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에리카 Erika Jul 07. 2023

신용카드 없었으면 어떻게 살았나몰라

위험하고도 감사한 신용거래

나는 소비가 거의 없는 편이다. 옷, 신발, 가방, 화장품 등의 쇼핑에는 도통 관심이 없어서 출퇴근 때 필요한 최소한의 것만 가지고 살고, 옷은 해지거나 떨어져서 사용하지 못할 정도가 되어야 새로 산다. 심지어 좋아하는 옷이 찢어지면 10불짜리 옷이었어도 직접 손바느질해 입는다.


이런 삶이 가능한 이유는 워낙에 이런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캐나다의 문화 덕이 크다. 오죽하면 그저 수년 째 가지고 있는 몇 벌의 옷만을 주야장천 이리저리 돌려 입고, 2분이면 끝나는 최소한의 화장만 하고 다니는 내게 회사 사람들은 늘 스타일 멋지다, 예쁘다는 소릴 하겠는가. 한국사람이 봤으면 기함을 했을 일이다. 그만큼 여기 사람들은 정말 특별한 날이 아니고서야 꾸미는 데에 관심이 없다. 개인마다 원체 개성도 강해서 한국 사람 눈에는 정말 '거지 같은' 모습으로 다녀도 누구도 신경 쓰지 않는다.


사실 나도 20대 때는 꾸미는데 돈이며 시간이며 소비를 실컷 해 봤고, 덕분에 더 이상 그런 쪽으로는 흥미가 사라져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요즘 같은 고금리 시대에는 더욱이 감사한(?) 문화다. 그렇잖아도 자잘한 생활 물가가 높은 캐나다에서 한국인이 생각하는 '세련된' 삶은 영위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공과금이니 세금이니 하는 것만으로도 혼자 벌어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이곳에서 남의 시선까지 중요한 문화였다면 나는 버텨내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캐나다도 신용(Credit) 의존율이 높다. 모기지나 신용, 부채에 관한 거래와 소송등이 내 주 업무이다 보니 캐나다인의 신용카드 사용이 얼마나 많은지 새삼 깨닫게 된다. 아무리 수입이 높은 직업을 가지고 있어도 지출이 수입을 뛰어넘으니 늘 재융자로 돌려 막기 바쁘고 그러다 결국엔 빚을 갚지 못해 은행에게 집을 강제 경매 당하는 사람들이 결코 적지 않다. 각자의 사정이 있겠지만 이런 경우 대부분 카드 사용 내역서를 보면 한도 끝까지 불필요한 지출을 매달 일삼는다. 특히 대부분의 캐나다인들은 복지에 물들어서(?) 그런지 '미래를 위한 저축'에 대한 개념이 거의 전무하다시피 해서 버는 족족 써버리는 경우가 많다. 저축이야 선택이지만 국민들이 빚의 늪에 빠지는 건 어느 사회에나 해로우므로 범국민적으로 경제와 신용에 대한 교육이 더 필요하지 않나 싶다.


하지만 우습게도 나 역시 신용카드가 없으면 생활이 거의 불가능할지 모르겠다. 급격히 올라버린 금리 덕에 매달 모기지 이자를 내고 나면 생활비는 거의 남지 않는다. (캐나다는 전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그리고 가장 높이 금리를 인상했다) 납부 기일이 다른 두 개의 신용카드 결제를 밀리지 않으려고 계산해서 쓰느라 매달 머리가 터진다. 그래도 다행히 아직 부양할 가족은 없어서 리볼빙이나 돌려 막기 같은 사태는 일어나지 않고 있고 캐나다는 2주에 한 번씩 급여를 받아서 카드 대금일이 오기 전에 미리미리 갚아 결제금이 눈덩이처럼 불어나지 않도록 신경을 쓰고 있다. 언제까지 이렇게 쫓기듯 살아야 하나 불안함은 좀 있지만, 하여간 이래저래 살아는 진다.


캐나다에서 살 준비를 하는 단계라면, 높은 생활비를 대비하시라. 실제로 캐나다는 한국에서 그다지 넉넉하게 살지 못했어도 충분히 생활이 가능한 곳임은 맞지만, '한국에서처럼' 사는 건 불가능할 수 있다. 캐나다서 한국에서 살던 것처럼, 아니 한국에서의 절반 정도 수준으로만 유지하려고 해도 큰돈이 들기 때문이다.


당장 먹는 문제부터가 그렇다. 기본적으로 쌀이 주식인 한국과 밀이 주식인 캐나다에서의 식문화가 같을 수가 없다. 한국처럼 밥과 야채 반찬 몇 가지를 곁들여 먹을라치면, 캐나다에서는 식비가 한국의 서너 배 이상은 든다고 봐야 한다. 캐나다에서 가공되지 않은 식품이나 샐러드를 저녁으로 먹을 수 있다면 상류층이라는 말은 거짓이 아니다. 어딜 가든 튀긴 음식과 밀가루가 기본이고 주식인 이곳에서 한국식 밥상을 비슷하게라도 흉내내기 위해서는 식비를 감당할 만큼 벌던가 그게 아니라면 식습관을 이곳에 맞추어야 할 것이다.


신용카드는 흔히들 독이라고 하지만, 내겐 이 어려운 시기를 그래도 그나마 버틸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기도 하다. 캐나다는 엄청나게 신용 사회라 신용이 없으면 모기지는 물론 자동차 구매 등에도 불이익을 받는다. 인터넷이나 전화를 개통할 때도 신용을 조회해 본다. 그런데 캐나다에서는 신용카드를 쓰지 않으면 신용을 쌓을 방법이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매달 쓰고 갚고를 반복해서 신용 점수를 높여야 최소한의 자금 융통이라도 가능해지는 시스템이다.


빚을 많이 지면 안되는데, 또 아예 없어도 문제가 되니, 참 아이러니다.


높은 금리로 인한 고통은 올해가 가장 클 것이라고 하니, 딱 반년 남았다. 존버필승. 억척같이 살아남아야 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평생 주고 싶은 도둑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