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에리카 Erika
Jun 13. 2023
캐나다서 영어를 가르칩니다
왕초보 영어회화, 생존을 위한
작년 이직 이후로 꾸준히 영어 과외를 해오고 있다. 이곳에서는 흔히 '튜터링'이라고 불린다. 유학생 시절 용돈벌이로 틈틈이 주변 사람들을 대상으로 했던 경험 덕분에 감사하게도 졸업 후에도 종종 요청이 있었는데, 이전 직장에서는 도무지 시간내기가 힘들어 정중히 거절해야 했다. 그러다 이직 후 저녁 시간이 생기면서 매우 소수이긴 하지만 다시 학생을 받게 되었고, 예전이나 현 학생의 소개로 특별한 광고 없이도 꾸준히 수업을 이어오고 있다. 주로 영어가 유창하지 않은 성인들이다.
흔히들 해외, 특히 영어권 국가에 살면 다들 영어가 유창하다고 생각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영어를 못하는데 어떻게 캐나다서 사느냐고 하는 사람들도 더러 있다. 언뜻 맞는 말 같지만 해외에서 사는 데엔 정말 많은 이유와 계기가 있고, 게 중에는 언어가 미처 준비되지 않은 채 시작하는 사람들도 정말, 정말 많다. 그리고 사실 한국인 커뮤니티가 꽤 큰 토론토 같은 대도시에선 영어가 너무 불편하면 한국인들이 운영하는 비즈니스들만 찾아 이용해도 이래저래 살아갈 수는 있다. 그래서 수십 년을 캐나다니 미국이니 살았어도 영어는 못하는 경우는 사실 흔한 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들이 언어의 갈증을 느끼지 않는 것은 아니다. 다만 노력하기도 쉽지 않고, 뭐든지 스펀지처럼 흡수하던 시절도 지나 공부해도 빨리 늘기가 어려울 뿐이다. 혹은 이제 도무지 어떻게 배워야 할지 몰라 포기해버리기도 한다. 이곳에서 자란 이민자들 자녀는 부모님이 생업에 뛰어드는 동안 국어를 거의 잊어 제 부모님과 소통이 되지 않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뿐인가. 소통능력 없이는 어느 사회에서건 원활한 서비스와 그의 다양한 선택권을 누리기 힘들고, 직장을 선택하는 데에도 너무나 큰 한계가 있다. 그렇다 보니 자신감도 잃고 사소한 일에도 위축되기도 쉽다. 언어 하나 때문에 삶의 질이 현저히 떨어지고 마는 것이다.
나도 성인이 된 이후에야 미국과 캐나다서 직접 몸으로 부딪혀가며 실생활 영어를 익히기 시작했으니 대단한 실력자는 아니지만, 대신 그랬기에 나처럼 성인이 되어서야 영어 회화를 시작하게 된 내 학생들의 어려움을 십분 이해한다. 하물며 국어로도 조리 있게 말하고 표현하기 위해서는 많은 훈련이 필요한데, 성장기에 자연스럽게 습득하는 과정을 거치지 못한 타국어로 내 의사를 제대로 표현하기까지는 그 과정은 처절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어떤 이유로든 그 나라에서 당장 살아가야 할 처지(?)라면, 언어는 교양이나 취미가 아닌 "생존" 아니겠는가.
언어 때문에 한국인 사업장에서 일을 하게 된다면 직종을 막론하고 부당한 대우를 받게 될 가능성도 높다. 물론 좋은 한국인 사장님들도 많다. 하지만 오너의 개인적인 인성과는 별개로, 나와 학생들의 경험을 통틀어 캐나다의 근로기준법을 정확히 준수하며 직원을 고용하는 한국인들은 상당히 드물고, 오히려 이제 한국에서도 그러면 큰일 날(?) 사고방식으로 캐나다서 회사를 운영하는 경우도 많기에 캐네디언 회사와 한국인 회사 중 선택할 수 있다면 백이면 백 전자를 선택하는 게 현실이다. (물론 캐네디언 중에도 악덕 업주는 있겠지만)
한국인들을 응대하는 일은 또 어떤가. 결코 "한국"에서 "한국인"을 대상으로 일할 때의 피로감과 같지 않다고 한다. '한국인들은 캐나다서 (영어를 못해서) 받은 스트레스를 한국인한테 가서 푼다'는 말이 있을 정도니, 다소 씁쓸하다. 같은 한국인이라 편하고 좋은 점도 있지만 무엇이든 '빠른 서비스'와 '고객이 왕'인 한국 문화가 익숙한 한국인을 무엇이든 느리고 직원의 인권이 중요한 캐나다에서 응대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나만 해도 한국인들이 일하는 곳으로 가면 친절하고 신속한 서비스에 꼭 한국에 온 것 같은 착각이 들 때도 있으니 말이다. 기왕 캐나다에 살게 되었으니 캐네디언들과 부대끼며 문화나 언어를 더 습득할 기회를 갖고 싶다는 의견에도 깊이 통감한다.
이렇다 보니 내 수업은 자연스레 당장 써먹는 생활 영어 회화나 취업/이직을 위한 인터뷰 훈련이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내가 풀타임 직장 생활에 고된 날이 있어도 매번 공들여 교재를 만들고 수업을 준비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대게 나보다 나이가 많으신 학생들의 가지각색 삶의 이야기를 듣노라면, 어느 하나 치열하지 않은 삶이 없다. 영어가 부족할 뿐 살아온 세월의 내공은 탄탄하고 가지각색으로 모두 존경스럽다. 그들이 적어도 언어 때문에 선택지가 좁아지는 일은 없기를 바란다.
성인들이 언어를 배울 때는 저도 모르게 한국식으로 먼저 생각을 해 버리기 때문에 아는 표현도 쉽게 입 밖으로 나오지 않는 경우가 많다. 틀리는 것을 두려워하고 상대나 주변의 눈치를 많이 살피는 한국 문화에 길들여졌기 때문이기도 한데, 적어도 영어를 배우는 데 있어서는 방해가 되는 습관들이다. 하지만 이해보다는 암기가 차라리 편하고, 당장 입 밖으로 한 마디 써 보는 것이 더 중요한 성인들에게 나는 단순 문장을 던져주고 그냥 그대로 외워 써 보는 것부터 훈련시킨다. 내 경험을 비추어봐도 선 암기, 후 응용이 초기에는 더 효과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결국에는 영미식으로 생각하고 말하는 연습을 피할 수 없다. 언어와 문화는 결국 같은 것이라 문화를 떼놓고는 언어를 습득하기란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영어와 국어가 뒤죽박죽 섞이는 내게도 늘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나 역시 같은 경험을 했다는 것, 어느 부분이 왜 어렵고 이해하기 어려운지 알아주는 것에 학생들은 깊은 안심과 위로를 느끼는 게 아닐까 싶다.
학생들은 매일 직장 생활을 하며 튜터링을 하는 나를 두고 대단하다고 하지만, 내게 있어 이 일은 회사에 쏠리기 쉬운 과도한 몰입을 분산/환기시키는 귀한 시간이 되어준다. 덕분에 맺은 좋은 인연들로부터 더 큰 세상을 볼 수 있음은 말할 것도 없다. '선생님'이란 호칭에는 쉽게 익숙해지지 않지만, 할 수 있는 일이 있어서 감사할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