모든 것이 꼭 비현실적으로 다가온다. 우리가 정말 같은 시공간 속에 존재하는걸까. 나만 다른 시공간에 있는건 아닐까. 그러다보면 유독 극복하기 힘든 두려움이 밀려드는 밤이 있다. 다시 돌아갈 수 있을까, 내가 기억하는 사람들의 품으로.


휘청거리는 발걸음에 넘어지지 않으려고 발끝만 보며 걷기를 몇 년, 오늘에서야 고개를 드니 광활한 대자연과 어우러진 토론토의 도시가 눈 앞에 펼쳐져 있다. 혹자는 그래도 믿는 구석이 있으니 그렇게 까불었네 할 것이다. 맞는 말이다. 부산은 내 뿌리를 지탱시킨 최초의 양분이다.


한국에 가게 될 때마다 발목을 반갑게 빙빙 돌며 부빗거리는 고양이가 주는 소속감과 안도감이란.


“창작을 하려면 책상 앞이 아니라 문 밖으로 나가야 한다”고 했던 누군가의 말이 여직 가슴 깊이 새겨져 있다. ‘정의’라는 단어는 여전히 무겁고 어렵지만, 사람들의 이야기를 대신 전해주는 이 역할을 잘 해내고 싶다. 나는 이제 소원대로 부산 바다처럼 넓은 이야기를 한껏 품은 이야기꾼이 되었다. 그러니 토론토에서의 무수히 외로웠던 밤들은 오늘에서야 의미를 지닌다. 더 많이 쓰고 더 많이 사랑해야지.


이제야 비로소 이야기를 시작할 수 있을 것 같다.



* 이 글은 <브로컬리> 한성1918 부산생활문화센터 계간지 2020 봄호, [부산너(BUSANNER)] 코너에 실린 글입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