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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가포르, 진짜 껌 안 파나요?

자매님 팀 #4 이 정도는 알고 가면 좋을 배경지식 6 가지

by 에리카

여행을 할 때 그 나라의 역사, 문화를 알고 가는 것과 전혀 모르고 가는 것은 경험의 깊이가 달라진다. 이 나라 사람들이 왜 이런 특이한 향신료를 쓰게 됐는지, 왜 좌측통행을 하는지는 모두 그 나라의 역사와 연결된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하지 않는가.


나는 오래전 유럽여행에서 처음으로 '가이드 투어'라는 것에 참가해보고 가이드가 전해주는 엄청난 지식들에 감탄하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내가 얕은 경험을 하고 있었는지를 깨닫고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있다. 아무것도 모르고 볼 땐 그저 허허벌판이었지만 가이드의 이야기를 듣고 보면 그곳은 바로 엄청난 역사의 장이었다. 여행을 다녀와서도 기억에 남는 쪽은 조금이라도 그곳의 배경지식을 책이나 영상으로 알고 간 쪽이었다. 그때부터는 여행을 가기 전에 공부를 하고 가는 습관이 생겼다. 그래서 자매님들이 싱가포르에 가기 전에 이 정도는 알고 가면 좋지 않을까 싶은 내용들을 한번 정리해봤다.


1. 서울보다 조금 넓지만 인구는 절반, 야자수가 주는 여유로움

싱가포르의 면적은 721.5 km²로 서울(605.2 km²)보다 조금 더 넓고 인구는 약 560만 명으로 서울의 절반 정도이다. * 그래서 아무리 사람이 붐비는 곳이라고 해도 서울을 경험한 사람이라면 여유롭게 생활할 수 있다. 원래는 정글이나 마찬가지였던 늪지를 개발 한 곳이라 시내 중심은 화려한 이미지지만 조금만 시내를 벗어나도 나무와 풀이 무성한 녹지를 만날 수 있다. 도심 안의 가로수가 야자수인 덕분에 일 년 내내 휴양지 느낌을 받을 수 있다.


2. 왕자의 착각이 만든 이름, 싱가푸라

얘가 뿜은 물을 받아먹는 포즈로 사진을 찍는 게 필수 여행코스가 됐다 ©에리카

싱가포르의 공식 명칭은 싱가포르 공화국으로 말레이 반도의 끝에 위치한 섬나라이자 도시 국가이다.

마스코트로 알려져 있는 멀라이언은 싱가포르 건국신화에서 나온 것으로 상반신은 사자, 하반신은 물고기의 모습을 한 상상 속 동물이다. (사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좀 무섭다)

'싱가포르'는 산스크리트에서 유래된 말레이어로 사자의 도시를 뜻하는 싱가푸라라는 단어를 영어로 변환한 것이다. 그런데 왜 항구도시에서 사자의 도시라는 이름이 나왔을까?


지금 멀라이언이 세워져 있는 공원은 인도네시아의 수마트라섬 남동부에 있던 슈리비자야(Srivijaya)왕국의 왕자가 사냥을 나왔다가 사자를 보았다고 해서 이 섬을 싱가푸라라고 부르게 된 계기가 되었는데 사실 지리적 위치상 이곳에 사자가 살았을 가능성은 없다. 한 왕자의 착각이 나라의 이름을 결정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이 전설은 우리나라의 웅녀가 된 곰의 이야기처럼 사랑을 받았고 훗날 공식적인 마스코트로 지정이 되면서 때로는 깜찍하게도, 때로는 용맹한 모습으로 싱가포르의 이곳저곳에서 활약하고 있다.


3. 좋은 것엔 다 붙는 그 이름, 건국의 아버지 래플스 경

래플스 플레이스에 있는 동상 ©위키피디아

세계적 기업의 아시아 퍼시픽 본사가 모여있는 비즈니스 중심가인 래플스 플레이스 Raffles Place, 1박에 100만 원에 육박하는 초고급 호텔 래플스 호텔, 래플스 병원 등 싱가포르에서는 좋은 것에는 거의 '래플스'라는 이름이 붙어있다. 하도 많이 보이다 보니 '대체 이 래플스가 무슨 뜻이야?'라고 궁금할 수 있다.


사실 이건 개인적으로는 조금 신기하게 느껴지는 부분이기도 한데 싱가포르는 식민지 역사에 대해서 우리나라처럼 분노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랑스러워하는 듯한 분위기라고 할까, 영국의 통치를 받은 것이 강조되는 경우가 많다. 싱가포르의 건국의 아버지라 불리는 토머스 스탬퍼드 래플스 경 Sir. Thomas Stamford Raffles은 영국의 정치인으로 동인도회사의 직원이었다. 래플스 경은 싱가포르의 건국의 아버지로 불리며 싱가포르에서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나타내는 곳에 자주 사용된다.


그는 1819년 말레이시아 조호르의 왕인 술탄과 계약을 맺고, 싱가포르를 국제 무역항으로 개발하기 시작했다. 싱가포르가 본격적으로 성장하기 시작한 것은 바로 이때부터. 1867년부터는 공식적으로 대영제국의 식민지로 편입되었는데 제2차 세계 대전 중에는 일본에게 점령당해 1945년 영국이 다시 탈환할 때까지 통치를 받게 된다. 영국, 일본 모두 싱가포르를 식민지로 삼은 것은 같지만 국민들에게 영국은 자신들의 발전에 도움을 준 은인이고 일본은 무자비하게 약탈한 악당으로 인식되는 것이 차이점이다.



4. 전설의 리더, 리콴유

리콴유 Lee Kuan Yew ©위키피디아


보잘것없던 항구 도시에서 쟁쟁한 선진국들을 제치고 국가 경쟁력 1위라는 놀라운 위치까지 발전하게 된 배경에는 '진짜' 싱가포르의 아버지, 리콴유 초대 총리가 있다. 싱가포르가 말레이시아 연방으로부터 강제로 독립을 당했을 때는 다들 싱가포르의 미래가 밝지 않다고 생각했다. 힘도, 자원도 없는 곳이니까.

하지만 리콴유는 뛰어난 정치술로 사람들을 융합하고, 본인의 친한 친구라도 예외를 두지 않고 무관용의 법칙으로 부정부패를 척결하면서 현재의 청렴한 사회구조를 만드는데 힘썼다.


해외투자가 절실한 싱가포르에게는 외국인들이 믿고 사업을 할 수 있도록 국제적 신뢰를 쌓는 게 중요하기 때문. 그 결과 싱가포르는 국제투명성기구(TI)가 발표한 부패인식지수(CPI)에서 아시아에서는 1위, 세계 5위를 기록했다. 다른 동남아 국가들이 부정부패로 국가의 발전이 발목 잡히는 상황과는 많이 대조된다. 싱가포르 사람들은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 리콴유를 많이 뽑는데, 초기에 나라를 정비하는 과정에서 과도한 공포정치를 펼쳤다는 점을 비판하는 사람도 많다. 하지만 그처럼 하지 않았다면 지금의 싱가포르는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4. 다민족, 다언어 - 우리는 모두 싱가포르 사람

사실 나는 싱가포르에 가기 전에는 어떤 사람들이 사는지 도통 감이 잡히질 않았다. 나에게 동남아라고 하면 태국, 베트남 사람들처럼 조금 까무잡잡한 피부의, 티브이 여행프로에서 자주 보는 사람들이 떠올랐는데 실제로 싱가포르에 가보니 중국계가 대부분이었다. 생각보다 인도계 사람들도 많아서 놀랐던 기억이 난다. 단순히 한국인, 일본인, 중국인 이런 식으로 생각해오던 나에게 ~계 ~인이라는 개념은 신기하게 다가왔다.


싱가포르는 중국계가 전체 인구의 74%를 차지하고, 말레이인이 13%로 두 번째, 그 밖에는 영국 통치 시절 데리고 온 인도인 등의 여러 민족이 섞여 살고 있다. 각기 다른 민족이 잘 융합해 살기 위해서는 정치적 제도가 필요하다. 싱가포르에서는 공식적으로 4개의 언어를 사용한다. 말레이어, 영어, 중국어, 타밀어가 모두 공공문서, 표지판, 대중교통 안내방송 등에 사용된다. 싱가포르 헌법 상에는 말레이 어가 공용어로 지정되어 있지만 "실질적인" 공용어는 영어이다. 일상생활, 업무, 공공문서 등 대부분은 영어라고 생각하면 된다.

차이나타운 푸드 스트리트의 표지판

영어는 기본에 각 가정에 따라 중국어, 말레이어, 타밀어를 각자 하나씩 더 배우니 기본적으로 2개 국어가 가능한 싱가포르 사람들이다. 그래서 싱가포르에서는 영어 +중국어 조합보다는 영어 +일본어 혹은 영어 + 한국어의 조합이 더 희소성이 있다.


5. 영국의 영향 - 좌측통행, 영국식 영어

영국의 통치를 받았던 영향 때문에 싱가포르 역시 좌측통행이다. 하지만 걸어 다닐 때는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 듯하다. 에스컬레이터는 왼쪽이 서서 가는 쪽, 오른쪽이 빨리 가는 사람들을 위해 비워놓는 쪽이며 속도가 엄청나게 빨라서 처음 타는 사람들은 놀라곤 한다. 싱가포르의 속도에 익숙해져 있다가 한국에 오면 답답하게 느껴진다.


우리처럼 미국식 영어를 배운 사람들에게 colour(color), centre(center)라는 스펠링이 처음엔 어색할 수 있다. 싱가포르는 발음, 스펠링을 영국식 문법을 따른다. 하지만 이건 이론상의 얘기고, 실제적으로는 싱글리시라는 독자적인(!) 언어를 사용한다. 이 이야기는 따로 또 소개할 예정.


6. 네, 진짜 껌 안 팝니다. 진짜로 태형도 있어요

아마도 외국인들에게 잘 알려진 도시 괴담스러운 이야기이지만 이게 사실이라 더 놀랍다는 반응. 싱가포르에서는 껌을 수입하거나 판매, 씹거나 길거리에 뱉는 행위 모두가 불법이다. 껌을 아무 데나 뱉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미관과 위생에 안 좋은 영향을 미친다는 이유로 금지하는 법을 만들었는데 껌을 판매하다 걸리면 벌금이 무려 $100,000 싱달러(한화 약 8천6백만 원) 혹은 2년 이하의 징역 감이다.

태형 당한 엉덩이 사진까지 공개됐던 마이클 페이... 쯧쯧,..

싱가포르의 태형이 국제적 이슈가 된 적이 있다. 1993년, 당시 미국인 학교에 다니던 18세 백인 소년 마이클 페이가 싱가포르 경찰에 주차된 차량 50대에 페인트칠을 하고 차를 파손한 혐의로 기소됐는데 4개월의 징역형, 벌금 2200달러 이외에 태형 6대가 포함됐던 것이다. (아니, 가만있는 자동차는 왜 건드려서)


이 사실은 미국 여론이 싱가포르 정부가 야만적이고 시대착오적인 조치를 취했다며 들끓게 만들었다. 빌 클린턴 대통령까지 직접 싱가포르 총리에게 친서와 전화를 통해 태형을 면제해줄 것을 요청했다고. 하지만 당시 총리이던 고척동 총리는 "누구든지 싱가포르 땅에서 법을 어기면 싱가포르 법에 따라야 한다"라고 하면서 그래도 대통령이 친서까지 보낸 걸 감안해 무려... 두 대를 감량해줬다. 그렇지만 태형은 확실히 집행됐다. 또한 성추행으로 기소된 사우디 대사관 직원에게도 어김없이 태형이 집행됐다.


나는 이 부분에서 싱가포르가 참 좋아졌다. 법 앞에서는 누구도 평등하다는 것. 누구는 이래서 봐주고, 저래서 봐주고 가 아니라 법은 법으로 지키는 것. 그렇기 때문에 싱가포르 국민들은 법을 지키는 게 손해라는 생각은 잘하지 않는다. 편법을 쓰고, 법을 어긴 이들은 언젠가는 처벌받는다는 믿음이 있으니까.


한국에서는 타인에게 큰 피해를 입히고, 한탕 크게 한 이들이 그저 몇 년 감옥에서 살다 나와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잘 먹고 잘 산다. 정작 그들에게 피해를 입은 이들은 구제받을 길이 없다. 이런 사회에서는 정작 열심히 성실하게 법을 지키며 산 이들은 자신이 바보같이 느껴진다. 과연 그게 건강한 사회일까.

그래서 나는 법을 지키는 것이 당연한 사회, 성실하게 살아도 손해보지 않는 사회인 싱가포르가 좋다.



기본적으로 이 정도만 알고 가도 싱가포르에 대해 좀 안다고 할 수 있는 자매님들이 되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살면서, 진짜 사람들과 부대껴 지내면서 자연스레 알게 되는 부분들이 더 많으니 그 부분에 대해서는 알아가는 재미를 느껴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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