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에리카 Erika
Mar 12. 2023
나대로 살아야 하는 캐나다
혹은 나대로 살게 해주는 캐나다
얼마전 회사 오피스 카페테리아에서 오랜만에 직장 동료를 만났다.
그녀는 오늘 점심을 못 싸왔다며 밖에서 사온 점심을 먹고 있었는데, $20 미만의 음식을 찾으려고 주변을 빙빙 돌았다고 했다. 그리고 그나마 저렴한 중국 식당에서 $18짜리 누들을 살 수 있었단다. 그것도 텍스까지 하면 $20이 넘는다.
나는 평소 점심을 사먹지 않아서 평일 점심값이 그렇게 비싸졌다고 미처 실감을 못했다. 우리는 물가가 정말 미쳐버렸다고 "I can't afford it!"을 남발했다.
바야흐로 점심 $20 시대.
얼마전 한국 뉴스에서도 이제 직장인 점심값이 1만원이 넘는다는 얘기를 들었다.
한국의 평균 소득 수준을 생각하면 부담스러운 가격이다.
내가 평소 점심을 거의 매일 사먹는 사람이었다면, 생각해본다.
아마 감당이 안되서 너무 힘들었겠지.
나 역시 물가가 폭등하면서 지출을 더욱 줄이고 있지만,
이전부터 씀씀이가 적은 생활 습관이 이런 시기를 견뎌내는데 참 많은 도움이 된다.
캐나다 살이에 가장 좋은점이자 나쁜점은, 나를 나대로 살게 한다는 것이다.
나대로 살아 좋지만, 나대로 "살아야" 해서 힘들다.
한국의 삶이 대충 남들을 따라만 가도 어느정도는 조금씩 앞으로 가는, 컨베이어 벨트 위에 서 있는 느낌이었다면, 이곳은 정말 부지런히 바퀴를 굴려야 앞으로 나간다.
한국에서보다 캐나다에서의 삶이 불행한 사람들의 공통점이 대부분 여기에 있다.
한국의 남 눈치보기, 유행 따르기, 비교하기 등의 문화가 싫다며 캐나다에 오지만,
사실은 자신 또한 그러한 한국 문화의 수혜자가 될 때도 있었다는 걸 캐나다에 와서 깨닫는 것이다.
나쁘기만 한 문화는 없다.
한국을 떠나 이곳에서의 삶을 잘 꾸려나가려면,
적어도 한번은, 벌거벗은 나의 내면 깊숙한 곳을 마주해야 한다.
쉽지 않은 일이다.
온통 불편한 것 투성이인 나라.
'이 거지같은 캐나다!'라는 말은 여기 사는 동안은 아마 늘 입에 붙어 있겠지만,
오늘 보잘것 없는 이 작은 도시락이 충분히 감사한 곳.
그게 캐나다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