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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리카 Sep 07. 2020

태풍에 우산이 뒤집혀도 깔깔 웃을 수 있는 사람이 좋아

그 사람이 위기를 대처하는 방식

저희 집 반려견 삼식이는 비가 와도 눈이 와도 밖에서만 볼일을 보는 시바견이라 태풍이 와도 잠시 잠잠해졌을 때를 노려서라도 데리고 나가야 해요. 오늘 아침, 단단히 무장을 하고 집을 나섰지만 그래도 바람이 엄청나니 우산과 함께 이리 휘청 저리 휘청 하며 걸어가고 있었어요. 제 앞에 지나가는 아주머니 아저씨들 모두 심각한 표정으로 우산을 붙들고 안간힘을 쓰며 걸어가는데 갑자기 바람이 확 불면서 결국엔 제 우산이 뒤로 훌렁 뒤집어지는 민망한 상황이 연출됐죠.


계속해서 바람이 멈추지 않고 휘몰아쳐서 우산이 이리 날아가고 저리 날아가는데, 저는 그게 너무 웃겨서 "삼식아 누나 우산 봐" 하고는 깔깔깔 웃었어요. 원래 웃음이 많은 편이긴 하지만 전 왠지 다들 심각한 상황일 때 더 웃음이 터져 나오더라고요. 그러다 문득 예전에 친한 친구와 호주 여행을 했을 때가 떠올랐어요.


무려 21년 지기인 이 친구와 저는 외모도 성격도 다르지만 오래 알고 지내는 동안 싸움 한번 한 적 없고, 2주 동안 해외여행을 하면서도 트러블이 생긴 적이 없었어요. 제가 생각하기에 그건 바로 위기상황을 웃음으로 대처하는 부분이 비슷해서인 것 같아요.


저희가 호주 여행을 하던 도중에 엄청난 태풍이 호주를 강타했었어요. 작은 바다 마을 쿨랑가타에 있다 브리즈번으로 이동해야 하는 일정이었는데 바닷가 마을이다 보니 비바람의 수준이 정말 장난이 아니더라고요.

태풍이 오기 전 쿨랑가타는 천국
매일 저녁 해변에서 맥주 한 병이 우리의 유일한 루틴
필터가 필요 없는 호주 하늘

우산으로는 어떻게 될 상황이 아니라 비옷 하나씩을 사 입고 캐리어를 끌고 버스 정류장으로 이동하는데 정말 쉴 새 없이 몰아치는 거센 비바람으로 정신없이 싸대기를 맞는데 (웃음) 말 그대로 정신이 하나도 없었죠. 머리는 당연히 산발이 됐고요. 그래도 그 친구와 저는 짜증을 내는 게 아니라 이 상황이 너무 웃기다며 걸어가는 내내 계속 깔깔 웃었어요.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이러고 있냐고... 서로 몰골이 말이 아닌 주제에 니 얼굴 좀 보라며 놀려대기도 하고요.

그렇게 겨우겨우 버스정류장까지 이동해서 버스를 타고 한숨 돌리고 서로를 마주 보는데 우습기도 하고 같이 이런 상황을 웃으면서 넘길 수 있는 친구라서 정말 감사하단 생각이 들었어요.


그 이외에도 숙소에서 엄청난 바퀴벌레가 나온 적도 있었고, 엘리베이터가 없어서 5층까지 계단으로 캐리어를 낑낑대고 들고 올라가야 했던 적도 있었고, 비행기가 연착돼서 공항에서 하룻밤 노숙을 해야 했던 적도 있었지만 그래도 언제나 우리 둘은 웃으면서 상황에 대처했었어요. 짜증을 내도 서로 기분만 상할 뿐 그 상황은 변하지 않으니까요. 그 대신에 보고 싶었던 미드를 같이 보기도 하고 그동안 정리 못했던 사진들을 정리했어요.


여행을 함께 다녀보면 그 사람의 진면목을 알 수 있다고 하죠.

힘들고 지칠 때, 위기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하는 지를 보면 그 사람의 본모습을 알 수 있다고 말이죠.

저는 그 말에 전적으로 동의해요. 누구나 편하고 좋은 상황에서는 하하 호호할 수 있지만(그렇지 못한 사람도 있지만) 힘들 때는 가장 본연의 모습이 나올 수밖에 없으니까요.


저는 태풍에 우산이 뒤집혀도, 비바람에 머리가 산발이 돼도, 바퀴벌레가 나와도, 공항에서 노숙을 해야 해도 함께 웃으면서 할 수 있는 친구, 동반자가 될 거예요. 그런 사람들을 만나고 싶다면 나부터 그래야 하니까요.


피할 수 없다면 즐겨라!

이왕이면 깔깔 웃으면서 즐겨볼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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