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에리카 Erika
May 03. 2023
2주 뒤면 엄마가 캐나다에 오신다.
엄마를 본 건 2017년이 마지막이다. 난 학교 졸업식을 앞둔 앞둔 유학생 신분이었고 엄마와 언니가 내 졸업을 축하해 주러 캐나다에 왔다. 당시 난 2평 남짓한 반지하 방에서 살았다. 일주일은 에어비앤비로 공용 숙소를 빌려 엄마랑 언니가 지내게 하고, 일주일 후 언니가 한국으로 돌아가고 나서는 내가 살던 방으로 엄마를 모셔야 했다. 엄마는 여름에도 찬기에 전기장판을 틀어야 하는 반지하 방에서 무려 한 달을 머무르고 가셨다. 난 그 반지하 방값마저도 겨우 내는 백수였다. 엄마는 그래도 나랑 있을 수 있어 좋다고 하셨다. 내 앞에서는 한 번도 내색하지 않으셨지만 한국으로 돌아가시고 난 후 캐나다서 내가 사는 모습을 보시고는 불쌍해서 많이 우셨다고 한다.
내가 먹는 것 입는 것 다 제쳐두고 집부터 사겠다고 마음먹게 된 계기 중 하나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편안하게 함께 있을 수 있는 곳이 있었으면 싶었다. 근사하지는 않아도 바닥이 얼어붙게 차갑지 않고, 햇볕 잘 드는 지상에, 주인 눈치 같은 것 좀 안 보고 함께 지내고 싶었다. 그래서 내 집을 가지게 된 지금, 그 시절의 한을 풀 듯 좋아하는 사람들은 집으로 초대해서 대접하곤 한다.
엄마를 본 지 어느덧 꼭 5년이 지났다. 이번에는 거의 6개월을 우리 집에서 머물다 가실 예정이다. 내가 그러시라고 했다. 무더운 한국 여름 고생하지 마시고 쾌적하게 캐나다서 숙박비 걱정 없이 즐기다 가셨으면 한다. 그런데 왜 난 엄마를 만난다는 생각에 마냥 기쁘지 못하고 여전히 마음 한구석이 불편할까.
사람 맘이 참 간사하다. 막상 집이 생기고 보니 집만 있으면 뭐 하나 싶다. 집은 있지만 엄마를 맘껏 여행시켜 드릴 형편이 못되기 때문이다. 관광은 고사하고 드시고 싶은 외식도 척척 사드리지 못할 것 같다. 딸이 나름 잘 번다는데, 잘 대접해드리지 못하면 얼마나 서운하실까 걱정이 앞선다. 사실 딸은 버는 족족 모기지 은행이 가져가고, 식재료는 매번 가장 싼 것으로만 사서 해 먹고, 혼자선 일주일 내내 외식 한 번 없이 산다는 걸 엄마는 모르시는 게 행복하실 거다. 하지만 샴푸도 비누도 휴지도 세제도 아끼며 사는 내 모습을 이해하실까? 아니 애초에 한국과는 전혀 다른 이곳의 생활양식과 문화를 받아들이실 수나 있을까 싶다. 엄마 기준에는 여전히 아등바등 사는 내가 그저 안쓰럽고 처량해 보여 또 결혼 이야기를 꺼내실 일도 골치 아프다.
가족과 떨어져 지낸 시간이 오래될수록 노파심이 커진다. 예상치 못하게 훌쩍 커버린 이 세월의 간극이 참 속상하다. 내가 이렇게 대뜸 해외살이를 해버리게 될 줄은 스스로를 포함,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다. 누구에게도 준비되지 않은 이별이었다. 그전까진 너무 당연했던 서로를 이제 얼굴 한 번 보려면 5년씩 걸릴 거라고 8년 전의 내가 알았더라면, 나는 아마 다른 선택을 했을지도 모르겠다.
엄마는 나와는 다르게 몸이 원체 작고 약하셔서 긴 비행을 하시는 것도 몹시 부담스러워하신다. 나를 보겠다는 일념 하나로, 죽기 전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오신단다. 내가 출근을 한 동안 내 침구를 정리하고, 세탁기의 내 옷가지를 정리하고, 저녁밥을 지어놓고 퇴근 후 나와 함께 드실 생각만 하신단다. 엄마의 사소한 목적과 바람에 안도하는 내가 참 한심하다. 대체 언제나 되어야 부담없이 한 번 여행이라도 시켜 드릴 여유가 생기는 걸까. 어떻게 생각해도 이 불편한 마음이 속 시원히 가시진 않을 것 같다. 엄마를 5년만에 보면서도 설레는 맘보다 죄스러운 맘이 더 든다. 참 못났다,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