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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리카 Jan 06. 2021

"나폴리, 위험하다고요?제가 한번 직접 살아보겠습니다"

살다 보면 단 한 번의 만남이었지만 깊은 인상을 남기고 지나가는 인연이 있다.

그 사람이 했던 한 마디, 혹은 책 한 권이 터닝포인트가 되는 그런 인연. 

어떻게 지낼까 한 번쯤 문득 생각나는 그런 인연들. 

2013년 겨울, 싱가포르에서 첫 번째 직장을 그만두고 다음 회사로 이직하기 전 이탈리아와 스페인을 각각 한 달씩 여행했었다. 한 도시에서 천천히 그곳 사람들의 생활을 느껴보는 걸 좋아하는 타입이라 넉넉하게 시간을 잡고 갔었는데 돌이켜보면 나에게는 참 잘 맞았고, 잘 한 선택이었다 생각한다. 

이탈리아는 밀라노에서 시작해서 점점 남쪽으로 내려가는 - 대략적인 동선만 생각하고 한 도시에 짧게는 3일에서 길게는 일주일 정도 머물면서 현지인들과 이야기를 하기도 하고, 검색을 하면서 그다음 도시 숙소를 예약하는 식이었다. 그때 처음으로 에어비앤비라는 서비스를 알게 됐고 현지인의 집에서 지내볼 수 있다는 아이디어에 얼마나 신이 났는지 모른다. 인테리어 구경하는 걸 좋아하는 나에게는 최고의 여행 방법이었다. 


밀라노에서 지냈던 에어비앤비 숙소

그렇게 여행을 하다 베네치아에서는 그 시기에 한창 핫(!) 했던 호스텔 체인인 제너레이터(Generator)를 예약했는데, 마침 옆 침대에 묵고 있던 주영이라는 친구와 친해졌다. 동갑인데다 성향도 비슷해서 같이 베네치아를 여행했고, 동선이 같아서 피렌체, 로마까지도 같이 가게 되었다. 그리고 로마에서는 우노 트래블이라는 곳에서 진행하는 가이드 여행에 참여했었는데, 가이드는 20대 초중반의 젊고 훈훈한 안대훈이라는 청년이었다. 주영이가 아는 동생이라 일정이 끝나고 다 같이 밥을 먹으며 어떻게 이탈리아로 왔는지,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는데 꿈을 위해 아주 성실히 열심히 사는 멋진 친구였다. 

그 날 저녁, 이야기를 하며 '이 사람은 어디에서 뭘 해도 잘 해나갈 것 같다.'라고 생각한 게 기억난다. 

하루는 여행에서 돌아와서 한동안 이탈리아의 기억을 회상하고 있을 때였다. 

페이스북에서 우연히 한 여행 영상을 봤는데 그 친구와 함께 가이드를 하던 청년 셋이서 진짜 여행 가고 싶게 하는 멋진 영상을 만들어 올린 거였다. 그들의 영상은 여행 커뮤니티에서 대박이 난 듯했다. 그 후에 잠시 잊고 지내다 다시 한번 그의 영상을 보게 되었는데 이번에는 훈훈한 여행 커플 영상으로 유명해져있었다. 그는 좋아하는 일을 하다 연인을 만났고, 좋아하는 영상을 계속해서 만들며 쭉쭉 성장하고 있었다. 여행에 미치다 크루로 활동하며 영상제작 강의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여전히 행복해 보였다. 

그 모습이 보기 좋아 인스타그램으로 축하한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내가 한 것도 없는데 그의 성공에 왜 덩달아 그렇게 흐뭇했는지. 역시 좋아하는 일을 즐겁게 하는 사람은 성공한다는 걸 증명해 주는 것 같아 거였을지도 모르겠다. 



참 예쁜 커플 https://www.instagram.com/no_hooni/


이탈리아 여행에서 또 한 명, 내 기억 속에 '이 사람은 진짜다.'라는 느낌을 남긴 사람이 있다. 

여행 막바지에 나는 남쪽 항구도시인 나폴리에 꼭 가보고 싶었다. 하지만 정보를 찾으면 찾을수록 나폴리에 대해서는 죄다 우울한 이야기밖에 없었다. "여자 혼자는 절대 가지 마세요.", "진짜 볼 거 없어요." (한국인 여행자들의 진짜 볼 것 없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알기 때문에 이건 신경 쓰지 않는다). "마피아 소굴이에요." 등등. 

하지만 영어로 검색을 하면 나폴리는 세상 아름다운 곳이었고, 물론 치안에 대한 언급이 있긴 했지만 여전히 사랑받는 여행지였다. 나는 내 느낌을 믿기로 했고, 사실 청개구리 성향이 있는지라 가지 말라면 더 가고 싶어졌다. 가기로 마음을 먹고 나폴리에 있는 호스텔을 일주일간 예약했다. 그런데 마침 우노 트래블과 연계된 우노 민박이 나폴리에도 있다는 거였다. 바로 호스텔을 취소하고 그 민박에 가기로 했다. 그러다 가기 전, 어떤 곳인가 궁금해 블로그를 찾아봤는데 제목을 보는 순간 피식 안도의 웃음이 나왔다. 


나폴리, 위험하다고요?
제가 한번 직접 살아보겠습니다.
건물은 낡아도 사람들의 미소는 낡지 않았던 나폴리


직접 만난 사장님은 나폴리에서 부인과 함께 민박을 운영하며 사진도 찍고 가이드도 해주시는 분이었다. 항상 여유가 넘쳐 보였고, 어떤 내공이 느껴졌다. 무림 고수를 만나면 이런 느낌일까. ;) 

무엇보다 타인의 말만 듣고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직접 경험하고 판단하겠다'라는 그 태도에 나는 가장 공감이 갔다. 


나 역시 누가 뭐라 하든 가능한 많은 것을 내 눈으로 보고, 직접 경험한 후에 이야기하고 싶다. 


물론 이 세상 모든 음식을 다 먹어볼 수도 없고, 모든 곳에 가볼 수도 없고, 모든 사람을 만나볼 수도, 모든 일을 해볼 수도 없다. 하지만 죽는 날까지 내가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많이 '진짜 경험'을 하고 '내 생각'을 만들고 싶다. 


아무리 책을 읽고, 성공한 사람들의 강의를 듣고, 후기를 들어도 그건 진정한 내 것이 아니다. 무의식중에 우리는 다른 사람의 생각을 마치 내 생각인 것처럼 착각할 때가 있다. 고정관념, 편견, 상식 - 좋든 나쁘든 내가 모르는 사이 내 머릿속에 슬며시 자리 잡고 있던 생각일지 모른다. 


그걸 판단하는 방법은 "진짜로?", "왜?"라는 질문을 해보는 것이다. 

남들이 그렇다니까 그렇다는 이유 말고는 마땅한 이유가 떠오르지 않는다면 글쎄, 다시 한번 생각해 볼 문제가 아닐까. 


결국 우리는 같은 세상을 경험하지만 각자만의 방식으로 해석하며 살아간다.
이 세상에 온 목적 역시 '나의' 경험을 하기 위해서라 믿는다.
그의 이야기도 아닌, 그녀의 이야기도 아닌, '나의 이야기'를 쓰기 위해. 


참고로 나폴리의 바다와 햇살은 아름답다는 말로는 부족할만큼 눈부셨고, 사람들은 순박했다. 

인생 최고의 마르게리따를 3유로에 먹을 수 있었고, 민박에서 만난 사람들과 밤새는지 모르고 나누었던 대화는 아직도 내 마음속에 소중한 추억으로 남았다. 


'당신이 운이 좋았던 거야.'라고 말할 사람들도 있을지 모르겠다. 그리고 사실일지도 모른다. 

나 역시 그저 나의 경험을 이야기할 수 있을 뿐. 애초에 정답이 없는 문제이니 말이다. 

인생에서 두려움을 선택할 것인가, 호기심을 선택할 것인가는 결국 본인의 몫일 것이다. 그리고 언제나 호기심이 이끄는 길을 택했던 개인적인 경험담은 다행히 지금까지 꽤 흥미로웠다고 이야기하고 싶다. 





+) 이 사장님은 한국에 오셔서 강화도에 직접 땅을 구매하고 건축을 처음부터 끝까지 완성한 프로젝트를 진행하셨더라고요. 대단하신 분. 

그 과정을 유튜브에 공유하셨던데 엄청난 구독자... 역시나 싶었습니다. ㅎㅎ 궁금하신 분들은 유튜브와 블로그 소개하니 한번 보시길! :) 


https://youtu.be/2PzHP65tCt8

https://blog.naver.com/red_juice/220640217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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